출근길 심리학 4 - 이유 없이 그 사람이 싫은 이유

2024-05-20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부서에 미묘하게 신경을 긁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인데요….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오간 업무 얘기를 먼저 말해 주는 법이 없어요. "중요한 얘기 있었나요?"라고 물어도 "글쎄요, 딱히…" 하다가 "혹시 관련 얘기는 없었나요?" 하면 그제야 얘기를 해줍니다. 회의 때도 다들 잘해 보자며 으쌰으쌰하면 늘 "글쎄요, 잘되면 좋겠지만 저희 마음대로 될지…"라며 말끝을 흐려요. 그럼 어떻게 하면 잘될 것 같은지 물으면 "저야 모르죠.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라며 또 힘을 빼놓습니다. 식사 메뉴를 고를 때는 아무 의견도 안 내더니 한 주가 다 갔을 때쯤 "그런데 이번 주는 맨날 한식만 먹었네요? 항상 가던 데만 가는 것 같아요"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면! 짜증이 치밀다가도 혹시 별뜻 없이 하는 말에 내가 과민한 건가 싶고, 콕 집어서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혹시 다들 이런 경험이 있나요?

누군가에게 부아가 치미는데 딱히 뭐라고 따져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있다. 아니면 어떤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불쾌했지만 왜 불쾌한지를 설명하기는 어려웠던 적은? 당시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곱씹을수록 기분이 상하고, 그런데 이걸 계속해서 곱씹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던 기억은? 단언컨대 이런 일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 가물가물한 당신을 위해 일터에서의 상황 몇 가지를 들어 보겠다.

사진_ freepik

 

① 칭찬인지 비꼼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말을 함

예) "드디어 새 옷을 사셨나 보네요." "이번에 하신 프레젠테이션은 저번보다 낫네요."

 

② 스스로를 비하하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씀

예) 새 차를 산 동료 이야기가 나오자, "하긴 뭐 임 대리는 대단하신 분이니까… 저 같은 사람은 못 사는 좋은 차도 사시고 좋겠어요."

 

③ 어떤 일을 시키면 최소한의 것만 무성의하게 함

예) 업무 관련 정보를 정리해 달라고 했더니 인터넷 사이트 하이퍼링크만 달랑 몇 개 전송

 

④ 끝까지 최대한 반응을 안 함 

예) 일을 나눠서 해야 하는 상황에서 메신저를 읽고도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묵묵부답

 

⑤ 일을 자주 미루거나 잊어버림

예) 미팅에 필요한 자료를 제때 보내지 않고 재촉해야 부랴부랴 완성해서 또 부랴부랴 전달

 

⑥ 무언가 불만이 있어 보이지만 말로는 아니라고 함 

예) 뚱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키보드를 세게 두들기는데, 물어보면 별일 없다며 입만 웃음

어떤가? 이제 좀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가? 나열된 유형은 상대의 행동을 직접 지적하기에는 뭔가 애매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뭐든 미묘하고 애매한 게 제일 어렵다. 그리고 이것은 공격성이나 적개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심리 기제를 의미하는 '수동공격(passive aggressiveness)'이라는 개념으로 한데 묶일 수 있다.

ᅠ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정신과 의사이자 대령이었던 윌리엄 메닝거(William Menninger)는 고의적인 무능력으로 임무를 회피하는 병사들에 대해 묘사하면서 처음 수동공격 현상에 대해 보고했다. 드러내놓고 반항적이지는 않으면서도, 반복적으로 명령의 수행을 미루거나 비능률적으로 처리하고, 일의 진행을 '은근히'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 병사들에 대한 우려를 담은 표현이었다.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에서의 관찰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일상에서도 자주 일컬어지는 현상이다.

지나치게 통제된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되었거나 갈등 해결 기술이 부족한 경우 수동공격 경향이 더 강하게 자리 잡기 쉽다. 또 어느 정도의 분노와 공격성, 적개심은 사람에게 필연적인 감정인데도 그것을 품거나 표현하는 것이 용인되지 않는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 자신의 감정을 은밀하면서도 미숙한 방식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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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조용한 암살자'가 되는가

수동공격은 어디에나 있다. 가족과 연인관계에서도 수동공격과 관련한 우스갯소리가 이미 많다. '세탁기 좀 돌려달라고 했더니 낑낑대면서 진짜 세탁기를 들어서 180도 돌리더라니까!', '애 좀 봐달랬더니 애가 다치든 말든 말 그대로 우두커니 서서 애를 쳐다만 보고 있더라!' 같은 배우자에 대한 농담이나 "나 화난 것 아니라니까"라고 말하면서도 냉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연인에 대한 풍자는 모두 수동공격적 행동에 대한 묘사다. 

그중에서도 직장은 수동공격이 일어나기 쉬운 대표적인 장소다.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함께 부대껴야 하면서도 사적인 감정 표현이 그리 자유롭지 않은 공간이라는 점은 분노와 공격성을 은근한 방식으로 표출하게끔 만든다. 게다가 직급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지시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하라면 해야 하는 곳이 직장이기도 하다(수동공격 개념에 대한 단서를 처음 제공한 곳이 군대였던 것을 떠올려 보자).

여기에 이메일이나 메신저 등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도 수동공격 현상을 부추긴다. 간접적 소통수단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돌려 표현하기에 적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또 의견을 직설적으로 말할수록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더더욱 진짜 생각은 감춰지되 부정적인 감정만 삐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터에서 나도 모르게 수동공격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제대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시스템, 직설적으로 의견을 표현하면 비난받거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분위기에 놓여 있다면 수동공격적 태도를 안 보이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런 행위는 상사의 '이중구속 메시지'를 꾸준히 받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차악이 되기도 한다. 나서서 일하면 왜 마음대로 하냐는 지적을 듣고, 나서지 않고 있으면 꼭 시켜야 하냐는 말을 듣는 상황이 바로 그렇다. 안 물으면 왜 안 묻느냐고 하고, 질문을 하면 그것도 아직 모르냐고 하면서 사람을 궁지에 모는 조직에서 아랫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당연히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수동공격은 무의식중에 일어나며, 일상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이 수동공격과 완전히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건 대단히 인간적인 모습이 아닌가. 그래서 수동공격은 그 자체로 문젯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방식을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일을 할 때 주된, 그리고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 사람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점차 지치거나 참다못해 폭발하면서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쉽고, 나 역시 스스로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분노를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은근히 거슬리는 이 수동공격에 잘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나 자신이 능동적인 공격자가 되어버리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동공격자에 대한 분노가 가랑비에 옷 젖듯 쌓이다가 어느 순간 폭발해서 먼저 화를 내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다. 사정을 잘 모르는 제삼자로부터 이 상황에서의 '유일한 공격자' 취급을 받게 된다면 너무나 억울할 것이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자신의 참을성 탓을 하며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장작이 쌓이고 거기에 기름이 부어져도, 스스로가 먼저 불을 댕기는 쪽은 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상대가 은근히 비아냥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는 그 의도를 가벼운 톤으로 확인함으로써 상대가 자신이 한 말의 뜻을 명확히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좋다. 이때 너무 따지듯 묻지 않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드디어 새 옷을 사셨나 보네요"라고 했을 때 가볍게 울상 짓는 표정으로 "아이고, 제 이전 옷이 그렇게 별로였던 건가요?"라고 되물어보자. 그때 상대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쯤에서 멈추자. 그 이상 더 물을 필요는 없다. 낮은 확률이지만 만약 상대가 "네 별로였어요"라고 한다면(맙소사!) 다시 한번 적당히 속상한 표정으로 "흑… 정말 서운하네요"라고 말하며 대화를 마무리하자. 이 상황에서 상대방은 나와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명백히 무례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상대가 수동공격적으로 말할 확률도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방법도 유용하다. 업무 내용에 대한 모르쇠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이메일 참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집단 안의 모든 사람이 업무 내용을 두루 공유하는 방식이 하나의 예다. 또한 이들에게는 "A 업무 관련 정보를 주세요"가 아닌 "A 업무 관련 정보의 내용을 A4 다섯 매 분량 이내로 요약하고 출처도 함께 보내주세요" 같은 식으로 요청사항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게 좋다. 모든 상황에서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자칫 마이크로매니징이 될 수 있으니 반복적으로 곤란함이 발생하는 부분에 한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접근하자.

상대가 능동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 회식 때는 모든 직원이 돌아가면서 메뉴를 정해 보도록 한다거나 회의 때 반드시 내 생각을 '의견+대안'의 방식으로 말하도록 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하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팀장인데 팀원들 대다수가 수동공격적이라고 느껴진다면… 나 혹은 일터의 시스템이 수동공격적 성향을 강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부터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시작은 거기서부터임을 명심하자.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반유화 원장

-『출근길 심리학』에 수록된 에피소드 「반복되는 월요일이 여전히 두렵다면」에서 발췌,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