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관계] 애착은 어떻게 형성될까?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ᅠ
< 금 간 꽃병 >
_ 쉴리 프뤼돔(Sully Prudho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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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편초 꽃이 시든 꽃병은
부채가 닿아 금이 간 것.
살짝 스쳤을 뿐이겠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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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벼운 상처는
하루하루 수정을 좀먹어 들어
보이지 않으나 어김없는 걸음으로
차근차근 그 둘레를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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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은 방울방울 새어 나와
꽃들의 향기는 말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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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지 말라, 금이 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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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곱다고 쓰다듬는 손도
마음을 스쳐 상처를 입힌다.
그러면 마음은 절로 금이 가
사랑의 꽃은 말라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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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온전히 보이나
마음은 가늘고 깊은 상처에 혼자 흐느껴 운다.
금이 갔으니 손대지 말라.
- 출처: 류시화 엮음,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오래된 미래,2005.)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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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의 시입니다. 이 시를 읽을 때면 해외 봉사활동을 갔을 때 만났던 네팔 고르카 지역의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고산지대에 속하는 네팔에서 포크레인으로 길을 겨우 만들 수 있을 그 울퉁불퉁 진흙 오르막길을 차로 2시간 동안 올라가면서 여러 번 헛바퀴를 돌았습니다.
도착할 때쯤 맨발의 아이들이 앞에서 뛰면서 길을 알려 주었고, 높은 산 꼭대기에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보이지 않고, 많은 아이들만이 반겨 주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이나 보호자가 없었고, 네팔의 문화에서는 어린아이를 중요시하지 않고 방임과 학대가 빈번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은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환하게 웃는 꽃들 같았습니다.
마음은 또 얼마나 따뜻한지, 어른보다 더 배려심이 많습니다. 한 청년이 도깨비풀에 바지에 다 달라붙어 따가워하자 어린아이가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30분 동안 쪼그려 앉아서 떼어 주었습니다. 또 제가 개인적인 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다섯 살 아이가 제 옆에 와서 같이 웁니다. 제가 그 아이에게 왜 우냐고 물어보니, 제가 울어서 본인도 슬퍼서 운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버스가 내려가는 흙길을 한참이며 뛰어 쫓아 내려왔습니다. 아이들도 청년들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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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부터, 양육자로부터 버려지고 학대당했던 아이들에게 이별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별의 아픔을 어떻게 감내해야 할까요?
이렇게 순수한 아이에게 또 예쁨과 사랑을 찰나 주고 떠나버리는 우리가, 다시 언제 만날지 모르는 그 아이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요? 금 간 꽃병처럼 겉으로 멀쩡하고 예뻐 보여도 그 상처들이 쌓여 아이들의 마음에 금을 긋는 것이 아닐까요?
상처가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 놓고, 도망쳐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심리학에서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아이를 귀여워하고 스킨십을 충분히 해도, 안정된 애착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진심이 담긴 관심을 주더라도, 언제나 변하지 않고 늘 곁에 있는다는 단 한 명의 보호자가 없다면, 아이들은 불안합니다.
고르카 지역의 아이들을 포함해 아동 양육시설에서 자란 아이가 상처가 많고, 애착 장애를 겪기 쉬운 이유는 절대적인 애정의 양이 부족하다는 것 이외에도 여러 명의 양육자가 바뀌어 가며 애정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한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여러 사람이 아이를 돌보는 데 지나치게 관여하는 일은 오히려 애착 문제를 일으키거나 아이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불안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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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이의 애착의 대상은 반드시 '엄마'여야만 할까요? 고르카 지역의 아이들, 보육원 시설의 아이들은 이제 다시는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행히도 아닙니다. 애착 이론을 제시한 볼비(J. Bowlby)는 주로 '엄마'와 애착관계를 형성하지만, 엄마가 아니더라도 아빠, 할머니, 이모, 삼촌, 고모 누구든 아동기에 늘 곁에서 있어 주는 사람이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애인스워드의 애착 발달단계 이론에 따르면 아이와 보호자 간 애착 관계 형성에는 중요한 타이밍이 있습니다.
- 제1단계: 생후 첫 3개월간 아이는 스킨십으로 양육자를 인지합니다. 이때는 한 명의 양육자를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 제2단계: 4개월부터 6개월까지 아이는 이제 1차적 양육자와 친숙한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부터 아이는 '낯가림'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익숙한 존재를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후 6개월 이후부터 두 살까지 강력한 애착 관계가 형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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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이 넘어가면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도, 애착의 대상을 바꾸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미 애착 관계가 형성된 양육자와 헤어지거나 떨어지면, 아이는 목숨을 위협받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이때 아이는 이별한 양육자에 대해 분노와 절망을 느낍니다. 이러한 이별의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들은 '탈애착'을 하기도 합니다. 즉, 신뢰하는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를 스스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희생일까요. 그렇게 탈애착을 한 아이는 훗날 세상을, 친구를, 사랑하는 애인을 믿는 것에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세상이 안전하다는, 내 곁에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으니까요.
어린아이 시절,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는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인관계를 어떻게 형성할지 평생 영향을 끼칩니다. 올바른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에 양육자가 아이의 울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가 양육자를 찾을 때, 언제나 나타나서 안심시켜 주는 과정이 충분히 있어야 아이는 '안정감'과 '신뢰'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안정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아이는 안심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불안한 세상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을 알려주는 양육자가 되길 바랍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