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의 억울한 누명, 도파민 통제회로

2024-05-04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최명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람들은 보통 미리 예정된 기념일에 예측 가능한 선물을 받는 것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받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누군가로부터 의외의 선물을 받게 될 때 도파민이 폭발하는 듯한 짜릿함과 행복감을 맛보곤 합니다. 

애초에 인간의 뇌는 예측 가능한 일보다 예측 불가능한 일에,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것을 더 갈망하거나 기대감을 품도록 설계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을 과학자들은 ‘보상예측오류(reward prediction error)’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뇌는 다음 순간 혹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레이더를 가동하며 끊임없이 예측합니다. 그런데 이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지거나 결과가 기대 이상이었을 때 만족감은 훨씬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나의 예상이나 기대가 보기 좋게 빗나갔음에도 그 결과가 긍정적일 때, 우리 뇌의 도파민은 더 큰 흥분으로 격하게 응답하는 것이죠.  

그러나 어제의 나를 흥분시켰던 새로운 자극이나 기분 좋은 보상이 언제까지고 나의 도파민을 활성화하는 자극제가 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오래도록 열망하던 그 무언가를 드디어 손에 쥐게 됐을 때 느꼈던 만족감과 행복감이 그리 오래가지 않듯 말입니다. 

 

사진_ freepik

인간의 욕망은 오랜 진화를 거쳐 온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이라는 뇌 심층부에서 생겨납니다. 그런데 이 영역에는 도파민이 유독 많습니다. 뇌 안의 주요 도파민 생산지 두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뇌세포는 긴 꼬리를 갖고 있는데, 이 뇌세포들이 활성화되어 꼬리 끝에 달린 주머니가 열리면 도파민을 측좌핵에 분비하게 됩니다. 이 회로는 ‘중변연계(meso-limbic)’라고 하는데요, 쉽게 말해 ‘도파민 욕망회로’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도파민 회로는 흔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며 진화해 왔습니다. 즉, 인간의 생명 유지나 본능적인 면에서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것들, 이를테면 맛있는 음식이나 매력적인 이성 상대를 만났을 때 도파민 욕망회로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듯 도파민 욕망회로는 인간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욕망을 일깨움으로써 삶에 활력과 열정을 북돋우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도파민이 주는 기분 좋은 느낌에 중독돼 계속해서 도파민 회로를 가동하는 데만 몰두하면서 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별다른 흥밋거리나 자극을 제공하지 않는 우리의 일상이나 현실에서의 경험은 따분하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상 속 판타지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만 장밋빛 기대감을 투영해 미화할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런데 도파민 욕망회로가 브레이크를 밟을 겨를도 없이 과도하게 폭주할 때, 인간은 쾌락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가는 자신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걸까요?

 

사진_ freepik

우리의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또 다른 회로는 바로 ‘중피질(mesocortical) 경로입니다. 이 도파민 회로 역시 중변연계 회로와 마찬가지로 도파민을 분비시키지만, 그 기능은 도파민 욕망회로와 정반대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상반됩니다. 고삐가 풀린 욕망회로의 폭주를 멈추게 하는 통제나 조정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소위 ‘도파민 통제회로’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도파민 통제회로도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도파민 욕망회로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도파민 회로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욕망회로가 좇는 것은 흥분과 쾌락인 반면, 통제회로가 좇는 것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구체적인 계획이나 아이디어의 실재화 등 논리적 사고나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데 있습니다. 즉, 도파민이 당장의 욕구 충족을 위해 욕망회로를 작동하느냐, 좀 더 합리적이고 유익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통제회로에 올라타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은 전혀 다른 행로와 목적지를 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도파민 통제회로가 지나치게 우세하거나 욕망회로를 과하게 진압하는 것이 과연 이상적이기만 한 상황일까요? 욕망회로가 과하면 약물중독과 같은 각종 중독에 취약해지듯, 통제회로가 지나치게 작동하는 경우 성취나 목표에만 매달리게 되고 어떠한 성과에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만큼 이들의 시선은 늘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 어딘가를 향하고 있기 에 온전히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마주해야 하는 감정과 감각을 느끼는 데서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어려운 것이죠.

이처럼 ‘쾌락 호르몬’으로 가장 잘 알려졌던 도파민이라는 신경화학물질은 사실 욕망회로와 통제회로의 양쪽을 오가며 상반된 작용을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무언가를 택하거나 행동해야 하는 순간 혹은 상황에서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면, 여러분의 도파민이 어느 쪽 회로를 올라타는지 먼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건대하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명제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