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양재숲 최준배 원장을 만나다

2024-04-23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선생님. 개원 축하드립니다. 병원 이름에 ‘숲’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숲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반갑습니다. 혹시 캠핑 좋아하시나요? 최근 주말만 하더라도 캠핑카들을 포함해 놀러가는 차들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이렇게 도시에 거주하시는 많은 분들이 시간을 내어 자연을 찾아 떠나곤 합니다. 아마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편안함, 그리고 그로 인한 휴식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라고 생각되는데요.

저희 병원도 비록 도심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병원에서 만큼은 휴가나 캠핑을 온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더불어 환자분들께 휴식 같은 느낌을 드리면 좋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Q. 전반적으로 베이지 톤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것 같습니다. 인테리어에도 목적과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테리어도 ‘숲’이라는 이름처럼 최대한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비록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공간에 머물고 계신 동안만큼은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부담없이 하실 수 있을 정도의 편안함을 느끼셨으면 하거든요.

실내에 자연광이 굉장히 잘 들어오죠? 병원 위치 역시 빛이 가장 잘 들고 넓직한 공간을 고집했습니다.

전반적인 느낌도 화려한 요소들을 배제하고 최대한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여백의 미를 추구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사실 여러 가지 멋진 것들로 채우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방문하시는 환자분들께서 그로 인한 답답함을 느끼실 수도 있고 어느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Q. 여백이 정신건강에 주는 영향도 있을 것 같은데요.

미를 추구함에 있어서 ‘여백의 미’라는 말도 있죠. 사람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싶어 하지만 정신건강에 있어서는 어느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100의 용량이 최대치라고 하면, 그중 15 정도는 남겨두어야 하죠. 여백없이 모두 다 채워버리면 번아웃이나 슬럼프가 더 쉽게 찾아오기도 하거든요.

 

Q. 그렇군요. 지금 인터뷰하는 공간에 있는 진료실의 그림도 궁금한데요. 방금 말씀해 주신 여백의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저 그림은 방문하시는 환자분들에 앞서, 저를 위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진료를 잘 보려면 당연히 스스로의 정신건강이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쳐있고 일 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라면 환자분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부터 힘들테니까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을 제가 자주 볼 수 있도록 걸어 놓았습니다. 조금 힘들다 싶으면 저 그림을 보고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이요. 

그림은 저작권 때문에 보여드릴 수가 없다는 점은 아쉽네요. 방문하시는 분들은 진료 전후로 그림을 한 번 보시면 마음의 평안에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Q. 원장님 이력을 보면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의 마음건강클리닉에 계셨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대기업 직원들은 대개 어떤 이유로 마음건강클리닉에 방문하게 되나요?

병원이 회사 안에 위치한 것 외에는 별 다른 차이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방문하시는 분들이 모두 직장인이다보니 방문 이유가 회사생활과 관련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이유 중에서도 굉장히 다양하게 나뉘는데요, 어떤 분은 업무량이 많아 힘들어 하시는 반면 다른 분은 업무량이 적어 회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힘들어 하시기도 하죠. 특히 평가 시즌이 되면 관리자 직책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방문하시는데요, 본인이 하는 평가가 팀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다보니 여러가지 오해들로 인해 팀원들과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하고 부담감에 식사를 잘 못하거나 잠도 못 주무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Q. 같은 직장인이더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고민하는 이슈가 정말 다양하군요. 사내 마음건강클리닉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방문하는 거의 모든 분들이 본인이 말한 내용들을 회사에서 알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시고 물어보시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처음 오신 분들에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여기에서 한 이야기와 진료 기록 등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절대 누설되지 않는 다는 걸 믿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진료를 시작할 때 이런 이야기를 꼭 했죠. 병원에 내원해주신 것과 여기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은 절대로 누설되지 않는다고요. 만약 누설될 경우 저의 의사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의료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환자분들의 개인 정보는 절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내용은 회사 안에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생각보다 직장에서 있었던 힘든 일을 가정으로 가지고 가지 않으려는 분들이 많았어요. 회사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든데, 가족들은 전혀 모르는 거죠.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도 힘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관습이 있던 시기와 맞닿아 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직장에서 힘든 일과 고민을 가족에게도 말을 하시라고 조언해 드립니다. 상황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은 자칫 오해를 할 수 있거든요. 가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식어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같은 거요.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힘든 이야기를 안 하기보다는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과 나를 위해서라도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Q. 일은 회사에서 끝내야지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있었던 일들까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이 마음대로 잘 되지는 않지만요. 원장님께서는 원래 계시던 곳을 떠나, 개원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제가 6년간 기업정신건강연구소에서 근무를 했는데요, 일을 하면서 직장인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공부와 함께 소중한 경험들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지역사회로 나가 다양한 환자분들을 만나보며 전문의로서도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병원을 운영하면서 진료 환경이나 시스템 등도 조금 더 제 방식과 맞는 방향으로 만들고 싶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기업 내에 있다보니 검사 기기나 시스템 등을 제 마음대로 바꾸거나 할 수 없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거든요.

 

Q.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기 때문에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정신건강과 관련한 고민 상담이 많이 들어오시나요? 이럴 경우 피곤하실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실제로 많이 있는 케이스입니다. 평일 늦은 시간이나, 휴가 때에도 전화가 온 적이 많아요. 제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도 있고, 피곤할 때도 있지만 연락이 온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힘들고 절실했으면 지금 이 상황에 나에게 전화를 했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의 피곤함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거든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가장 잘 해야 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은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소중한 분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분들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전문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드리기도 합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에게도 기쁜 일입니다.

 

Q.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지만, ‘나도 이때는 정말 힘들었다’ 하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족의 건강이 위태로웠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은데요, 제가 아들이 둘인데 첫째가 태어날 때 신경 결손이 의심되는 징후가 발견되었어요.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틀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할 만큼 힘들고 간절했습니다. 또 둘째는 언어 발달이 느린 편에 속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다행히도 지금은 말을 잘 합니다.

당장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을 때에는 차라리 시선을 돌려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 운동을 하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근심 걱정이 너무 많을 땐 나가서 운동을 하는 편입니다. 물론 내가 지금 운동을 하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어차피 지금 애 태워봐야 도움이 안 되니 차라리 체력과 인내심을 길러 나중에 아이들과 더 오래, 재미있게 놀아주는 것이 낫다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곤 했죠. 

 

Q. 하지만 나가서 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릅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당장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든 분에게 나가서 운동을 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이런 분들에게는 예컨대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을 목표로 해보자라고 말씀들 드립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해결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 상황에 맞게 천천히 하나씩 노력해보는 거죠. 그 다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맛있는걸 먹어본다던지, 아직 매끼 식사를 챙길 여력이 안된다면 밤낮이라도 제대로 구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던지요. 자는 시간은 맞추기 어려우니 일어나는 시간을 맞추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나가면서 식사를 챙겨 먹어보는 거죠. 본인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해결점을 찾아보는 거예요.

 

 

Q. 환자들을 진료할 때 선생님만의 철학 또는 신념이 있으신지 궁급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의사는 주관적인 경험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진료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한편, 저는 환자를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방문해 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로 단점을 많이 이야기 하시지만 분명히 장점도 있거든요. 그걸 찾아드리려고 해요. 그리고 환자분들의 독립성을 최대한 존중해 드리려 노력합니다. 비록 제가 증상을 진단하며 진료를 보는 의사지만 치료 방법을 혼자 정해서 통보하는 것이 아닌, 환자분과 함께 의논해서 결정하는 편입니다.

 

Q. 몸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 섭취와 운동을 하면 되지만, 정신이 건강해 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신기하게도 좋은 음식 섭취와 꾸준한 운동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주기적인 운동은 우울증이나 치매 예방과 더불어 공황장애 극복에도 도움을 주거든요. 저는 이것에 더하여 본인의 마음 상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업이나 결혼 등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부합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몇 살이고 어느 대학에 나왔고 어떤 직장에 다니고 있고... 이렇게 본인의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잘 하시거든요? 하지만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요즘 내 마음과 기분은 어떤지 등 본인의 현재 상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거나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나에 대해 조금 더 면밀하게 관찰하고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성 마음클리닉에 있었을 때에도 모두들 흔히 말하는 스펙 좋은 엘리트들이었지만, 그 타이틀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아무리 남들이 생각하는 좋은 조건들에 부합한다 하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 행복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Q. 그럼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간단한 방법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혹시 '마음챙김'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심리치료의 한 방법인데요. 쉽게 말해 ‘내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점심시간이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 봅시다. 그리고 나는 지금 빨리 밥을 먹어야 해요. 그런데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면서 밥을 먹죠. 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그냥 먹습니다. 

마음챙김이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행위 자체’에 집중을 하는 거예요. 밥을 먹을 때는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이 음식의 향이 어떤지, 식감은 어떻고 맛은 어떤지. 온전히 그 순간에 마음을 다하는 거죠. 잠들기 전이나 집에서 쉴 때도 눈을 감고 본인의 몸과 감각에 집중해 보면서 어디가 불편한지 한 번 체크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나에 대해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거죠.

숨을 쉬어보며 들숨, 날숨의 호흡에 집중해 보기도 하고요. 흔히 바디스캔이라고도 말하는데요, 하루 중 잠깐이라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놓고 내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며 느끼는 것이 마음챙김의 핵심이자 마음건강을 위한 실질적인 스킬이라고 생각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Q. 좋은 팁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의 병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분들에게 전달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마음의 병으로 혼자 힘들어하고 계시는 분들, 그 고통이 얼마나 크고 힘드실지를 생각하면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절대로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당장은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영원히 고통 받을 것 같은 생각에 두려우시겠지만, 암흑의 터널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빛이 찾아오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니 지금 꼭 견뎌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기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울지 잘 압니다. 혼자 견디기 정말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용기를 내셔서 꼭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감기에 걸렸을 때, 회사에 "오늘 감기가 심하게 들어서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은 할 수 있지만 "제가 오늘 너무 마음이 힘들고 울적해서 출근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말은 하지 못합니다. 물론 예전에 비해 마음의 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몸이 아픈 것과는 다르게 마음의 병이라고 떳떳하게 이야기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힘이 들 땐 주저하지 말고 주변에 꼭 도움을 요청하시고, 전문가에게도 도움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도움의 손길을 받으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데 힘이 덜 들고, 더 빨리 빠져 나오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