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환경과 정신건강] 어떤 공간에서 마음의 변화를 느끼시나요?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람을 교육할 때, 치유할 때, 그 성격을 바꿀 때와 같이 뭔가를 변화하고 나아가게 하려면 살아가는 곳을 바꾸라는 이야기가 우리에겐 익숙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러 이유로 우리의 공간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공간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잠시 머물다 가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인'은 '인지안택야'요, '의'는 '인지정로야'라(仁은 人之安宅也요 義는 人之正路也라)."
"仁은 사람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이고, 義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이다."
맹자가 공자의 핵심 가르침으로 전해지는 논어 속 인의(仁義)를 풀이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어짊'을 평온한 집에 비유했고, 의로움을 바른 길에 빗대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입신해야 할 모든 것을 주거와 도로에 견줘 말한 것은 참으로 시사적입니다.
맹자님 말씀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해 마음을 결정하는 요인 역시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모든 것을 집값과 연계해 생각하고 '똘똘한 한 채', '영끌 대출' 등 부동산 관련 신조어를 토해내는 한국 사회에서 주거의 문제는 돈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연구 결과들은 지역사회의 물리적 환경의 쾌적성 여부, 주거의 형태, 휴식의 가능성 등이 모두 만족감과 우울감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을 되돌아봐야 마음의 건강을 잘 살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요.
세계 1위의 저출생 고령화 국가인 한국에서는 노인의 근린 및 주거환경이 스트레스원으로 작용, 개인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교육 수준과 경제적 수준이 낮은 노인, 이혼하거나 사별해 고독한 상태 등의 요소 외에도 주거 환경에 따라 노인이 우울을 호소하는 비중이 높다고 합니다.
국토연구원 도시 및 주택정책 연구실의 정현 연구원은 2019년부터 여러 논문을 통해 근린환경과 신체활동 간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특히 신체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노인의 경우 생활 환경의 요인에 따른 영향력이 크게 나타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신체기능과 이동능력이 떨어져 생활 반경이 축소되는 노인들에게는 그들이 더 오래 노출되는 주거환경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클 것입니다.
결국 노년층에게 공간적 측면인 물리적 환경은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며, 안전한 주거환경이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주거환경이 좋을수록 노인의 우울 수준이 낮고, 노인의 '성공적 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주거환경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비단 노인 계층에만 국한된 이론이 아닙니다. 임다혜의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박사학위 논문인 '주거환경과 청년 우울의 관계'에서는 청년들의 우울에 영향을 주는 일반적인 요인들을 통제하더라도, 주거환경 만족도는 청년의 우울과 유의한 관련성이 있다고 하지요.
주거환경 만족도와 유의한 관련이 있는 주거환경 요소와 우울과 스트레스의 관계를 요약하면, 주택의 위생, 외부 소음에 대한 방음, 채광이 주거환경 만족도와 관련된 주택 요소였고, 이 세 가지 요소는 모두 스트레스와 관련돼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위생 수준이 좋지 않은 경우에 우울 수준이 높았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청년들은 폭등해 버린 집값으로 인해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오히려 현시적 소비에 골몰하는 도피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주포세대'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투자에 골몰한다는 신문 기사들도 많지요. 무엇보다도 고시원, 반지하, 옥탑방에 거주하는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이 사회가 더욱 관심을 쏟고,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가로수와 화단, 녹지가 관리해 준다는 점을 양지해야 하겠습니다.
조안 마이어스-레비 미 미네소타 대학교 교수 연구팀은 '천장의 높이가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The influence of ceiling height)'이라는 연구 결과를 2007년 발표해 화제가 됐었습니다. 천장의 높이가 30cm씩 높아질 때마다 추상력과 창의력이 배로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사는 곳이 정신건강을 결정한다고 할 때에, 아파트가 많은 한국의 주거 형태에 대한 우려도 존재합니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주택 유형 가운데 아파트가 51.1%를 넘어섰고, 대도시와 수도권에의 인구 쏠림 가속화는 앞으로도 계속되고 있지요. 많은 이들이 낮은 천장 아래에 살고 있다는 것도 특징적일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고,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다양성은 사라지고 세대 간의 소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가 사는 곳이 서로 단절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仁'은 사람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이고, '義'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바른 길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을 통해 더욱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을지, 우리의 마음은 명랑해질 수 있을지 오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