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심리학 1 - 반복되는 월요일이 여전히 두렵다면

2024-04-08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하… X 쓰레기 요일이 다가온다!" 

일요일 저녁이 되니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에 어김없이 푸념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모두 내일 출근을 앞두고 마음이 심란해 보인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무거운 기분에 사로잡혀 일요일을 마무리하는 내 마음도 그들과 같다. 월요병은 왜 겪을수록 익숙해지기는커녕 더 심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일요일 밤에는 잠들기도 유독 쉽지 않다. 정신없을 출근길, 지난주에 미처 다 해결하지 못한 일거리, 주말 사이에 쌓였을 메일, 피곤하고 어수선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동료들… 이것저것 순서를 가리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잠은 점점 더 멀리 달아난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흐르고, 가뜩이나 피곤할 월요일 아침인데 잠잘 시간은 자꾸 줄어든다. 하, 지금 자면 몇 시간 잘 수 있으려나?

월요일만큼 많은 이들에게 미움받는 요일도 없을 것이다.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주일은 '워어어어얼화수목금퇼'로 불리고 월요일은 'X쓰레기 요일'이라고 공공연히 일컬어지는 걸 보면 월요일이 일주일 중 공공의 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흔히 '월요병'이라고 부르는 상태, 즉 다가오는 월요일을 두려워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일요일 저녁을 보내는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월요일을 '블루 먼데이(blue monday)'라고 칭하며 월요일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요일 신경증(sunday neurosis)'이라고 부른다. 기분은 대체로 월요일에 최악이고 그다음 날부터 나아지기 시작하다가 금요일에 급격히 좋아진다. 참고로 금요일에 대해서는 '금요일이라니 감사합니다!(TGIF, Thanks God It's Friday!)'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토요일에 정점을 찍었던 기분은 일요일이 끝나갈 무렵 다시 급격히 저하된다.

 

달콤한 휴가가 끝나갈 때의 기분은 또 어떠한가. 휴가의 마지막 날을 월요병보다 몇 배는 더 큰 심란함 속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을 괴롭히는 이 감정의 가장 기묘한 점은 두려워하던 월요일을 막상 겪는 동안에는 그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대체 어째서 그럴까?

이 기묘함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불안(anxiety)'이다. 물론 불안은 일요일 저녁뿐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공기처럼 함께한다. 불안은 어디에나 있다. 아주 옅은 농도에서부터 아주 짙은 농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을 하고 불쑥 나타난다. 매우 까탈스럽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사로부터 '대리님'이라고만 쓰여 있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냥 말을 거는 걸까, 아니면 뭐 또 시킬 게 있나? 아니면 제출한 보고서에 어마어마한 오류라도?!?' 이리저리 짐작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이다. 마치 평화로운 일요일 저녁, 느긋하게 쉬던 나를 불러 놓고는 말이 없는 월요일을 마주했을 때처럼 말이다.

불안은 이처럼 무언가 불쾌한 일이나 엄청난 위험이 닥칠 것처럼 느껴지는 정서적 상태를 일컫는다. 불안과 비슷한 감정으로 '공포(fear)'가 있는데, 공포와 불안은 때때로 구별이 어렵지만 이론적으로는 구별되는 감정이다. 지금 당신이 어두운 숲속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때 갑자기 나무 뒤에서 커다란 곰이 튀어나왔다면 그 순간 느낄 감정이 바로 공포다. 반면 불안은 숲길을 걷는 내내 당신을 괴롭히는 감정이다. '저거 곰 발자국 아니야? 이 숲에 곰이 사나? 갑자기 곰이 튀어나오면 나는 어쩌지? 죽은 척해야 하나? 나무를 타야 하나?' 수천 가지 생각을 하며 숲길을 걷고 있을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대체로 공포보다는 불안을 더 자주, 더 오래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안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는지는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원인이 외부에 있는지 내부에 있는지에 따라 불안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외부세계에 실제로 존재할 만한 위협에 대한 불안인 '현실적 불안(realistic anxiety)'과 마음 안에만 존재하는 불안인 '신경증적 불안(neurotic anxiety)'이다. 이 두 종류의 불안은 한 사람 안에서 한 가지 주제와 관련해서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부서가 바뀌면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된 경우를 생각해 보자. 낯선 환경에서 낯선 업무와 관련된 발표를 앞두고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은 현실적 불안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 불안에 내적 요소가 더해지면 이 불안은 순식간에 신경증적 불안이 된다. 완벽한 발표를 하지 못하고 실수를 하거나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 팀장님은 나에게 실망하고, 동료들로부터는 비웃음을 살 것이며, 그렇게 한번 안 좋은 인상이 박히고 나면 그것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커리어는 가시밭길이 되고 스스로는 실패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신경증적 불안이다.

물론 신경증적 불안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존재하며, 적당한 크기일 때는 개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게 커지면 개인의 행복감과 삶의 질을 저해하게 된다. 월요병이라는 불안의 크기도 월요일 근무라는 외부 자극이 우리의 내적인 요소와 만나면서 결정된다. 물

론 월요일에 어떤 일이 펼쳐지고 얼마나 고생스러울지에 대한 현실적인 걱정이 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불안 때문에 현재의 편안함과 즐거움이 지나치게 손상된다면 내 안의 내적인 요소를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일이 몰렸을 때 실수하는 자신을 용서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품고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면 자신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내적 요소들과 더불어 불안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바로 자극의 '모호성(ambiguity)'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모호한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생존한 인간은 그 대가로 불안을 안고 살게 되었다.

이 모호성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시험을 치르고 나서 합격할지 불합격할지 알 수 없을 때처럼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를 때의 모호함인 '확률적 불확실성(probabilistic uncertainty)'과 어떤 일이 반드시 일어나긴 할 텐데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모호함인 '시간적 예측 불가능성(temporal unpredictability)'이다. 

우리의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시간적 예측 불가능성이다. 다른 회사와의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처참하게 완패한 상황을 떠올려 보자.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팀장에게 본부장이 면담을 예고했는데, 언제 면담을 할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부터 팀장은 불안해진다. 차라리 빨리 불려 가서 잔뜩 깨지고 나오면 묘한 편안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이 이럴 때 나온다.

이렇게 모호함이 우리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이유는 중립적이고 모호한 자극이 있을 때 인간은 그것을 모호함 자체가 아닌 부정적 자극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향은 성격적인 불안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

사진_ freepik

 

§불안에 제동 걸기

월요일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월요일을 어떤 태도로 맞이하는 게 좋을까? 먼저, 불안과 관련된 인간의 특성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모호한 자극을 부정적인 자극으로 분류하는 우리의 본능을 알고 있다면 의도적인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한 전전두엽을 동원해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또 얼마나 빡센 월요일이 될까?" 하며 불안 과 공포를 관장하는 편도체가 본능적으로 우리의 불안을 자극할 때 "지금껏 셀 수 없이 많은 월요일을 지나왔지만 별일 없었잖아" 하며 전전두엽을 의식적으로 활성화해 불안에 제동을 걸어 보는 것이다. 

물론 본능의 신호를 완전히 무시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덮어놓고 무시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모호한 단서를 때로는 너무 불필요하게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전전두엽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월요일은 괴롭기도 하지만 많은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이지. 역동적이고 흥분되는 날이야. 여태까지 수많은 월요일을 지나왔을 때 기분은 늘 더 나아졌다는 걸 잊지 말자!"

§그래도 안 죽는다는 사실 알기

모호함 자체를 줄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만큼 모호함을 구체화해 보는 것이다. 월요일에 다가올 일들을 종이에 쭉 적어보면 어떨까? 어떤 메일이 와 있을 것 같은지, 출근길 지하철은 어떨지, 오전의 회의 분위기는 어떨 것 같은지… 그중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적어보는 행위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실체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뇌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종이라는 보조기억장치에 정리해 보면 모호함 때문에 뇌가 받는 부하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모호함을 줄인답시고 무언가의 실체를 너무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이 시도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걱정스러운 일들 때문에 우리가 무척 괴로울 수는 있으나 정말로 완전히 파괴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불안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래, 이것 이상의 뭔가는 없겠구나'라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신경증적 불안에서 벗어나 현실적 불안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죽기야 하겠어?" 혹은 "죽기밖에 더 하겠어?"에 담긴 진짜 의미다.

 

사진_ freepik

 

§확실한 행복 설계하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다가오는 월요일이 불안하다면, 모호함으로 가득 찬 월요일을 보낸 뒤 맛볼 분명한 보상을 마련해 놓고 그것을 기다리는 것도 좋다. 월요일 퇴근 후에 제일 친한 친구를 만나거나, 피자를 먹거나,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거나, 실컷 게임을 할 계획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아마도 합리성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은 이 계획을 미끼로 편도체를 더 잘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두고 찬찬히 시도해 보면 좋을 만한 제안도 하나 하고 싶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에게는 저마다 유독 불안해하는 주제가 있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것이 왜 그토록 불안한지, 걱정되는 그 일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월요일 회의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까 봐 걱정돼서 잠까지 설칠 정도라면 발표 실수나 부정적 피드백이 나에게 무얼 의미하는지, 나의 부족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어떻게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단 번에 결론이 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분명 당신을 신경증적 불안에서 한발 벗어날 수 있게끔 도와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가장 모호하고 모험적인 요일을 보낸 뒤 한결 편안해져 있을 나를 상상하며 이번 한 주도 힘을 내보자. 물론 엄청나게 멋지고 산뜻한 시작일 필요도 없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겨 보는 것이다. 모호함은 어느새 가장 확실한 행복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반유화 원장

※『출근길 심리학』에 수록된 에피소드 「반복되는 월요일이 여전히 두렵다면」에서 발췌ᄋ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