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부모님이 자꾸 결혼을 강요합니다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우울증을 앓아 온 지 꽤 되어 상담받고 약물도 복용하고 있지만 상태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무기력하고 이제는 눈물조차 잘 나지 않고 만사가 다 귀찮지만 직장인이고 할 일이 있기에 혼자 살면서 최소한의 할 일만을 한 채로 삽니다. 인간관계도 지쳤고 저한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집니다. 스스로에게 상처 내 환기를 하다가 지금은 안 하지만 답답함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인간관계 중 결혼까지 이야기가 오갔을 정도로 만난 인연과 끝이 난 지 1년이 넘었는데요. 그로 인해 감정 소모하고 감정 노동하던 게 지쳐서 더 이상 사람을 새로 사귀고 만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어떤 레퍼토리로 이어질지 상상이 가기에 관계를 이어 나가기가 막막하고 귀찮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연애도 하기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나이가 어느덧 20대 후반인데 부모님께서 남자를 만나라고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억지로 선 자리를 마련하는가 하면, 결혼과 임신은 필수라고 소리를 지르면서까지 강요합니다. 제가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결혼해야 하며 서른셋 전까지 무조건 애를 낳으라고 강요합니다.
저는 누누이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결혼에 관심이 없다,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고 애도 낳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 하나 챙기기도 벅차다, 괜히 더 잘 살 수 있는 사람들 끌어다가 나로 인한 우울로 피해 입히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여전히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라, 네가 부모가 안 돼 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다, 닥쳐라, 미친 소리 하지 말아라.”라고 하십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선 자리가 계속 들어오고, 저는 그때마다 일이 바쁘다며 피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좋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고 해도 고집이 너무 세서 그때마다 제 속은 너무 상하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실신하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제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무조건 꾸려야 한다고 강요하는데, 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 걸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중에 결혼으로 인한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우울증이 있을 경우 일상을 꾸려 나가는 데도 너무 큰 에너지가 드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말씀하셨듯 직장생활을 하고 최소한의 일만을 하는 데 가진 에너지가 모두 사용되기에 다른 일을 계획하거나 시도할 여력이 없다고 느껴지지요.
그래서 사연자님 입장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해야 할 일만 하고 일상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계신 것일 텐데, 부모님께서 결혼과 출산 등을 계속 강요하신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사연에 남겨 주신 내용으로 보았을 때 부모님께서 우울증의 증상과 우울증을 겪는 분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사연자님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미래를 계획할 에너지가 충분치 않다는 점과, 현재 느끼는 우울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 미래에 대한 부정적 관점으로 인해 결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을 깊이 공감하지 못하시기에 더욱 본인들의 생각을 사연자님께 주장하시는 것이지요.
부모님께서 보시기에는 사연자님이 결혼 적령기라는 중요한 시기를 마냥 흘려보내고 미래에 대한 별다른 계획도 세우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불안하고 걱정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결혼을 준비하는 것보다 사연자님이 느끼시는 우울감과 동반된 증상들이 호전될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이 우선순위입니다.
남겨주신 사연에서 결혼에 관심이 없고 애도 낳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부분과 함께 ‘나 하다 챙기기도 벅차다. 괜히 더 잘 살 수 있는 사람을 끌어다가 나로 인한 우울로 피해 입히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연자님이 지금 겪고 계신 힘듦과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잘 느껴졌습니다. 본인의 어려움이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시는 것을 보며, 사연자님이 참 배려심과 책임감이 많은 분이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연자님이 지금 결혼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결혼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보다 현재의 심리적 소진감, 우울감으로 인한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의 영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우선 우울증 치료와 심리적, 신체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먼저 집중하시고 증상이 호전되다 보면 결혼이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여력도 더 생기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부모님과는 우울증이 현재 사연자님의 삶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 이것을 사연자님의 의지나 노력 부족의 차원이 아닌 증상의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이해하고 지지해 주시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더 이야기 나눠 보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사연자님의 설득만으로 부모님이 충분히 수긍하지 못하신다면 우울증을 겪는 분들의 가족들이 지지를 제공하는 방법에 관한 영상이나 글, 전문가들의 인터뷰, 혹은 지금 치료받고 계신 기관에서의 전문가분 소견을 함께 보여드리면 더 효과적이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연자님께서도 결혼에 대해 무조건 ‘안 한다’라고 반응하시기보다 ‘지금은 우울증 치료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행복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상대방을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일 것 같다. 결혼 자체가 목적이 아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다. ’라는 식으로 대화를 나눠 보시면 어떨까요.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결혼도 모두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 사연자님의 마음에 힘이 더 생기고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물론 반드시 결혼에 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부모님과 충분히 말씀 나눠 보실 기회를 가지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 후에도 부모님이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신다면, 지금보다 부모님과 더 거리를 두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지금은 일단 마음의 평온과 안정, 일상을 잘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회복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사연자님 스스로를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에 있을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님은 사연자님의 삶에 계속 관여하시며 그것이 부모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연자님께는 독립된 성인이자 인격체로서 삶의 주도권을 갖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 과정에서 결혼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혼 그 자체가 곧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에,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먼저 삶의 행복과 의미를 충분히 발견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내가 행복한 한 사람으로 바로 설 수 있을 때, 다른 사람과도 함께 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몸과 마음의 활력, 일상의 행복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