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대인기피증으로 너무 힘들어요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대인기피증으로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이 많아 사연 남깁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했는데, 기존의 제 친구들과는 달리 폭력적이고 욕설 사용이 잦고 술, 담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학생들이 언제나 반에 대부분 있어서 적응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친구 없이 지냈고 항상 혼자인 생활이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남들과 이야기할 때 목소리가 떨리고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모습이 부끄러워서 점점 말을 안 하고 고갯짓으로 의사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고, 그 탓에 사람들과 있는 것이 무섭고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어서 자리를 피하고 혼자 있기를 반복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스물한 살인 지금은 정신과를 갈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병원에서도 그렇고 부모님도 약만으로는 힘들고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제나 강조하시는데요. 그래서 앞으로 바뀌고자 하는 마음으로 어제 헬스장에 가 봤습니다. 가면서도 손이 계속 떨리고 힘이 빠져 실내화 가방을 계속 떨어뜨렸지만 힘을 냈고요.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오픈 직후 시간에 가서 관장님께 고갯짓이 아닌 덜덜 떨리고 더듬는 목소리로라도 이야기를 나누며 PT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어머니께서 그동안의 답답함이 터지셨는지 제게 하소연하셨고, 저는 울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혼나다 보니 우울해져서 안 좋은 생각까지 들었고 조언을 구하고자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으로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두렵고 떨리지만, 변화에 대한 마음도 있으시고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시도도 하셨다니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남겨 주신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사연자님께서는 사회불안장애(사회공포증, social phobia)를 경험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불안장애란, 불안장애의 하나로서 타인에게 노출되거나 자세하게 관찰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에 놓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며,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회불안장애를 경험하는 분들은 타인들로부터 부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일까 봐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마주치거나 교류하는 상황을 피하며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는 매우 불안하고 공포스러워하는 반응을 나타냅니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나 식사 자리, 모임, 발표, 연설 등과 같은 다양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이 자신이 불안해하거나 떠는 모습, 떨리는 목소리, 땀 흘림, 굳은 표정 등을 눈치채고 이상하거나 바보 같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합니다.
사연자님의 경우 초등학교 시절 전학 이후 새로운 환경과 이전에 친했던 친구들과 다른 거칠고 폭력적인 성향의 교우들과의 관계가 큰 유발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전학 가신 학교의 학생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으로서 욕설이나 술, 담배를 자주 하는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학생들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연자님이 교우관계를 맺고 적응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으셨던 것이겠지요.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이후 점점 대인관계에서 위축되고 의사 표현이나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패턴이 굳어지면서 성인기가 되신 지금까지 사회불안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회불안은 불안장애의 하나로서 심할 경우 대인관계, 학업, 직업적 영역 등 삶의 전반적 영역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단순히 의지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가볍게 접근하기보다 전문적인 개입을 통한 치료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현재 정신병원에서 어떤 부분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는지는 사연에 남겨 주지 않으셔서 정확히 알기가 어렵지만, 사회불안장애와 관련해서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약물치료의 경우 항불안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등을 통해 불안과 관련된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비롯한 생물학적 기전을 조절함으로써 불안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는 불안의 기저에 숨어있는 생각들, 예를 들어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면 사람들이 나를 바보 같다고 생각할 거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와 같은 비합리적인 신념들을 살펴보고 이런 신념들을 합리적인 생각들로 바꿔 나가도록 돕습니다. 그와 함께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할 때 나타나는 증상들, 목소리 떨림, 땀 흘림, 표정 등을 관찰하며 피드백을 통해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실제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모의 상황에서부터 시작해 실제 도전에 이르기까지 두려워하는 사회적 상황을 시연해 보고, 단계적 노출을 통해 불안과 공포를 다루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행동적 접근을 병행합니다. 이 과정은 개인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집단치료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사회적 상황이 두렵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헬스장을 찾고, PT를 직접 받아보신 사연자님의 도전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변화를 위한 첫발을 이미 내디디셨다는 점에서 사연자님의 강점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도를 어머니께서 지지해 주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랬더라면 사연자님도 변화를 위한 확신과 동력을 더 얻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마 사연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간 쌓인 감정들, 안타까움과 답답함 등 복합적인 마음이 순간적으로 올라와 사연자님을 나무라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변화가 한순간에 드라마틱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런 부분에 관해 어머니와 진솔하게 말씀 나눠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어머니께서 만족할 만한 정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변화를 위한 출발선상에 있으며 꾸준히 변화될 수 있도록 사연자님도 노력하고, 어머니도 그 과정에서 함께 힘을 실어 주시면 더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연자님이 혼자 변화를 일궈 나가기가 벅차다고 느껴지신다면 전문가를 통한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시면 좋겠습니다. 현재 다니고 계시는 정신병원의 전문가분들과 이런 부분을 논의해 보시면서 가장 적절한 치료 방법이 무엇일지 탐색해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
십 수년간 익숙해진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사연자님께 잘하셨다는 칭찬과 함께, 앞으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 나가셨으면 좋겠다는 격려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