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왜 떠오르지 않을까요?

2026-02-09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나가는 길에 익숙한 향을 맡으면 옛 기억이 문득 떠오르는 것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릴 적 아꼈던 목걸이를 보고서 첫사랑이 떠오른 적이 있으신가요? 이는 냄새와 옛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장기적으로 저장된 기억 속에서 익숙한 냄새라는 힌트가 주어지면 냄새와 관련된 옛 기억이 문득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보고 배우고 느낀 모든 것들이 뇌에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측두엽(temporal lobe)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 측두엽은 장기기억을 무궁무진하게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무한정으로 저장할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암기 시험을 만점 받지 못하는 걸까요? 분명 두 눈으로 봤는데 왜 기억이 나질 않는 걸까요? 분명 우리 머릿속에는 기억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다만, 저장된 기억을 꺼내는 것이 마음대로 잘 안되는 것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사람의 기억이란 무엇인지 뇌과학의 시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진_ freepik

 

∞ 기억이란?

기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작업기억(working memory)과 단기기억(short-term memory)과 장기기억(long-term memory)입니다. 

작업기억은 순간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에 정보를 활용해서 인지적 활동을 수행하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서, 배웠던 방정식을 떠올려서 즉시 수학 계산 문제를 푸는 것은 작업기억을 사용한 것입니다. 

단기 기억은 단기간 동안만 유지되는 기억입니다. 우리가 시험 전에 반짝 집중해서 외우고 벼락치기해서 시험 보는 것은 우리의 단기기억을 활용한 것입니다. 

장기기억은 장기적으로 며칠 후, 몇 달 후, 수년 후에도 회상할 수 있는 기억입니다. 장기기억은 주로 해마(hippocampus)가 있는 측두엽(Temporal lobe)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저장된 장기기억은 서술 기억(declarative memory)과 비서술 기억(non-declarative memory)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기억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억을 의미합니다. 

20년 전 크리스마스에 날씨가 어땠는지, 무척 춥고 눈 오는 날이었다고 옛 사건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이 기억은 서술 기억입니다. 반면에 어릴 적 배웠던 피아노가 10년이 지나도 피아노를 연주 할 수 있고, 20년이 지나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기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비서술 기억입니다. 

 

∞ 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

앞에서 언급했듯 장기기억은 측두엽에 저장됩니다. 측두엽뿐 아니라 주변 회로와 다른 대뇌 영역은 저장된 기억을 회상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지나가다 맡은 향수 냄새가 첫사랑을 떠오르게 한 이유도 첫사랑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측두엽과 함께 저장되었던 냄새와 감정도 기억 회상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즉, 기억과 감정이 함께 조절되고 저장되기 때문에 경험했던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고 회상 하기 위해서는 측두엽과 변연계(Limbic system)가 필요합니다. 

측두엽과 변연계의 회로 중에서 어디라도 손상이 생기면 심한 기억장애를 일으킵니다. 특히 측두엽에 있는 해마(hippocampus)는 기억을 저장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이나 일화를 기억할 때, ‘비 오는 날씨,’ ‘친구 얼굴,’ ‘장소,’ ‘친구의 목소리’ 등 부분적인 요소들이 합쳐져서 한 사건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것이 해마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해마의 역할을 활용해서 마인드맵을 그리듯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영단어를 외울 때, 그 단어의 유래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한다면 단기기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장기기억에 저장되고, 인출하기에도 더욱 유리합니다. 사소한 힌트 하나로 머릿속에 있었던 장기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황인환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