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분노조절장애, 어떻게 고칠 수 있나요?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열아홉 살 고등학생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분노조절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고 욕하며 화내고, 주먹을 쥐고 책상을 내려치는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언니랑 싸우면 제가 눈이 돌아가서 언니의 목을 조르는 행동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화가 나기 시작하면 조절이 안 되고, 머릿속에는 ‘너 오늘 내가 절대 가만 안 둔다.’는 생각으로 가득 버립니다. 몰론 언니도 처음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제 뺨을 세게 때려서 볼에 멍이 들 때까지 저를 때린 적도 있습니다. 제가 잘못을 빌 때까지 때린 적도 있었고요.
그럴 때 엄마는 제 잘못으로만 몰아가서 나무 막대기로 손바닥을 때린 적도 있고, 파리채로 제 등을 때려 자국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아빠는 제게 “너 정말 왜 이래? 죽고 싶어서 그러니? 왜 언니를 가만 두지 못해!”라고 말하면서 제 목을 조르곤 했어요. 전 그런 상태에서 “법 공부한 사람이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라고 악에 받쳐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빠는 더 세게 저의 목을 졸랐고요. 또한 아빠는 제 뒷목을 손톱으로 잡아 피가 날 정도가 되고 엄마가 와서 말리면 그제야 손을 놓습니다.
어릴 때 많이 맞은 경험이 있어서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가 분노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위험한 무기로 제 자신이나 언니를 위협한 경우도 있습니다. 제 자신이나 언니를 해치는 상상도 많이 해 봤지만 현실에선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정신과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씀만 하시고 병원을 데려간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너는 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고 그러느냐.”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셨고요. 이후에 언니에게 공황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정신과에 데려 갔습니다. 이런 걸 볼 땐 ‘난 쓸모없는 딸이구나.’ 하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감정 조절이 안 될 정도로 화가 났을 때조차 어떤 이유로 화가 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화를 내고, 제 몸에 상처가 나거나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정말 죽어야만 끝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앞뒤 안 가리고 덤비며 분노를 표출하는 저,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욕설이나 과격하고 폭력적인 행동화 경향도 드러나는 듯하여, 글을 읽는 내내 사연자님이 걱정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이제 열아홉 살이라는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더 어릴 적부터 이러한 분노 폭발 양상을 반복해 오셨다고 하니 가족도 그렇겠지만 사연자님 본인 스스로 얼마나 힘드셨을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폭발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며, 저마다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 심층적으로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다만, 그중에서도 감정 조절과 관련된 뇌 영역의 기능적 이상이나, 어린 시절의 학대와 같은 가정환경적 요인, 극심한 스트레스나 심리적 트라우마로 인한 감정 조절 능력의 상실, 약물 남용의 부작용 등이 분노 조절을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연자님을 직접 만나 뵙지 않고 사연자님께서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보이는 이유를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연상에 적어 주신 내용 중에 몇 가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어릴 때 많이 맞은 경험’이 있다는 대목인데요, 사연에 밝힌 내용을 참조해 보면 부모님께 물리적 폭력을 당한 빈도수가 꽤 있으신 듯 보입니다.
비단 그러한 상황을 짐작하지 않더라도 사연자님께서 언니에게 볼이 멍이 들 때까지 맞는다든가, 잘못을 빌 때까지 맞은 경험, 어머니께는 나무 막대기나 파리채로 등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맞고, 아버지로부터는 꽤 수위가 높은 물리적 폭력, 목을 조른다든지 손톱으로 피가 날 정도로 가족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당했던 상황들이 무척이나 마음이 아픕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또 속상하셨을까요. 물론 사연자님 역시 현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언니의 목을 조르는 등의 위험천만한 폭력을 가하는 행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할 치료 대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어릴 때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던 경험과 이러한 경험이 사연자님의 정신과 마음,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심도 있게 살펴보는 것은 사연자님께 잠재된 강한 분노감과 과격한 분노 폭발 행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해 보입니다.
사연자님께서 어렸을 적에 가정 폭력에 많이 노출됐던 경험은 사연자님께 ‘생존성 분노’나 ‘체념성 분노’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생존성 분노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짓는 특정 부분에 위협이 가해졌을 때 폭발하는 것으로, 보통 육체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살아남기 위한 대응책으로 발생합니다.
또한 체념성 분노란,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거나 중요한 상황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참기 힘들 때, 즉 무력감에서 비롯되는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지금보다 더 작고 힘이 없는 어린아이였을 때 가족으로부터 자주 신체적인 폭력을 당해 왔다면, 사연자님의 내면 깊은 곳에 이러한 ‘생존성 분노’나 ‘체념성 분노’가 누적되거나 조금만 비슷한 낌새만 보여도 내면에 해소되지 않은 이러한 분노가 건드려져서 분노 폭발을 일으키는 패턴으로 굳어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어른인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하는 측면이 있는데요, 만약 사연자님의 부모님이나 그 밖에 함께 하는 집안의 어른들이 자주 욱하고 분노를 쉽게 드러내는 모습을 보였다면, 아이들도 그러한 방식을 무의식중에 습득하게 되면서 화가 나는 상황에서 갑자기 폭발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습관적 분노 폭발형’이라고 부르며, 폭발적으로 분노 폭발하는 것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학습하면서 습관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죠.
다음으로, 사연자님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며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부모님께서 어느 정도는 전문가의 도움이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주거나 치료를 받게 하는 등의 별다른 조치를 취해 주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감이 자신을 비하하거나 ‘울분’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 듯하여 염려스럽습니다.
반면에 사연자님의 언니분께 공황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께서 언니분이 즉시 치료를 받도록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소외감과 수치심, 왠지 모를 서러움과 차별받는 것 같은 기분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연자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고 또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폭력적인 행위를 가하는 것을 사연자님 스스로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위협적이고도 폭발적인 분노 감정의 표현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가학적인 행위이자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파괴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고 다스리면서 분노 감정을 건전한 방식으로 배출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고 또 반복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화나는 감정이 치솟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6초, 치솟은 화가 우리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단지 90초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평소 사연자님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이나 화의 기운이 감지되는 순간을 잘 알아차리는 연습을 반복하고, 이때 어떻게 ‘화’라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가라앉히거나 식힐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다양한 시도 끝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으로 화를 다스리는 훈련을 이어 나가 보세요.
시중에는 분노의 감정이나 화에 대해 잘 이해함으로써,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다양하고 전략적인 방법에 대해 다루는 좋은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참고하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연자님의 부정적인 감정과 화를 다스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신다면, 반드시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깃들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거나 행동화 문제가 반복된다면,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에 심리치료나 약물치료 등을 고려해 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