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스트레스로 인해 일상생활이 힘들어요

2023-10-21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평소 엄마랑 많이 싸웁니다(싸우는 게 아니라 호통을 당하는 거지만요). 아프다고 하면, 뭐가 아프냐고 네 잘못이라면서 짜증을 내고, 하루 종일 화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반박을 하면 “네 말이 다 옳지.”, “또 이해 못하네?”, “맥락 파악을 못해?” 이러면서 엄청 기분 나쁘게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받은 스트레스는 담아 두지도 않아서 5분도 안 돼서 잊어버리고 넘어가는데, 엄마한테 받은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습니다. 분명 제 생각이 있는데 이 반박거리들을 말 안 하면 미칠 것 같고, 특히 저한테 조금이라도 화내거나 짜증을 내면 스트레스가 0이였다가도 100을 초과하게 돼요. 왜 이러는 걸까요? 

이렇게 엄마한테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화나서 뭐든 집중도 못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것도 못해요. 화가 나서요. 왜 유독 엄마한테만 이러는 걸까요? 제가 분노조절장애인 걸까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남한테 얘기하거나 푼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물건을 훼손하거나… 그냥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머리가 녹는 느낌이에요. 너무 화나서 가슴이 답답하고, 목에도 핏줄이 서요.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걸까요? 상담을 받아 봐야 하나요? 답답합니다….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동안 사연자님과 어머니 사이에 잦은 다툼과 지적, 비난이 있었고 그로 인해 갈등이 깊어지고, 어머니께서는 사연자님께 짜증과 화를 표출하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어 온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런데 왜 유독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머니께서 사연자님께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거나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에서는 더욱 참기 힘들고,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화가 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아마도 평소에 어머니께 호통을 당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연자님께 다정하게 말하거나 지지와 인정을 해 주기보다 면박을 주거나 서로 자기주장을 펼치다가 갈등만 생기거나 감정이 상한 채로 흐지부지하게 대화가 종료됐던 경험이 축적되어 왔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패턴을 보면, “네 말이 다 옳지.”, “또 이해 못하네?”, “맥락 파악을 못해?”와 같이 ‘말’, 즉 언어를 통해 상대방을 비꼬거나 비난하는 등 종종 공격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특징이 엿보입니다. 이는 일종의 언어적 공격으로 볼 수 있으며, 말하는 이가 자기 내면에 잠재된 ‘화’를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화’라는 감정에도 역시 전염성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대부분은 나도 화가 나고, 나 역시 상대에게 화를 내면서 싸움으로 번지는 경험을 해 보셨을 텐데요, 일종의 화가 화를 불러오는 패턴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피우다 남은 작은 담배꽁초가 주변에 연소될 만한 재료를 만나서 더 큰 불로 번지고, 결국에는 산 전체를 태워 버렸다는 내용의 뉴스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우리 마음속에 잠재된 ‘화(火)’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한자로 ‘불 화’ 자를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즉, 당장 나에게 화를 낸 사람에게 똑같이 화를 내면 그 화는 더욱 큰 불길이 되어 파괴력이 커지게 됩니다. 

또한 만약 상대가 너무 강하거나 위치상 똑같이 맞받아치며 화를 표출하지 못할 때는 그 감정을 엉뚱한 대상이나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풀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화나는 감정을 참고 또 참으면서 억누르다 보면, 누군가 날에게 조금만 기분 나쁜 소리를 하거나 공격해 온다 싶을 때 내 안에 응축되어 있던 ‘화’라는 불씨가 마치 연소될 재료를 만나 점화되듯이 폭발적으로 화가 분출되어 감정적으로 제어하기가 힘들어지기도 하죠.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단지 화를 폭발시킨다고 해서 그 화가 건강히 소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순간적인 후련함은 느낄 수 있을지언정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거나, 나에게 막대한 손해로 되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거나 멀어질 수도 있겠죠.

이것이 작은 ‘화’의 불씨가 탈 것을 만나 더 큰 불로 번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에 작은 화라도 그 감정이 감지될 때마다 작은 불씨를 꺼 주듯 그때그때 소화하거나 건강하게 표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진_ freepik

 

이제 다시 사연자님께서 의문을 품었던 지점, 즉 사연자님께서는 유독 왜 어머니께 받은 스트레스에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화가 올라오는가 하는 점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평소 어머니랑 언쟁이 잦고, 또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패턴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에도 현재와 유사하게 사연자님을 비난하거나 지적하는 일들이 종종 있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사연자님의 마음에 상처가 되고, 그것이 아직 채 치유되지 못한 채 생채기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물지 못한 상처가 다시금 어머니의 공격적인 언사를 통해 건드려질 때마다 상처는 더 깊어지고 이로 인한 심적 고통 역시 더욱 심해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어린 시절의 사연자님께서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였기에 모든 것이 서툴고, 당연히 실수하는 일들도 있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연자님께서 이상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많은 경우에 지지나 격려, 포용과 수용보다는 비난이나 호통, 짜증과 조롱 같은 공격적인 피드백이 돌아왔다면, 당연히 사연자님의 마음에는 억울함과 답답함, 수치심, 무력감,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왔을 테지요.

당시에 사연자님은 부모의 양육과 보호가 필요한 작고 힘없는 어린아이였기에, 나보다 힘과 권력이 강한 부모를 향해 맞대응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또 겹겹이 쌓이는 울분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해야 할지 그 방법도 잘 알지 못하셨을 테고요. 

게다가 ‘나는 부모님처럼 부정적인 감정이나 화를 다른 사람에게 분풀이하듯 쏟아내지 않겠다.’는 무의식적이고 강박적인 신념이 생겨나 타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겨도 아무렇지 않은 듯 외면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는 패턴을 굳혀 온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사연자님께서 밝히신 내용 중에 다른 사람한테 받은 스트레스는 금방 잊어버리고, 남한테 스트레스를 받은 일을 이야기하거나 푼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추측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평소에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거나 해소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축적되어 온 만큼, 어머니와의 대화 시 지금껏 수차례 반복되었던 ‘비난형’의 역기능적 의사소통 형태가 재현되면서 억압됐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건드려지고, 내재된 ‘화’가 분출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 용어로는 ‘방아쇠 효과(Trigger Effect)’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을 텐데요, 방아쇠는 소총이나 권총에서 총알을 발사하게 하는 장치로, 이것을 잡아당김으로써 총을 쏘게 되는 원리와 같습니다. 즉, 심리학적으로는 과거의 경험을 다시금 상기시켜서 그에 대한 재경험을 유발하는 자극으로, 특별한 행동 패턴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을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라고 말합니다.  

사연자님께서도 과거부터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반복해 왔던 역기능적 의사소통, 다시 말해, 어머니로부터 비난이나 지적을 받아 왔던 경험이 재현될 때마다 과거에 느꼈던 여러 부정적 감정이 상기됨과 동시에 지금의 불쾌한 느낌까지 더해져 ‘화’의 폭발이라는 행동 패턴을 야기하는 것으로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와 비교해 힘없고 나약한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어머니의 언어적 공격을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생각과 어쨌거나 어머니라는 존재는 아무리 내가 화를 표출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을 그나마 ‘안전한 대상’이라는 무의식적 인식을 바탕으로 화가 폭발되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언급하다시피 화를 폭발시키는 것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사연자님께 필요한 것은, 과거에 해 오던 대화 패턴이나 감정 처리 방식을 잘 살펴보고 어떤 부분에서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지 스스로 탐색해 보고,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내면에 ‘화’를 축적하지 않고, 그로 인해 폭발시키지 않도록 평소에 화를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히 소화하고, 조절하며, 표현하기 위한 꾸준한 연습과 노력을 하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아마도 사연자님의 어머니께서도 이러한 자기 감정 인식이나 감정의 조절 능력이 미숙한 탓에 그동안 의도치 않게 사연자님께 공격적인 언행을 습관적으로 사용해 오신 듯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했기에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사연자님께서는 조금 다릅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변화의 필요성을 알고 계시기에 충분히 바뀌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가장 먼저 사연자님께 제안하고 싶은 것은, 평소 자신의 생각과 욕구, 감정을 관찰하고 인식해 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 보시라는 겁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나의 욕구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건강하게 소통하는 경험을 쌓아 나가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께서 “네 말이 다 옳지.”라고 이야기하실 때는, “서로 생각이나 입장이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랑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라고 이야기하고, “또 이해 못하네?”라고 말씀하실 때는, “제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다시 설명해 주시겠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비난받는 것 같아 속상하네요.”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상대방이 계속해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역기능적인 소통 방식을 고수하면, “서로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을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방지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죠.

또 분노 감정이 너무 뜨겁게 올라오려고 할 때는 그것을 폭발시켰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점을 떠올리면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 초점을 맞추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휴식이나 명상, 호흡 등을 통해 분노를 다스려 보세요. 

그리고 평소에 자기만의 방식이나 취미 생활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이나 압박감, 긴장과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것 역시 ‘분노 폭발’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노력과 실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노로 인해 일상생활이 힘들고 분노 폭발이 계속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에 방문하시어 전문가와 함께 이 부분을 다루어 보셨으면 합니다. 모쪼록 사연자님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