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어딜 가든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아요

2023-10-06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처음엔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몇 달 지나고 나면 결국 그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져요. 친하게 지내면 지낼수록 빨리 그 시기가 오고요. 혹은 제가 그 사람들에게 실망을 해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편한데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아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다가가지 않고, 사귀지 않아요. 이래서 더 단점이 강화되나 싶은 마음이 드는데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착한 척을 많이 하지만, 사실은 화도 많고 성격도 좋지 않아요. 남 탓도 많이 하고요. 제 잘못이 있는 경우에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낯선 일을 많이 하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듭니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에게 과하게 화를 내고 애꿎은 화풀이를 하고, 그렇게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어요. 오랜만에 급속도로 친해지고 교류하던 사람인데… 저는 평생 친구가 없거나 몇 명 없었어요.

요즘 저한테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고… 우울합니다. 제 문제를 제가 직시하면서 평범하게 남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이렇게 온라인 게시판으로나마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친해질수록 사이가 틀어지거나 혼자 실망하게 되어 거리를 두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사회생활도 힘들어지고 또 마음속 고민도 깊어지신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이 참 쉽지가 않죠.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아마 많은 분들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나름의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사연상의 내용만으로는 사연자님의 성격이나 주변인들과 관계, 상호작용상의 특징 등 정확하고 세세한 사항을 알 수는 없지만, 사연자님께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고, 주변 사람들과 큰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연자님의 글을 통해 사연자님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먼저 사연자님께서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착한 척을 많이 한다.’는 것일 텐데요, 이 부분에 대해 한번 함께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실은 나에게도 많은 이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 줌으로써 상대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견제를 받지 않을 가능성도 커지겠죠. 또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얻음으로써 좀 더 빨리 친밀해지는 것도 가능할 테고요.

 

그러나 ‘착한 척한다.’는 행위의 이면에는 본래의 내 모습이나 생각, 주장, 감정 등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고, 그것들을 억누르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억누른 나의 생각이나 감정들은 언젠가는 그 반동으로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기 마련이죠. 

혹시 사연자님께서도 누군가를 사귀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고 또 친밀해지고 싶은 마음에, 가능한 한 상대에게 맞춰 주면서 싫어도 ‘좋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표현한 적이 많지는 않으셨나요? 

그런데 이렇게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상대에게 많은 부분을 맞춰 주다 보면 상대는 ‘○○ 씨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이구나.’, ‘○○ 씨는 항상 맞춰 주고 양보하니까 괜찮겠지.’라는 무의식적인 인식이 생겨나 어느 순간부터 사연자님의 의견을 많이 고려하지 않거나, 자기 식대로 관계를 이끌어 가는 패턴으로 굳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연자님은 ‘어?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하나?’, ‘아니, 그동안 내가 이렇게 자기를 많이 생각하고 배려해 줬는데 나한테는 별로 신경을 안 쓰네?’ 혹은 ‘내 마음을 이렇게 모른다고?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라며 상대에게 실망하거나 속상한 마음이 들면서 급기야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죠. 그러니 누군가를 사귀고 친밀해지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상대의 마음에 들고자 맞춰 주려 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어떤 성격이고 타입인지 파악하고 이해해서 어떻게 상호작용해 나가고 서로의 입장이나 생각을 조율해 나갈지에 초점을 맞추신다면 어떨까 합니다.

또 그 이전에 사연자님이 이 관계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상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러한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기 위해 방관자적인 입장이 아니라, 명확하게 자신의 포지션을 구축하고 또 주체적으로 상호작용하려는 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연자님처럼 소위 ‘착한 사람’의 포지션을 취하는 많은 분들이 관계의 키를 상대방에게 상당 부분 떠넘기다 보니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도 자기의 책임은 외면하거나, 갈등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기보다 회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갈등이나 오해가 풀리면서 관계가 회복되기보다 관계가 틀어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지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한쪽의 잘못으로 몰아가다가 결국 서로 간에 소원해지고 안 보는 사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죠.

 

사진_ freepik

 

그러니 이제부터는 사연자님도 ‘착한 사람’으로 평가받고자 억지로 꾸며 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나라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 솔직하고 진솔하되 예의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으면 합니다. 또한 관계를 지속시키는 데 있어서 자신의 바람이나 욕구 등을 제대로 파악해서 적절하게 자기주장과 자기표현을 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여기서 적절하게 자기주장과 자기표현을 한다는 것은, 나의 생각이나 주장, 감정만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아니며,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소신 있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으되,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도 존중하며 필요한 경우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등의 적절한 사회적 기술을 발휘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와 갈등 상황이 생기거나 의견이 대립할 경우,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기보다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시간을 가지면서 사연자님과 상대의 입장이나 생각 또 전후 사정 등을 고려해서 충분히 숙고하고 고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후에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풀어 나가도록 해야 불필요한 감정싸움이나 후회하는 일을 덜 만들 수 있겠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사연자님의 성격적 특성이나 장단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인관계를 맺을 때 장점은 더욱 강화하고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어떻게 보완해 나갈 수 있을지 한번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기록해 보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또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거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다소 이상적이고 강박적인 사고에 갇히기보다 천천히 상대를 알아가면서 나와 잘 맞고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 나와는 잘 맞지 않아서 척을 지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일정 거리를 두고 지낼 만한 사람처럼 관계에 있어 한계나 거리, 허용의 기준선 등을 마련해 두는 것도 불필요한 심리적 소모나 혼란을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연자님께서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에게 과하게 화를 내고, 애꿎은 화풀이를 해서 거리가 멀어지셨다고 하셨는데요, 아무래도 몸도 마음도 힘든 상황에서 스트레스 관리나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평소 건강도 잘 챙기시고, 스트레스와 감정 관리에도 좀 더 신경 쓰시는 것이 사연자님 본인을 위해서나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 같은 상황에서 사연자님께서 상대에게 정말로 과하게 화를 내거나 실수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이전처럼 관계를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실수를 인정하고 먼저 사과하시는 것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멋진 모습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사연자님께서는 사람들과 친밀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건강한 관계의 욕구가 있으신 분입니다. 또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도 있으시고요. 이는 굉장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관계에 있어서 실수를 하고, 또 어딘가 미성숙한 부분도 있기 마련이죠. 이를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과 이것을 돌아보며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 간에는 분명 이후 관계나 삶을 꾸려 나가는 데 있어서 차이가 날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예전처럼 다시 마음을 조금씩 열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