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장애] ABA Ⅲ - ABC 분석으로 문제 행동 중재하기

2023-09-30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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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키우는 부모님이나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육자라면,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문제 행동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발달상에 문제가 있거나 지연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발달을 해 나가는 아이들 역시 공격적인 행동을 과도하게 표출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문제 행동을 반복해서 나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처음 접하거나 이런 행동이 자연 소멸되지 않고 지속되는 경우,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체벌 등으로 성급히 문제 행동을 고치려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러한 방법은 눈앞에서 아이가 문제 행동을 멈추거나 억제하고 있어서 당장은 효과가 있어 보일지 몰라도 그에 따른 다른 부작용이나 장기적인 효과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접근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아동의 문제 행동에 감정적이고 표면적으로 다가가기보다, 아동이 왜 그러한 문제 행동을 하는지, 어떨 때 문제 행동이 더 심해지는지, 문제 행동을 통해 아동이 얻고자 하는 이득은 무엇인지 등등 아동의 문제 행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구체적인 분석과 같이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문제 행동과 관련된 정보를 얻고 분석하는 체계적인 평가 방법을 ‘기능행동평가(Functional Behavior Assessment: FBA)’라고 하며, 그중 일반인이나 가정에서도 쉽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ABC 분석’입니다. 여기서 ABC 분석이란, 문제 행동이 일어나기 전과 그 문제 행동으로 인해 일어나는 행동의 결과 등을 분석함으로써 문제 행동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와 바람직한 대응 방법을 고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분석 방법입니다. 덧붙여 ‘ABC 분석’이라는 명칭은, 문제 행동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는 일, 즉 선행사건(Antecedent, A), 행동(Behavior, B), 행동의 결과(Consequence, C)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ABC 분석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경증의 자폐증이 있는 열한 살 민준이는 TV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식사 시간이나 외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TV를 끄면 소리를 지르며 자기 머리를 때리는 문제 행동을 보입니다. 그동안 민준이는 TV를 다시 틀어 줄 때까지 이런 자해 행동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민준이의 부모님은 TV를 틀어 주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는데요, 어떻게 하면 이 문제 행동을 고쳐 나갈 수 있을까요?

먼저 ABC 분석을 통해 선행사건과 문제 행동, 결과를 정리해 보자면, 선행 사건(A)은 민준이가 몰입해서 TV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시청을 중단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 문제 행동(B)은 소리를 지르며 자기 머리를 때리는 자해 행동, 결과(C)는 다시 TV를 볼 수 있게 되는 상황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민준이는 문제 행동, 즉 여기서는 자해 행동을 함으로써 자기가 하기 싫은 일(식사나 외출 준비 등)은 회피하고, 하고 싶은 일(TV 시청)은 계속하게 되는 이득을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ABC 분석을 마친 후에는 선행사건, 즉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환경이나 상황에 변화를 주거나 대책을 강구해서 아예 문제 행동이 발생되는 것을 차단하거나 그 횟수를 줄여 나가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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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에서 민준이가 재미있게 TV를 보다가 갑자기 타의에 의해 TV 시청이 중단되는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고 불쾌한 경험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예 식사 이전 시간이나 외출해야 하는 상황 이전에는 TV를 보여 주지 않거나(문제 행동 유발 제거), 하루 일과 중 TV 시청 시간을 사전에 계획하고 약속하는 방식(행동 계약)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또는 무작정 TV를 끌 것이 아니라, 식사를 다 마치면 그때 다시 TV를 봐도 좋다는 선택지를 제시하거나 타이머를 사용해 딱 10분만 더 보고 끄는 것으로 협상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미리 그날의 일정이나 시간 계획을 시각적으로 정리해서 아이에게 보여 주며 잘 설명해 주는 것도 아이의 문제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사전 대응책을 연구 및 고민해서 선행사건에 여러 가지 변화를 주면서 적용해 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최종적으로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능한 한 문제 행동이 발생되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거나 횟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다루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문제 행동을 대체할 만한 바람직한 행동으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요, 즉 아이에게 대체 행동을 가르쳐서 문제 행동 대신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문제 행동을 규정하거나 기술할 때는 방대하거나 모호하게 하지 말고,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서술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이를테면, 기록지를 통해 매일매일 문제 행동이 발생했는지 유무를 체크하고, 또 발생 시간대나 횟수, 행동이 지속되는 시간과 강도 등을 세세하게 기록해서 문제 행동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죠.

특히 문제 행동을 중재하거나 대체 행동을 가르칠 때는 아동의 문제 행동이나 수행하지 못한 부분에 신경 쓰기보다 한두 번이라도 수행에 성공한 대체 행동에 집중하고, 의도적으로라도 부정적 표현보다 긍정적 표현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의 사례에서 민준이는 계속해서 TV를 보고 싶다는 의사를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자해 행동으로 표출했기 때문에, 이때의 문제 행동은 ‘요구 기능’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자해 행동을 대신해서 “TV를 계속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거나 TV를 손으로 가리키는 포인팅 등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표현하도록 가르치고, 이를 잘 이행했을 때는 좋아하는 간식이나 활동 등으로 보상하거나 칭찬, 토큰경제 등으로 강화해 나갑니다.

한 번 중재 방법을 결정했으면, 최소 일주일 정도 실행해 보도록 하고 그래도 문제 행동이 나아지지 않거나 지속된다면, 중재 전략을 수정하는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이때 1) 사전 대응책을 더 연구해서 재설정하거나, 2) 대체 행동을 달성하기 쉽도록 목표 수준을 낮추거나, 3) 바람직한 행동의 출현 시 강화를 더 효과적인 것으로 바꾸거나, 4) 문제 행동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해 보는 방법 등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는 일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라면 더더욱 난관이 예상되죠. 그러나 비록 더디더라도 아이의 성장은 계속되어야 하고,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 역시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에, 문제가 되는 행동을 적응적인 행동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와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아이의 행복과 안녕을 위하는 길일 테니까요.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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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노우에 마사히코 편저(2020). 금지하지 않고 행동 수정하는 ABA 육아법. 마음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