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동생이 이상해요

2023-08-31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집에서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20대 여성입니다. 오늘은 제 동생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왔어요. 제 동생은 올해 20세의 남성입니다. 키는 저보다 조금 더 크고, 저랑 같이 ADHD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

동생은 처음에는 공무원 공부를 굉장히 잘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하루에 10시간가량 공부한 적도 있다고 자랑하고, 대학교에 가서도 떨어진 공무원 시험 준비를 다시 할 정도로 성실하고 부지런해요.

그런 동생이 요즘 조금 이상합니다.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독서실을 가지 못하고, 공공 도서관으로 공부하는 장소를 옮겼는데, 거기서 이상한 사람이 자기를 따라다닌다고 생각해요. 장난으로 “사이비 종교인 아니야?”라고 했더니, 정말 그렇게 믿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싶었습니다. 요즘 세상이 워낙에 흉흉하니까요.

그래서 공부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그런데도 같은 사람을 매일 같은 곳에서 마주친다고 합니다. 마주치는 건 이상하지 않아요. 그냥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마주친 것일 수도 있고, 닮은 사람과 착각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동생은 “그 사람이 자꾸만 나를 따라다닌다.”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경이 더 예민해져서 새로 옮긴 도서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계속 본다.”라던가 “키 작고 뚱뚱한 사람이 나를 계속 따라다닌다.”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해요.  

동생은 도서관에 갈 때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어느 날은 자전거 자물쇠의 번호가 자신이 설정한 것과 다르게 되어 있다며 “누군가 내 자전거를 만지는 것 같다.”라고 하더라고요. 이것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실제로 누군가가 자물쇠를 만진 것일 수도 있고, 자전거 도둑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매일 그러니까 오히려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같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따라다닌다거나, 계속 훔쳐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물건을 계속 만진다고 생각하는 제 동생. 누나로서 어떻게 해 주는 게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올려 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최근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동생 분께서 누군가 자신을 자꾸만 따라다니고 또 주시하며 자신의 물건까지 만진다며 불편감을 호소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걱정이 크신 듯합니다.

물론 사연자님 말씀처럼 요즘 심심찮게 발생하는 사회적 범죄로 인해 동생 분께서 실제로 같은 사람을 매일 마주친다거나 공부 장소를 옮겼음에도 동일인이 계속해서 따라다닌다면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많지 않기에 매일같이 이런 불편감을 호소하는 동생 분의 말이 과연 사실일지, 혹시 다른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의구심과 함께 걱정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다만 동생 분을 직접 뵙지 않고, 또 동생 분이 말씀하신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섣불리 답변을 드리는 것이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사연자님의 말씀만으로는 동생 분이 보이는 증상에 따른 정확한 진단이나 원인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기서는 사연자님의 글을 토대로 현재 동생 분께서 보이는 증상에 대해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한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가능하다면 하루 혹은 이틀 정도 동생 분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실제로 누군가가 동생 분을 따라다니거나 주시하는지는 않는지 현실 검증을 해 보시는 겁니다. 동생 분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사실일 확률은 낮아 보이지만, 일말의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동생이 걱정된다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해 주고 함께 동행해서 동생이 느끼는 불안감을 진정시켜 주신다면 어떨까 합니다. 

이를 통해 동생 분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가족이 있고, 또 도서관에서 누나 분과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면서 객관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고, 현실감각을 일깨우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또 평소에도 동생 분이 현실감각을 잃지 않도록 곁에서 현재의 상황이나 현실을 자꾸만 상기시켜 주는 대화를 해 나가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실제로 동생 분께서 주장하는 이야기들이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현재 망상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거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식의 피해망상 증상에 가깝습니다. 

망상이 나타나는 정신과적 질환은 다양합니다. 주로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양극성장애나 주요우울장애에서 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급격한 스트레스의 증가로 인해 일시적인 망상 증상이 출현할 경우 별다른 치료 없이 호전되기도 하지만, 다른 정신질환에 의한 망상 증상이라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으니, 동생 분에게 잘 말씀 드려서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망상을 치료할 때 가장 어려운 점 중에 하나는 망상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자신의 망상에 대한 병식이 거의 없으며, 이 때문에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드물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환자의 가족이나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_ freepik

세 번째는 동생 분께서 현재 사연자님과 함께 ADHD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만약 ADHD 치료 약을 복용 중이시라면 드물지만 약물의 부작용도 의심해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현재 ADHD 치료를 해 주시는 전문의 분께 동생 분의 망상 증상에 대해 말씀드리고, 약물의 부작용 가능성은 없는지 살펴보고 전문의와의 지시하에 다른 치료 약으로 바꿔 보면서 동생 분의 경과를 지켜보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사연자님께서 올려 주신 사연만으로는 동생 분이 보이는 피해망상적 경향이 망상이 확실한지, 일시적인 것인지, 다른 정신과적 질환에 따른 것인지 등등 정확한 진단이나 원인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심리적 불안이나 극심한 스트레스가 망상 증상을 악화시키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공무원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적당한 휴식과 수면, 영양 등을 챙기고 스트레스 관리에도 신경을 쓰시는 것이 현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동생 분과 함께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어 전문가의 면밀한 진단과 상담을 받으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동생 분께서 지금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시고 준비하는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으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