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수치심을 심하게 느낍니다

2023-08-30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30대 여성입니다. 저는 이상할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욕구를 느낄 때도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배가 고파도 ‘한 것도 없으면서 왜 배가 고프지? 돼지 같다.’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졸음이 오면 ‘남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데 지금 잠이 오니?’라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합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눈에 들어오면 ‘내가 왜 잘생긴 남자를 보고 기분이 좋아지지? 쓸데없이 성욕만 많네.’ 하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식입니다. 제 안에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트집을 잡는 존재가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다 저를 욕할 거라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사는 내내 이런 병적인 부끄러움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튀어나와 너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이것 때문에 놓쳐 버린 기회도 많고, 창피함을 당하기 싫어 사람을 피하다 보니 친구도 적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부끄러움에 대해 알아보던 중 ‘수치심’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느끼는 것이 부끄러움이라면, 수치심은 나의 존재 자체가 세상으로부터 거부되었을 때 느끼는 절망감, 존재의 부적절함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제가 계속해서 느꼈던 것이 수치심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 저는 늘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가 더 행복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습니다.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는 부모님의 혼전 임신으로 생겨난 맏이입니다. 그런데 저희 부모님의 결혼 과정은 좋지 못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중범죄자였는데,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어머니와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어머니는 결혼식 직전에야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냥 결혼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제가 생겨 버린 탓에 어머니께서 원치 않는 결혼을 강행하신 것 같고, 저를 키우느라 어머니께서 이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해서 힘드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장 환경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많은 폭력을 가하였고,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제게 떠넘겼습니다(“네가 착하게 굴지 않아서 우리 집이 화목하지 못하다.”라고 말하는 등). 저의 짐작으로는 제가 느끼는 수치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이런 어릴 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제가 성인이 된 이후 이혼하셨고, 저는 경제적으로 자립했으며, 어릴 적의 꿈도 이루었고, 좋은 파트너를 만나 인생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수치심은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직업적으로 아무리 성공을 거두어도, 아무리 나를 아껴 주는 사람을 만났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나는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사람들이 착해서 나에게 동정심을 보여 주는 거야.’, ‘남들이 내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하고 비웃을 거야.’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자리 잡고 있어서 너무 힘듭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이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제발 도와주세요.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감시하며 비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욕구나 감정이 들 때도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검열하는 무의식적 사고가 작동될 때마다, 참 많이 괴롭고 또 슬프셨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욕구나 감정이 정상적이지 않고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을 때조차 실패하거나 창피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주변의 좋은 이들과 함께하며 친해지고 싶지만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하거나 그들이 내 본모습을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하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수치심 등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어 주저하고 포기해야 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으셨을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반복될수록 사연자님께서는 어쩌면 ‘나는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일들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하고 또다시 스스로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자책하지는 않으셨을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사연자님께서 사연에 밝혀 주신 것처럼, 사연자님의 탄생 배경이나 성장 과정에서 너무 일찍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상처가 되는 말들과 가정 폭력에 노출되면서 자기 존재의 가치가 뿌리째 흔들릴 만큼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는 데 치명타를 입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한 작고 귀한 생명의 탄생은 이 세상의 모든 축복을 받아도 모자랄 만큼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생명체는 누군가가(대부분 주 양육자인 부모)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며 온전히 사랑을 베풀 때, 자기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건강한 자아상’을 형성하며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 양육자나 가족들로부터 충분한 애정과 따뜻한 관심, 적절한 보살핌 등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 자신조차 자기 존재 가치에 대한 의구심을 품거나 내면 깊은 곳에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자리 잡아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뒤늦게 결혼 상대자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고 결혼이 망설여졌을 어머니께서 혼전 임신으로 사연자님을 품게 됐고, 결국 결혼을 결심했지만 어머니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혼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어려움, 좌절감과 불행감 등을 성인으로서 감내하지 못하고 어리고 약한 사연자님의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방식을 통해 본인의 심리적 고통감을 덜고자 하셨던 것 같아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사연자님께서 착하게 굴지 않아서, 또 사연자님의 탄생 때문에 어머니께서 불행해지거나 이혼하지 못한 탓이겠습니까. 임신을 한 것도, 또 결혼을 한 것도, 어려운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로 한 것도 모두 성인으로서 어머니의 선택이었고, 그에 따라 자신이 감내해야 했던 책임이었을 겁니다. 물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이 녹록하지 않고, 또 어머니께서는 나름의 심리적인 고통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사연자님 때문이겠습니까. 이번 답변을 통해 어머니의 심리적 고통감이나 가정에서 이루어진 폭력, 어려움이 발생된 것은 결코 사연자님의 존재나 잘못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히려 미성숙한 부모님으로 인해 마음의 고통을 짊어져야 했던 가정 폭력의 피해자 입장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주 어릴 때부터 무의식중에 뿌리박힌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 ‘나는 존재 자체가 수치다.’라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신념을 이제는 바로잡아 나가야 합니다. 이제부터 뿌리 깊게 박힌 수치심을 서서히 걷어 내고, 건강한 자아정체감과 자아존중감을 발달시켜 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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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존감, 즉 사연자 스스로가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과 정체감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조건이나 요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돈을 잘 벌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성공해서’, ‘외모가 괜찮아서’ 내가 스스로를 혹은 타인이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달리 이러한 외부적 조건이 더 나빠지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언제나 괜찮은 사람,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인정해 주는 것부터 시작하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자존감과 자기 가치감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은 내면의 비판자를 서서히 잠재우고, 내면의 지지자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입니다. 즉, 내면의 비판자 목소리가 작동할 때, 이 목소리에 일단 주의를 기울이고 이것이 정말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반박해 보는 겁니다. 대부분 스스로를 엄격한 잣대로 검열하고 비난하는 것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부정적이거나 부당한 대우, 왜곡된 미러링을 반복해서 경험한 것이 내면화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상황이나 순간에 ‘나는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혹은 ‘사람들이 착해서 나에게 동정심을 보여 주는 거야.’라는 비판자 목소리가 작동할 때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아 마땅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사랑과 신뢰를 꾸준히 보여 주는 것은 나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내게 사랑스러운 면과 좋은 점이 많기 때문이야.’처럼 내면의 비판자를 약화시키고 대신에 내면의 옹호자 혹은 지지자의 목소리를 키워 가는 연습을 자꾸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연습이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고 또 몇 번의 시도만으로 당장에는 효과가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내면에 뿌리박힌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지우고 또 아무리 지워 내 봐도 끈질기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할 테니까요. 그러나 꾸준히 이런 훈련을 반복하신다면 점차 수치심은 옅어지고, 자신과도 한결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인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연자님께는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고 이해하며, 자아 성찰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이 엿보입니다. 또 충분히 스스로의 내면을 탐색하며, 성찰해서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연자님 안에 있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감정을 필두로 자신의 내면과 접촉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 갈수록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성숙해지는 시간이 될 테지요.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짓눌릴 때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 나의 감정이나 생각에 초점을 맞추기 힘듭니다. 그보다 다른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키거나 감정에 휩쓸려 자꾸만 자기 자신을 잃어 가게 될 수 있으니, 이 부분을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이죠.

따라서 사연자님께서 어떠한 상황에서 특별히 수치심이 자극된다는 느낌이 들면, 잠시 멈춰 서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지금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욕구일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는 건가?’,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상대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처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응답해 나가는 것이죠. 

물론 이렇게 자기 스스로와 대화하며 숨겨진 욕구를 알아차리고, 그에 상응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옮기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렵고 또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는 두려움이 앞서거나 더 큰 수치심이 자극되고, 많은 시행착오나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다 보면, 타인이 부여하는 가치나 욕구가 아닌 사연자님께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감, 건강한 정체성과 자존감 등을 쌓아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받거나 인정받을 필요도, 또 그럴 수도 없습니다. 남들이 내 진짜 모습을 알게 되건 말건, 또 그래서 그들이 사연자님을 인정하든 말든, 그것이 사연자님의 삶과 존재의 가치에 별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면, 이제부터는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보다는 사연자님께서 자신의 욕구와 감정, 생각과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인정하고 위로하며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오랫동안 사연자님을 괴롭혀 왔던 수치심이라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속박에서도 벗어나리라 믿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