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직업 군인들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정석입니다.
어제 예비군 훈련 통지를 받았네요. 전역을 하고서 잠시 잊고 지냈지만 아직도 나라의 예비군이라는 사실을 문득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작년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되는데요. 비록 예비군 훈련이라는 것이 귀찮고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 지킬 수 있는 나라가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군인들을 떠올릴 때면 우리는 보통 이등병으로 군대에 가는 용사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남성들이 군대에 가는 만큼 우리의 아들이자 형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마치 우리의 가족으로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용사들의 이야기가 아닌 직업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군대에 있을 때 오히려 정신건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직업군인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용사들은 상대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기에 어렵지 않고 부대에서 오히려 치료를 권하기도 하며 상담관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기에 직업군인 보다 비교적 나은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직업군인들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용사들에 비해서 군에서 월급을 받아 생활한다는 점, 자발적으로 군에 들어왔다는 점 때문에 용사들에 비해서 더 강한 책임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는 인식이 그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고 국민들도 직업군인들의 정신건강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는 모습을 지휘관이 알게 된다면 진급에서 누락될지도 모른다는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 군에 마련되어 있는 정신과나 상담사는 마다하고 굳이 비싼 치료비를 내며 민간에서 치료를 받는 모습 또한 종종 보게 됩니다.
사실 높은 계급 자체가 정신과 치료나 심리상담을 받는 것을 상당히 제한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부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사기가 전투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군대의 특성상 지휘관이 부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직업군인들은 전쟁 자체를 업으로 삼은 만큼 국방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소중한 자원들임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관리에서는 용사들에 비해 상대적인 후순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단에 몰릴 때까지 참고 지내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직업군인들이 용사들에 비해서 결코 적지 않은 수이고 이들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하는 소중한 군인임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최근 미군에서 전역한 간호장교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미군에서는 계급과 관계없이 모든 군인들에게 제한 없는 심리지원을 제공하며 심리지원을 받았는지 여부가 진급과 관계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도 군과 국민들이 직업군인들의 정신건강도 용사들만큼 소중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부하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군의 특성을 이해하고 심리지원의 비밀을 철저하게 유지하고 지원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진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또한 국민들과 정치인들께서도 용사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휘하는 직업군인들의 정신건강을 개선하는 것이 결국 조국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직업군인들에게 심리지원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수많은 동료들을 사고로 잃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음에도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시 훈련을 위해 부대로 복귀하던 특전사 원사님의 기억을 떠올리며 저희 글을 마무리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정석 ㅣ 해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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