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예민해서 살기 힘듭니다

2023-08-04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눈팅만 하다가 용기 내어 글을 씁니다. 저는 예민합니다.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노래 크게 듣고, 천박하게 껌을 씹어 대는 사람들, 지하철 잡상인,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예의 없는 진상들, 신호 안 지키는 사람과 차 등등. 이런 사람들 보면 혼자 속으로 욕하고, 막 죽여 버리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사는 게 참 피곤합니다. 가족은 제가 너무 예민하다고, 좀 편하게 살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나요? 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건 압니다. 

도대체 저라는 사람은 왜 태어나서 고통 없이 사라지지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사는 게 지겨워요. 안 태어났으면 일 안해도 되고,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고… 물론 태어나서 행복한 적도 있지만,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복권에 당첨돼서 평생 놀고먹기만 하고 싶은데… 살고 싶지 않다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제 심리는 뭘까요? 

우울한 감정이 든 지는 몇 년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삶을 마감하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실제로 시도해 본 적은 없고요. 그냥 눈 딱 감고 뛰어내릴까? 이런 생각도 하고요. 극단적인 선택에 관한 기사를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순간은 너무나 아팠겠지만 지금은 세상에 없으니 부럽더라고요. 가끔은 이런 제가 무섭게 느껴져요. 견디지 못할 힘든 일이 생기면 정말로 죽어 버릴까 봐요.

얼마 전 퇴근길에 너무 힘들고 짜증 나서 울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초록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어떤 차가 제 앞을 지나가더라고요. 개념을 상실한 인간들이랑 살아가야 하는 게 너무 화나고 짜증 나고 이런저런 힘든 마음이 겹쳐져 울었습니다. 

씻을 기운도 없어 앉아서 울다가 해야 할 일이 많기에 그래도 해야지 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집안의 먼지를 닦고, 바닥도 닦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씻었습니다. 결벽증인지 강박증인지 모르겠지만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하면서 청소를 합니다. 귀찮고 하기 싫은데 해야지 제 마음이 편합니다. 안 하면 더 살기가 싫어질 것 같아서요. 벌레를 싫어하고, 먼지 쌓인 꼴을 못 보고, 바닥에 머리카락도 치우고, 밥 먹고 설거지를 바로 해야 마음이 편하고, 씻을 때마다 하수구에 있는 머리카락을 다 빼내고, 음식물 쓰레기나 택배 상자도 바로 갖다 버립니다.


저도 이렇게 살기 싫습니다. 그냥 편하게 살고 싶은데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나요. 그래서 다 놔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쉬고 싶어요. 살고 싶지 않다면서 매일매일 청소하는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일하러 가기는 싫지만 돈은 벌어야 하니 출근하는 거랑 비슷한 걸까요?

돈 버는 게 너무 힘들다. 이런 노예 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져서 편해지고 싶다. 사는 게 지겹다. 나이 먹으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텐데… 걱정이다. 매일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신과에 가 본 적은 없고요. ‘약을 먹으면서까지 살아야 할까? 그냥 그만 살고 싶다.’ 이런 생각입니다. 그냥 사는 게 너무 지겹습니다. 인간으로 사는 게 참 피곤해요. 배고프면 밥 먹어야 하고, 밥 먹으면 치워야 하고, 씻어야 하고, 눈 뜨면 일 가야 하고…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어느 순간 너무 귀찮고, 지겹고, 지긋지긋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썼었는데… 기댈 곳이 생긴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네요.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올려 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 스스로 느끼기에, 또 주변 사람들도 사연자님의 예민한 성격 때문에 사는 데 불편하고 또 피곤한 일들이 많다고 여겨져 좀 편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본인의 타고난 성격이라 바꾸기 힘들다는 생각 때문에 더 괴로우신 것 같습니다.

스스로 예민하다고 생각하시는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살다 보면 누구나 괜스레 울컥하고,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거슬리고,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런 답답하고 짜증 나며 울컥하는 기분이 너무 자주 느껴지거나 마치 발에 붙은 껌처럼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을 때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더해져 마음의 고통이 가중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사연자님께서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처럼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는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예민함을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거나 민감하게 다루어지지 못한 경우 등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나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던 사건, 대인관계상의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예민함이 더욱 증폭되었을 가능성도 있을 테고요. 물론 한 가지 이유만으로 사연자님의 예민함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으며, 다양한 요인과 복합적인 과정이 작용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또 지금 사연자님께서 겪고 계신 심리적 고통이 모두 예민함이라는 기질이나 성격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어릴 때부터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들은 감각이 민감하거나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커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다양한 자극 요인에 더 많이 자극받고, 더 크게 반응하게 됩니다. 즉, 일상생활에서조차 다른 사람에 비해 불편감을 더 자주, 더 크게 느낌으로써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게 되죠.

그러나 이러한 예민함에 대해 이해할 때 알아야 할 것은 예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만, 그 정도나 어떤 면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은 예민한 구석이 있으며, 예민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자극에 다 극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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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민한 성격이나 기질 탓에 가장 피곤한 사람은 당연히 본인 자신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민한 분들은 성장하면서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러한 예민함을 스스로 잘 조절해서 불필요한 고통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예민함을 잘 조절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사연자님의 몸과 마음의 컨디션 관리 능력을 키워 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몸이 아프거나 잠을 잘 못 자는 등 신체적으로 불편감이 있을 때 더 많이 칭얼거립니다. 이럴 때는 모든 감각도 한껏 예민해져서 자극에 더 민감해지고 고통감도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이는 어른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따라서 평소 몸이 너무 피로해지거나 자주 아프지 않도록 신체적인 건강을 잘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절한 휴식과 운동, 양질의 수면과 영양 개선 방법 등을 계획해서 조금씩 실행으로 옮겨 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더 힘들고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연자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신체가 덜 피로한 상태일 때 자극에 덜 민감해지고 예민함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컨디션도 잘 조절해 나가야 합니다. 시시때때로 자기의 감정과 생각 등 정신적인 컨디션을 체크하고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누적되거나 갑작스럽게 짜증이 치솟는 감정 등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평소 감정적으로 예민해지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는 가만히 그 감정을 바라보며 잠시 머물렀다가 흘려보내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 보세요. 그러면 단순히 ‘불쾌하다’거나 ‘짜증 난다’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부정적 감정이 좀 더 명확하게 인식되면서 한결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때 천천히 복식호흡을 반복하면서 호흡에 집중하는 것도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어떨 때 주로 짜증이 나거나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는지, 그때 함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기록해 보고, 사고에 왜곡된 측면은 없는지, 감정이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보세요. 그럴 때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대체적인 사고방식이나 적응적인 관점은 없는지, 다음에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유연하고 덜 반응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지 기록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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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사연자님께서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영역이나 사소하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일들에는 의식적으로 주의를 덜 기울이되, 통제 가능한 영역과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일들에 자꾸만 주의와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령 오늘 길을 걷던 중에 일기예보에도 없던 소나기가 사정없이 쏟아져서 무방비 상태로 온몸이 흠뻑 젖었던 경험이 누구든 있으실 겁니다. 안 그래도 지친 퇴근길에 한 개념 없는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연자님 앞으로 쌩하고 질주하던 일처럼 말이지요. 이러한 일들을 우리의 일상에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우리가 통제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예민하신 분들은 이렇듯 자신의 통제력을 벗어난 일들에 좀 더 쉽게 불안해지거나 불쾌감을 경험합니다. 사연자님께서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씻을 기운도 없을 만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먼지를 닦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샤워도 하는 등 해야 할 일을 빠짐없이 해 오신 것은 자신이 통제 가능한 일들을 곧이어 수행함으로써 통제력을 되찾고, 불안감을 낮추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으로도 이해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생활 습관은 사연자님의 일상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자 성실함의 지표로서 장점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심리적인 에너지가 현저히 저하되어 있는 만큼 일상의 일들조차 상당히 버겁게 느껴지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상의 공간에서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한 채 무겁게만 다가올 때는 잠시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안 보이는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가까운 근교나 동네의 쾌적한 호텔에라도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충분히 이완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는 불안한 마음이 들거나 불쾌감으로 짜증이 솟구칠 때마다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말들을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뭔가가 불편해서 칭얼거리면 어머니는 포근하게 아이를 안아 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 주며 감정을 진정시켜 줍니다. “괜찮아. 별일 아니란다.”, “지금은 좀 아프겠지만 이 연고를 바르면 곧 나아질 거란다.”, “우리 아가 속상했구나.” 그러면 아이는 안정감을 되찾으면서 점차 진정되지요. 이런 자기 위로의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들려줌으로써 사연자님 또한 안정감을 되찾고 감정의 조절력을 길러 나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연자님께 도움이 될 만한 위의 몇 가지 제안을 시도해 보신 후에도 여전히 무기력감이나 우울감, 자살 사고 등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또는 이러한 제안들을 실천해 볼 만한 에너지가 없다고 여겨지신다면 하루빨리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어 좀 더 면밀하고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아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예민함은 꼭 나쁜 특성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민함이 잘 조절되고 긍정적으로 발현될 때 인생의 깊이를 더 숙고하고, 즐거움을 보다 향유하며, 감성적으로 굉장히 풍부한 순간들로 채워 가는 좋은 자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남다른 예민함으로 인해 많이 힘드셨다면, 이제부터 예민함을 잘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셔서 사연자님의 인생에서 좋은 자양분으로 거듭나기를 응원합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