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결핍 사회, 우리에게 연민이 필요한 이유 

2023-08-02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텔레비전 뉴스나 인터넷 기사 등 언론을 통해 우리가 접하는 소식 중에는 좀처럼 훈훈하고 감동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불과 몇 십 년 사이 나눔과 봉사, 기부처럼 가슴 따뜻해지는 소식들은 점점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는 반면, 이를 대신해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들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무겁게만 합니다. 

최근에도 신림역 칼부림 사건, 일명 ‘묻지 마 범죄’를 비롯한 영아 유기, 아동학대, 학교 폭력과 교권 추락으로 인한 자살 사고 등등 가슴 먹먹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어 너무 안타깝고 마음까지 울적해집니다.

비극적인 잔혹 범죄나 사회 각층에서의 분열과 대립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각종 사건 사고가 끈이지 않는 데는 사회구조적 측면, 구성원 개개인의 정신건강 상태 같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성과와 능력만을 중요시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 팽배한 이기주의와 사회 구성원들 간의 연대감 상실, 계층 간 불균형 심화 등으로 인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국가와 사회를 향한 원망감을 키우는 이들이 점차 증가되는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갈수록 그 수위가 높아지고 빈번해지는 각종 범죄 소식을 접하는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나 또한 언제든지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사회에 대한 불신감도 점차 깊어지는 듯합니다. 

이처럼 불안감과 불신감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마치 가시를 바짝 세운 채 몸을 웅크린 고슴도치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포식자를 만나거나 위협을 느끼면 뾰족하게 가시를 세우고 공처럼 몸을 말아서 자기를 보호하는 고슴도치. 그리고 이런 고슴도치들이 많아질수록 결국엔 서로에게 더욱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고립감과 외로움만 가중되리란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한 이치일 것입니다. 웅크린 고슴도치가 점점 더 늘어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진_ freepik

 

연민(compass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com’과 ‘pati’가 그 어원으로, ‘함께 괴로워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연민(憐憫)’에 대해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이라고 정의하고 있죠. 우리 인간에게는 본래 이처럼 고통받는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함께 괴로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이를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하여,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 즉 사단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죠.

그만큼 ‘연민’이란 우리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이 연민의 감정이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 괴롭다.’고 소리치거나 타인의 고통에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외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듯하여 우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연민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한 감정입니다. 많은 과학적 연구들에서 연민을 품는 것이 신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줄리안 홀트-룬스타드와 그의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연민과 관련된 사회적 연결이 염증을 감소시키고, 면역 기능을 강화하며, 질병 회복 속도를 높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연민의 감정을 품었을 때 환자의 자율신경계가 진정되고, 호흡과 심장박동 수의 변화 폭이 조절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신경과학자 헬렌 웽 박사의 연구 및 데이비슨 박사의 실험에서는 연민을 느끼도록 훈련된 젊은 성인들이 경제 게임을 하는 동안 더 이타적으로 행동했으며, 이들이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연민을 느꼈을 때 정서 조절 및 긍정적 감정, 공감,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 뇌 영역에서 활동이 증가되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인 연민을 자주 느끼고, 또 이것을 실천할수록 ‘나’와 ‘너’,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는 물론 더 큰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그러나 이러한 연민의 많은 혜택과 가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연민을 발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인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먼저, 우리의 시간을 빼앗고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각종 전자기기, 즉 휴대폰이나 인터넷 사용에 몰입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 세계에 접촉하거나 대면적인 만남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 가능한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또 부정적인 감정, 즉 두려움이나 좌절감, 분노와 수치심 같은 감정에 휩싸일 때 우리는 타인과 세상에 대해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연대감과 이타심을 키우기보다 고립되고 자신에게만 몰두하기 쉽습니다. 마치 잔뜩 겁에 질려 공처럼 몸을 웅크린 고슴도치처럼 말이죠.

그런데 몸을 한껏 웅크린 고슴도치의 몸을 다른 누군가가 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고슴도치가 스스로 긴장을 풀고 몸을 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합니다. 고슴도치도 언제까지나 웅크린 자세만 고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몸의 긴장과 경계심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면 알게 될 테지요. 자신처럼 두려움과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가시를 세우고 공처럼 몸을 웅크린 고슴도치들이 우리 주변에 늘 있어 왔다는 사실을. 그렇게 다른 고슴도치들의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며 연민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더 이상 겁에 질려 가시를 세운 채 몸을 웅크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말이지요.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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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Julianne Holt-Lunstad, Timothy B. Smith, and J. Bradley Layton, “Social Relationships and Mortality Risk: A Meta-Analytic Review”, PLoS Medicine7, no 7(2010), https://doi.org/10.1371/journal.pmed.1000316.

2. K, J. Kemper and H. A. Shaltout, “Non-Verbal Communication of Compassion: Measuring Psychophysiologic Effects”, BMC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11, no. 1(2011): 132.

3. Helen Y. Weng, Andrew S. Fox, Alexander J. Shackman, Diane E. Stodola, Jessica Z. K. Caldwell, Matthew C. Olson, Gregory M. Rogers, and Richard J. Davidson, “Compassion Training Alters Altruism and Neural Responses to Suffering”, PMC, 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713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