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살해, 유기 사태를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2023-07-22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태어난 뒤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던 아동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출생 미신고로 인해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릴 수조차 없었던 아이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려 왔습니다. 

영아 살해·유기 사건이 연달아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자 정부는 그제야 부랴부랴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에 들어갔고, 2023년 7월 18일 현재 2,123명의 출생 미신고 아동 중 약 12%에 해당하는 249명의 아동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중 800여 명의 아동은 아직 그 행방과 생존이 파악되지 않아 수사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어떤 사회적 감시나 도움의 손길이 뻗치지 못한 아동호보의 사각지대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동들의 사망 비보는 차마 어떠한 말로도 그 비통함을 표할 길이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리도 연약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까요?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발생한 아동학대 3만 7,605건 가운데 83.7%가 친부모로, 아동학대 사망 가해자 10명 중 7명은 20~30대의 젊은 부부였다고 합니다. 자녀를 출산하고 사랑으로 양육하고 보호해야 할 부모가 아동학대 가해자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믿기 힘든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동학대 사망 가해자의 대부분이 젊은 부부라는 통계는 눈여겨봐야 할 부분입니다. 전문가들은 젊은 부부 사이에서 유독 아동 사망 사례가 번번한 이유로 “공감 능력의 부족”을 꼽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부모 교육이 절실할 뿐만 아니라, 강제력 있는 정책도 동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또한 젊은 부부 가해자 101건의 직업을 파악한 결과, 무직이 27명(26.7%), 일용직이 12명(11.9%)로 많은 경우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학대로 사망한 아동들의 가정 가운데 약 40%에서 공통적으로 ‘가정불화’가 확인됐습니다. 가정불화의 요인은 표면적으로는 부부 싸움이나 아버지의 가정 폭력 형태로 나타났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가장의 실직이나 경제적 곤란, 질병 및 가해자 부모의 정신질환 문제 등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모의 정신질환 문제 등으로 인해 아동의 돌봄이 방치되거나 가정 폭력이 일상화되면서 가정 내 가장 약자인 아이들에게 그 화살이 돌아가고, 결국 되돌릴 수 비극적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사진_ freepik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 네 명 중 한 명(23.9%)은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알코올 남용이나 중독 경험이 높고, 감정 및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아동학대 가해자 부모 중에는 자신이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비율도 꽤 높은 편입니다. 아동학대의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학대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독일, 스웨덴과 등 여러 선진국에서 아동학대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필요한 정신질환 및 약물중독 · 심리치료, 부모 교육 프로그램, 양육 상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며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법원이 이수 명령을 한 경우에만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어, 모든 학대 가해자가 전문적 치료를 받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미신고 아동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달 의료기관이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에 이어, 지난 7월 18일, 영아 살해 유기 처벌을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세상에 자신의 탄생을 알리지도 못한 채 이제는 별이 되어 버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늦은 것만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이를 통해 아동의 권익을 보호하고 단 한 명의 헛된 죽음이라도 막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학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실제로 매년 아동학대 신고 접수 건수와 사례 판단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반해 관련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또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들은 평균적으로 1인당 약 100건의 사례를 담당하고 있어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상담원들은 예산과 인력 부족, 필요한 권한의 부재 등이 하루빨리 개선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의 아동·가족복지 공공지출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로 OECD 회원국 평균인 2.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이러한 인구 감소에 따른 국가경쟁력을 걱정하기 이전에, 과연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든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데는 얼마나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고 철저히 반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가는 아동·가족복지 공공지출 비율을 늘리고, 아동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정책 마련에 더욱더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동학대와 관련해서는 학대 예방 및 사후 관련 가족 지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족 일은 가정 안에서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도 가정폭력이나 학대에 있어서는 결단코 예외가 되어야 합니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아동학대가 의심되거나 그 사실을 알게 된 그 누구라도 이를 외면하지 않고 즉시 신고하는 것만으로도 꺼져 가는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녀이거나 부모입니다. 그래서 아동학대는 남의 이야기, 다른 가정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며, 곧 책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

참고문헌

류이근 외(2016).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시대의창.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25032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1827920&memberNo=24167781&vType=VERTICAL

https://www.yna.co.kr/view/AKR20230718050100530?input=1195m

http://www.weekly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562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