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아이를 돕고 싶습니다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고등학생인 아이는 아기 때부터 저에겐 좀 버거운 아이였습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깨서 날카롭게 울어댔고, 달래기도 힘들었고, 만 5세가 될 때까지 통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이유 없이 깨서 울어대기 일쑤였고, 새벽부터 일어나 놀아 달라 보채기도 했어요.
터울 있는 동생이 태어나고 예민함이 더해졌고 초등학교 저학년에 틱이 생기고 놀이치료도 받아 보았지만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얼핏 보기엔 영민해 보이고 모범생 같아 밖에서 늘 칭찬이었지만 집에서는 참 키우기 어려웠어요. 작은 불만족도 참지 못하고 화내고 목소리 높여 부모에게 대들고 때론 죽겠다는 표현도 했고요. 저도 우울증 진단을 받았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는 크고 작은 트러블이 드러났는데 목소리가 크고 좀 이기적이고… 그런 면들이 친구들에게 불편했던 모양이에요. 본인은 친구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다 크게 상처받는 일들이 생겼었어요. 그 후 자기는 친구가 없다. 외롭다고 많이 했고… 학교에서는 종종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는 평을 듣곤 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학교생활을 잘 해 왔어요.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잘 지내는 듯하더니 일 년 전쯤부터는 “왜 사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죽고 싶은 건 아니다.”, “집중이 안 된다.”, “내가 상식이라 생각한 게 사람들에게 비상식인 것 같아 혼란스럽다.”, “학교만 가면 너무 몸이 아프다.”, “자꾸 졸리다.”, “밤에 잠을 못 자겠다.” 등을 호소합니다.
비교적 학교생활을 잘한다는 얘기를 듣는데, 아이는 다 알지도 못하고 하는 소리라고 하고, 선생님이나 친구를 자주 비난합니다. 최근에는 자기가 화가 많고 그게 문제인 건 알겠는데 조절이 어렵고, 화를 내고 나면 죄책감이 든다고 해요. 자기가 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자꾸 눈치가 보인다고 하고. 자꾸 졸리고 집중이 안 된다고 합니다.
주로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권위를 못 참아 하고, 본인이 아주 작은 피해를 봐도 못 견딥니다. 피해의식도 좀 많아 보이고요. 모든 일에 대한 기준이 높아요. 99번이 좋아도 한 번이 안 좋으면 안 좋은 일이라고 판단합니다.
입시가 일 년 남은 시점이라 나름 애를 쓰는 것 같은데 부정적인 피드백만 쏟아놓는 아이가 힘겹다가도 또 짠하네요. 약만 먹음 다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듯도 해요. 틱도 있어서 혹 더 심해질까 걱정도 됩니다. 제가 아이를 어찌 도와야 할까요? 저도 건강이 많이 상하고 힘드네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고등학생인 따님께서 교우 관계나 적응 문제, 또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으시군요.
어릴 때부터 작은 소리에도 잘 깰 만큼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듯한 자녀분을 양육하는 것이 사연자님께는 꽤 버거우셨던 듯합니다. 또 밖에서는 모범생이라고 칭찬을 듣는 자녀지만 집에서는 화나는 감정을 폭발적으로 터뜨리고, 죽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 모습에 얼마나 걱정이 되고 마음이 무너지셨을까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지내 온 지난 시간들에 참으로 많은 노고와 어려움이 있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마찬가지로 자녀분 또한 심적으로 힘든 부분이 상당했으리라 여겨집니다. 현재도 여러 가지 정신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도움이 필요해 보이기도 하고요.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스스로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은 물론, 양육자나 가족들도 이들을 잘 이해해서 상호작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도 예민한 구석이나 그 정도에 있어서 무척이나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지만, 크게 공통적인 부분은 일상생활에서도 무던한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자극을 받고, 그래서 더 크게 반응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민한 아이의 경우, 성장하면서 자신의 예민함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부모의 양육 태도나 환경적인 부분에서 민감한 케어와 도움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님들이 예민한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녀의 예민함을 안 좋은 특성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민함’에 대해 이해할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예민함이 잘 조절되거나 관리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어려움이 문제이지, 예민한 성향 자체가 문제라거나 안 좋은 특성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예민하다는 것은, 주변의 다양한 자극을 감지하는 안테나가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발달해서 그만큼 반응할 거리도, 또 반응하는 강도도 남들에 비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스스로 예민함을 잘 다루지 못하거나 부정적인 자극 또는 반응에 초점이 맞춰질 때 쉽게 긴장되거나 불안해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껴지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과민하게 반응(분노 폭발이나 짜증 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적인 반응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과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있기에, 자녀분께서도 “죄책감이 든다.”라고 표현하신 것 같고요.
한편으로 예민함을 타고난 사람이 이 예민함을 잘 다루고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는 평범하게 보이는 것에서도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발견할 줄 알고, 별것 아닌 일에서도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좋은 자질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또 아무리 예민한 성향을 타고났어도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예민한 것은 아니며, 무던하다고 평가되는 사람조차 조금씩은 예민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예민한 기질을 나쁜 것이 아닌, 아이가 가진 ‘특별함’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잘 다듬고 조절해 나간다면 충분히 좋은 성격적 특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아마도 사연자님의 자녀분은 예민한 기질에 더해 불안감과 민감도가 높아서 자신에 대한 기준도 높고, 또 모든지 잘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꽤 컸으리라 예상됩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도 민감한 편일 것 같고요.
그래서 뭐든 열심히 하고, 또 학교에서는 모범생의 모습을 보일 만큼 스스로에게도 엄격하다 보니 그에 따른 스트레스와 긴장감도 상당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자신에게 기준이 높고 엄격한 만큼 타인에게 거는 기대나 기준 또한 높아서 그 기대가 어긋났을 때 크게 실망하거나 상처받는 일도 많았을 듯하고요.
일단은 자녀분께서 필요로 하는 도움은 무엇인지, 어떻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는지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그 의견을 존중해서 도움의 방향을 정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현재 자녀분이 호소하는 어려움들, 주의력 저하나 수면 문제, 신체화 증상, 혼란감과 무기력감 등은 우울증의 주요 증상이기도 하므로,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에 방문하시어 자세한 상담과 진단을 받고 필요한 경우 치료를 받으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이나 또 평소에도 자녀분에게 안정감과 공감, 격려의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질적으로 민감한 아이들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곤 합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의 예민함은 더 잘 활성화되어서 사회적인 관계에서나 조금만 자신에게 불편한 상황에서도 남들에 비해 더 부정적으로 해석하거나 불편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따라서 가정에서라도 충분히 안정감을 느끼며 이완하는 시간을 갖고, 친밀하고 중요한 관계에서 신뢰와 지지, 격려와 공감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아마 보통의 성인의 시각이나 입장에서는 자녀분이 불편해하거나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일들이 잘 이해가 안 가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지 자녀에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는 데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그러면 자녀분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행동 등이 잘못되었다고 평가되는 입장에 놓이게 되고, 이는 자녀분의 감정이나 생각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즉, 가까운 가족이나 부모님에게도 평가당하거나 공감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자녀분께서 “내가 상식이라 생각한 게 사람들에게 비상식인 것 같아 혼란스럽다.”라고 이야기할 때, 자녀에게 안정감과 공감, 격려를 제공하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먼저 어떤 일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묻고, 자녀분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은 다음, 그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정말 혼란스러웠겠구나.”, “너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이해한단다.”, “너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걸.”, “많이 속상했겠네.”, “괜찮아, 누구나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거야.”, “서로 생각이 다를 뿐, 누가 상식이고 누가 비상식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자녀분의 감정을 충분히 다루어 주고 공감해 주면서 스스로 인식의 확장과 전환을 해 볼 수 있게 질문하거나 의견을 나누어 보는 것이죠. 이렇게 함으로써 비판단적인 시각, 존중, 공감, 서로 다른 가치나 생각에 대한 수용도 차츰 넓혀 갈 수 있습니다.
또 자녀분께는 완벽주의 성향도 엿보이는데요, 자녀분의 장점이나 그동안 기울인 노력들을 찾아서 칭찬의 말을 해 주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또 무언가를 해 나갈 때 그 성취와 결과보다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기울인 노력 역시 가치가 있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배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인생은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보다 그 과정을 탐색하고 음미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리고 감정 조절, 특히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식이나 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평소 부정적이거나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때 유독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녀분이 느끼는 부정적이거나 불편한 감정도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그것을 빠르게 없애거나 외면하기보다 충분히 느껴 보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 보기를 추천 드립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날 특별히 느껴졌던 강렬한 감정이나 이와 관련한 대처 방식 혹은 보통 날에 느꼈던 일상의 감정에 대해서도 글로 써 보거나 명상을 통해서 감정의 인식 및 조절 능력을 키워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번에 유사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는 그 상황을 어떻게 좀 더 유연하게 해석해서 적응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정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일단은 분노가 올라올 때는 가장 먼저 자신이 화가 났다는 감정적 상태를 인식하고,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잠시 대화를 중단하고, 격한 감정이나 충동성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 숫자를 세거나 심호흡을 하면서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이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평소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며 이완하는 데 명상이 유익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중에 명상에 관련된 영상이나 책을 찾아보고 사연자님과 자녀분이 함께 꾸준히 실천하신다면 어떨까요.
모쪼록 사연자님과 자녀분께서 함께 지금의 난관을 잘 극복하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되찾고 여유로운 일상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