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이해가 필요한 시대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얼마 전 종영한 <사랑의 이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은행에 근무하는 젊은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잔잔하지만 섬세한 주인공들의 감정묘사와 연기로 호평을 받았지만,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로맨스 드라마에서의 설렘이나 주인공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모습보다는 자꾸 어긋나는 장면이 반복되며 고구마 전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안수영은 서비스 직군의 고졸 계약직 직원, 하상수는 명문대 출신의 정규직 계장, 박미경은 대기업 회장의 딸로서 상수와 대학 동문이자 은행에서는 더 연차가 높은 정규직 대리이고, 정종현은 청원경찰로 경찰 시험을 준비를 병행하는 인물입니다. 은행이라는 같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지만 이렇게 각자 직급이나 가정 배경, 교육 수준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이들의 연애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안수영과 하상수는 서로를 마음에 두었지만 상대방의 조건과 배경, 자신의 상황이나 형편을 생각하며 망설였고, 그러는 사이 각자 정청경, 박대리와 연애를 시작하게 됩니다. 상대방과 함께할 미래를 떠올리며 사랑보다는 조건을 선택하고, 자신의 어려운 가정사나 상대방보다 부족한 것 같은 조건을 생각하며 자격지심에 상대방을 밀어내기도 하면서, 마음보다는 머리로 하는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그 연애도 결국 끝을 향해 달려가고 안수영과 하상수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 둘 역시 맺어지지 못한 채 네 사람은 모두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드라마에서 흔히 기대하는 달달한 로맨스나 사랑이 맺어지는 모습을 이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사랑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는 주인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으로서는 답답하기도 하고,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목인 <사랑의 이해>에서 이해라는 단어가 ‘이해(理解)하다’의 의미가 아닌 이익과 손해를 의미하는 ‘이해(利害)’라는 사실에 주목해 보면 드라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분명히 와닿습니다.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연애나 결혼을 선택하기에는, 그에 따르는 손익, 즉 기회비용과 위험 부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 앞에서 무모할 수만은 없는 것이 젊은 세대의 고민이자 현실이기도 합니다.
요즘 뉴스에서는 우리나라의 낮은 출생률과 고령화, 인구 절벽으로 인한 위기에 관한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출생률이 OECD 국가 중 꼴찌이며, 최근에는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서는 출생률 상승을 위한 정책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결혼하거나 출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크게 와닿는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경향신문의 최민지 기자는 이와 관련해 결혼하지 않는 것 역시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바뀐 젊은 세대들의 인식을 이야기하면서 “‘당신이 애를 낳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타격감이 1도 없다. 일단 내가 위기다. 내가 위기인데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하면 누가 말을 듣겠느냐.”라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생각, 출산이 노동력과 경제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던 농경 중심 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정보화 시대로 이동하면서 출산과 양육에 따르는 비용의 증가, 대가족 공동 육아 시스템에서 핵가족화, 개인화되면서 육아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 점, 교육 기간 증가로 취업과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경력 단절이나 개인적 삶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염려, 주거비용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등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결혼과 출산을 말하기에 앞서 연애에 대한 부담도 상당합니다. 연애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모두 기회비용이기 때문입니다. 또, 장기간의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관계 단절, 온라인을 통한 유희거리 증가로 굳이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혼자 충분히 재미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지인들에게 직접 연락해서 얼굴을 보는 것보다 SNS나 데이팅 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하트나 이모티콘을 누르는 것이 훨씬 더 간편하고 부담이 없습니다. 내가 직접 연애를 하기보다는 연애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욕구를 충족하기도 합니다.
연애와 결혼, 출산, 양육이 일반적인 삶의 경로,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닌, 일부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럭셔리 문화로 바뀌는 듯한 양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산층으로 자랐던 사람들조차 앞으로 자신이 부모님이 자신에게 해 주었던 것만큼의 경제적 여유를 자녀에게 제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을 느끼며 연애나 결혼이 꺼려진다고도 합니다.
이런 현상 이면에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문화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풍부한 자원이 내 것이 될 수 없으리라는 좌절감, 노력만으로 취업, 내 집 마련과 같은 경제적 안정을 위한 기반을 다질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미래를 꿈꿀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미래를 함께 약속하기에는 나 자신도 너무 불안정하고 위태롭기에 혼자 있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상대방을 위해서도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사랑의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큰 것 같은 시대를 살며, 사랑의 이해(利害)로 인해 사랑을 이해(理解)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렇기에 낮은 출생률이나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논하기에 앞서, 젊은 세대들의 실존적 불안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데 힘쓰는 방향으로 정책의 전환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라고 호소하기에 앞서, 젊은 세대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할 때 그들도 비로소 사랑을 이해(理解)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