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직장생활 팁, 조용한 열정

2023-02-06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지난 칼럼에서 최근 직장생활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조용한 사직은 퇴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에 대해 최소한의 관여와 책임을 가진 채로, 주어진 일 이상의 것은 하지 않는 새로운 직장인 풍속도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용한 사직에 이어 요즘에는 이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조용한 열정(Quiet Thriving)’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Thrive는 무언가 번창하거나 왕성한 상태, 또는 어떤 것을 즐기거나 잘 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라서 제 나름대로 ‘조용한 열정’이라는 단어로 의역해 보았습니다. 조용한 열정은 조용한 사직과는 반대로 일터에서의 관여도를 높이고 스스로 일과 일터에서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을 제안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미국 갤럽의 2022년 설문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의 33%만이 일터에서 온전히 관여(engage)를 느끼며, 일에 대한 관여도가 낮은 사람들이 실직자들보다 분노, 슬픔, 스트레스, 신체적 고통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직자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신체적 고통이 상당한 수준임을 감안할 때 근로자가 오히려 실직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심리적, 신체적 불편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물론 이 조사는 미국의 상황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국내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남깁니다. 

 

주말을 보낸 뒤 다시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마다 느끼는 부담감, 출근하기 싫은 마음을 뜻하는 ‘월요병’, 일터 이외의 장소에서는 활기차고 즐거운데 직장에만 가면 무기력감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증상을 의미하는 ‘직장 우울증’이라는 말은 모두 괴롭지만 버텨야 하는 곳, 싫지만 억지로 있어야 하는 곳으로서 일터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잘 보여 줍니다. 

누군가에게는 일터가 자아실현과 자기 계발, 성취감을 실현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에게 생계 유지를 위해 기계적으로 오고 가는 곳으로 여겨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질적 보상, 복지 같은 보상체계와 근무시간, 근무 여건과 같은 환경적 측면은 외부적 요인으로서 일에 대한 전반적 만족감을 의미하는 ‘직무만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직무만족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이런 외적인 요소가 근로자가 기대하는 수준에 어느 정도 부합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외부적 요인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난 후에는 성취감, 보람, 일 자체에서 느끼는 즐거움, 성장의 경험, 일에 대한 자신감과 같은 내재적 동기가 크게 작용합니다. 특정 직무나 일터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재적 동기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조용한 열정은 바로 이 내재적 동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즐거운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부적 자극이나 조건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동기와 관여 수준을 높이고 적극적으로 일과 일터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조성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찾아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조용한 열정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1.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을 통한 직무만족 향상

잡 크래프팅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크래프트(craft)라는 단어는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공예품을 만드는 것, 기술이나 기교를 의미합니다. 잡 크래프팅은 단순히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각 개인이 일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욕구, 선호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직무에서 요구되는 과업을 설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익숙한 일은 편안함과 효능감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매너리즘을 안겨 주기도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나의 가치관, 성장, 적성, 능력, 장기적 성장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직무를 재설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2. 동료와의 좋은 관계

흔히 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요. 어릴 적 죽마고우처럼 미주알고주알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직장동료 중 좋은 친구를 찾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잘 맞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동료,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꿈꿀 수 있는 선후배,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있는 일터에서의 삶은 그런 관계가 없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릅니다. 직장에서 좋은 동료, 선후배와의 관계는 생산성, 창의력, 일터와 직무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3. 일에서의 의미 발견

습관적, 반복적으로 해 왔던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탐색해 보세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분이라면 내 일을 통해 고객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지, 고객이 남긴 긍정적 피드백이나 감사의 표현을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내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막연하게 떠올리기보다 구체적, 가시적 효과를 확인할수록 일의 의미와 중요성이 더욱 크게 와닿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일이 내 성장과 발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내가 이 일이나 일터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타인에게는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렇게 발견한 일의 의미와 장점을 포스트잇에 적어 잘 보이는 것에 붙여 놓고 틈틈이 되뇌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는 평생 일을 하며 살아가며, 일과 일터는 우리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왕 일해야 한다면,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조용한 열정’의 팁들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의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응원합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