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동생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어요

2023-02-03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두 살 어린 동생이 하나 있는 중학생입니다. 부모님이 맞벌이시기도 하고, 아버지는 새벽까지 일을 하다 들어오셔서 매번 피곤해하십니다. 저는 제가 여력이 되는 한 최대한 그분들을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늘 그렇듯 열 마디 좋은 말보다 욕언 하나가 그렇게 뇌리에서 잊히지 않죠. 그 역할을 하는 게 항상 동생인 것 같아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이젠 제 일상입니다. 내년에는 그 애도 중학교에 들어가니 아직 어려서 뭣도 모르고 행동한다 생각하기엔 그간 동생을 봐 온 저로서는 잘 납득이 안 됩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후회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조금이라도 부모의 노고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답답해서 괜히 동생에게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부모님이 동생이 아무리 날선 말을 해도 본인들에게 상처가 되는 줄 모르고, 아니면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어도 그저 동생을 꼭 안아 주는 게 저는 너무 싫습니다. 

아등바등 살며 저희를 보듬어 주시는 모습에 어찌 그런 폭언을 하는지… 저는 죽는 날까지 동생을 이해 못할 겁니다. 그 아이도 커서야 깨닫게 되겠죠.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샜네요. 다시 돌아오자면 제가 충동을 정말 못 누르던 상황이 있었는데,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막 흉기를 꺼내 든 저를 보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정말로 마음 같아서는 동생과 절연하고 싶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집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어서 동생을 향한 제 혐오감도 점점 더 심해지는 듯합니다. 

새 옷 사와서 입어 보라 하면 그럴 때마다 귀찮고 싫다며 욕을 하기도 하고, 맛난 거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물어보면 악을 쓰고 비수 같은 말만 던지는 아이예요. 물론 그 애가 정말로 싫어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말씀드렸거니와 아무리 그렇더라도 멋대로 부모님 마음을 찢어 놓는 소리를 하니 굳이 부모님이 어떤 심정일지 헤아려져 제가 동생에게 언성을 높이게 됩니다. 

앞으로 동생과의 관계 개선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아직 어린데….’라든지, ‘한평생 얼굴 보며 지낼 동생인데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은 소용없습니다. 저, 이대로 지내야 하나요? 역시 시간만이 답인 걸까요?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맞벌이를 하시느라 고생이신 부모님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과 아직 철없어 보이는 동생의 행동까지 더해져 속상하신 마음이 크실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많이 사랑하시는 만큼 곁에서 힘이 되어 드리고자 최대한 도우며 노력하시는 모습에서 사연자님께서는 마음이 참으로 선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힘들게 일하시는 와중에도 사연자님과 동생 분을 챙겨 주시는 부모님의 노고와 이에 대한 감사함도 잘 헤아리시는 사연자님의 마음 씀씀이도 대견하게 느껴져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적어 주신 내용만으로는 그동안 부모님과 사연자님 그리고 동생 분께서 어떻게 지내 오시고, 가족 안에 어떤 역사가 있으며, 구성원들 간의 주된 상호작용 방식이나 양육 방식 등 전반적인 분위기와 역동 등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기술해 주신 내용으로 미루어 사연자님께서 곰곰이 생각해 보거나 참조할 만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현재 사연자님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동생을 향한 분노와 혐오의 감정에 대해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동생이 하는 행동들이 충분히 철이 없어 보이고 그로 인해 화가 날 수는 있겠지만, 혐오감이 든다거나 해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큰 분노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사연자님께서 부모님의 노고나 마음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감정에 너무 과하게 이입하다 보면 자칫, 사연자님이나 동생의 마음 혹은 두 분의 숨겨진 욕구 등에 대해서는 간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동생 분께서는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만큼 마냥 어리다고만 할 수 없는 나이입니다. 밤낮으로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부모님께 날선 말들도 하지 않고, 좀 더 의젓하게 행동했으면 하는 사연자님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동생 분은 아직 몸도 마음도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속마음과는 달리, 부모님께 투정을 부리거나 날선 말을 해서라도 관심받고 싶은 마음을 거칠게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어쩌면 이런 마음은 사연자님의 내면에도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연자님의 마음속 깊은 곳 한 켠에는 나도 동생처럼 제멋대로 부모님께 어리광도 부리고, 관심받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나까지 힘든 부모님을 더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그런 마음이나 욕구를 애써 외면하거나 짓누르는 것은 아닌지 이번 기회를 통해 사연자님의 마음을 잘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사진_ freepik

 

인간의 내면에는 '애정에 대한 욕구'와 '인정에 대한 욕구'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인정과 애정 욕구는 주로 자신에게 중요한 대상에게서 채워지기를 바라고, 또 그래야 건강한 내면을 형성하는 토대가 마련되기도 하는데요, 어린아이나 미성년자의 경우 대부분 그 대상은 부모님입니다. 그런데 사연자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맞벌이로 인해 늘 바쁘고 힘든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나까지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충족되어야 할 욕구가 잘 채워지지 않았거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러 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더 많이 인정받고자 일찍부터 의젓하게 행동해야 했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어찌 보면 이렇듯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부모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부모님을 공격하는 동생에게 더 격하게 반응하고, 자신은 부리지 못했던 어리광과 보살핌을 받고 있는 동생이 더 밉고 강한 질투심이 나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리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갈지라도 꼬부랑 할머니가 된 노모의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것이 자식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자식에게 ‘엄마의 품’이란 그런 것입니다. 

사연자님의 동생 분께서 부모님께 버릇없이 행동하거나, 날선 말을 하는 것 등은 고쳐야 할 행동입니다. 본심이 아닌 말들이 마음과 달리 잘못 표현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 같은 행동을 바로잡아야 할 사람은 사연자님에 앞서 우선적으로는 부모님이십니다. 부모님께서 동생 분에게 훈육하거나 대화를 통해 바꿔 나가야 할 행동인 것이죠. 또 동생 분의 잘못된 행동이나 그로 인한 무게 역시 비록 힘드시더라도 안타깝지만 부모님께서 감내해야 할 몫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이럴 때 그저 부모님께 든든한 응원의 말, 위로의 말을 해 드린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사연자님께서도 손위 형제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동생 분의 감정이 날카로워져 있을 때 화를 내는 것은 역효과가 나기 쉽습니다. 동생 분은 아직 자신을 향한 충고의 말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고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님께 넌지시 말씀 드려서 동생의 엇나간 행동이나 말들을 꾸준히 교정해 나갈 수 있도록 요청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연자님께서는 이제부터 부모님의 입장이나 감정 혹은 동생의 잘못된 행동보다는 본인의 욕구나 마음에 좀 더 집중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요즘 사연자님의 학교생활이나 교우 관계는 어떠신가요? 혹 고민이나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평소의 관심사나 욕구 혹은 부모님과 나누고 싶은 일상의 이야기 등은 잘 소통되고 계신가요? 만약 그동안 항상 바쁘고 힘든 부모님께 행여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생활하면서 어려움이 있거나 불편한 마음에도 도움을 요청하거나 말씀 드리지 않고 혼자 감내해 오셨다면,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부모님께 사연자님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소통하는 시간을 가져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평일에 부모님께서 많이 바쁘시다면, 주말에 데이트 신청을 해서 따로 시간을 가져 보세요. 

 

다시 처음 사연자님의 고민거리와 마음속으로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마도 사연자님께서는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좀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냈으면 하셨을 거예요. 그런 사연자님의 마음과 달리 번번이 찬물을 끼얹는 것만 같은 동생이 너무도 밉고 화가 나실 수도 있으셨겠죠. 그러나 앞서도 언급 드렸듯이, 이렇게 동생의 감정이 격해져 있는 상태에서는 동생에게 어떤 말을 해도 사연자님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사연자님께서도 감정만 더 상하실 것이고요. 또 동생 분이 막 사춘기에 진입하는 시점이라 감정 조절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그럴 때는 최대한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시는 것이 차라리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어쨌든 지금은, 동생에 대한 사연자님의 분노와 적대감이 많이 커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동안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사연자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위해서도 해결하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조금씩 희석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동생에 대한 적대감이 계속된다면, 안전한 방법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 보셨으면 합니다. 

예컨대, 화난 마음을 진정시켜 줄 음악을 들으며 기분을 전환해 보거나, 동생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이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며 일기장에 기록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이러한 감정을 믿을 만한 대상에게 솔직히 털어놓으며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연자님의 가슴속에 맺힌 뜨거운 분노감과 적대감을 건강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해소할 수 있을 때, 동생을 바라보는 사연자님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사연자님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 우선임을 항상 잊지 마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