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어떻게 남자가 되는가

2023-01-17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어느 평화로운 주말 오후, 평소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를 키우고 싶었던 아들 녀석의 성화로 해수어인 크라운 피쉬, 일명 흰동가리를 집으로 데려오게 됐습니다. 아들에게 생명을 돌봄으로써 배우게 될 생명의 소중함과 더불어 책임감과 정서적 감수성을 기르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고심 끝에 니모의 입양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애완 물고기를 키우기로 한 비장한 결심과 심오한 의사가 무색하리만치 살면서 한 번도 수중 생물을 키워 봤던 경험이 없던 탓에 실제로 니모가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미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어항 세팅에 필요한 용품들의 설명서를 읽는 와중에 한껏 들뜬 아들이 안 그래도 허둥지둥하는 저의 주변을 맴돌며 가출한 정신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립니다. 

그때 주방에서 들려오는 와이프의 비현실적인 주문이 저를 더 아연실색하게 합니다. 어항 세팅을 하면서 동시에 아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들려주라는 건데요, ‘오 마이 갓!’이라는 한숨 섞인 푸념이 절로 나옵니다. 다행히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제게 해수어 전문가와 동시에 큐레이터를 겸할 수 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점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결과적으로 어찌어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니모를 무사히 집안으로 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짐작하다시피 그 많은 해수 용품의 쓰임새와 세팅 과정을 아들에게 살뜰하게 해설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남성 분들에게 멀티태스킹이 어렵고, 또 쉽지 않은 영역이라는 점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인류는 지금껏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나뉘어 같은 인종이나 민족끼리 집단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들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더 큰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끼며 호혜를 베풀곤 합니다. 반대로 다른 인종이나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배척하는 습성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종과 민족의 차이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종족이 있습니다. 바로 화성인과 금성인처럼 다른 행성인으로 비유될 만큼 다른 성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남성’과 ‘여성’입니다. 남성과 여성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성염색체만큼이나 서로 다른 신경생물학적 특성과 함께 주로 분비되는 호르몬, 성격적 특성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남성과 여성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특성으로 말미암아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며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안정적으로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출산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짝을 찾아 헤매거나 마침내 자신에게 맞는 짝을 만나 종족 번식을 거듭하면서 인류는 진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이러한 성적 특성과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 부부나 연인, 부모와 자녀 사이에 불통이 되는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소리 없는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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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키울 때 딸들과는 달리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들의 무한한 에너지에 방전되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마음 편히 쉬고 싶은 주말에도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매달려 칼싸움을 하거나 공을 가지고 놀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놀이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주인공 해리 포터처럼 세상을 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에 열광하며 영웅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영웅 이야기에서 영웅은 악의 세력에 맞서다가 고난과 역경에 처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힘을 되찾고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모험과 역경 속에서 성장하며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이죠. 여자아이들이 주로 엄마, 아빠 역할놀이를 하며 관계에 주목하거나 공주 인형을 가지고 예쁘게 치장하고 보살펴 주는 것과는 다소 상반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남녀의 차이는 다 큰 성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남녀가 다툴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집니다. 많은 남성들이 애인이나 배우자와 마찰을 빚었을 때 자리를 회피하거나 침묵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이러한 회피 방식은 남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연인이나 남편이 오랫동안 갈등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으로 숨어들던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서 감정을 추스르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편이 상대방을 다그치는 것보다는 서로에게 훨씬 더 좋은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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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생물학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두뇌 연구를 통해 백 가지도 넘는 생물학적 차이점들을 발견하고 추적해 왔습니다. 교육자이자 전문심리치료사인 마이클 거리언Michael Gurian은 그의 저서 『소년의 심리학』에서 남녀 간의 다음과 같은 생물학적 차이점이 두뇌 구조에도 차이를 가져온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그중 몇몇 주요한 차이점들을 살펴봄으로써 여러분께서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테스토스테론이 10~12배 더 많이 분비된다. 테스토스테론은 위험 감수, 공격성과 관련된 호르몬이다.

- 남자아이는 유대감 형성과 관련된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여자아이보다 더 적게 분비된다. 

- 남자아이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여자아이에 비해 더 적게 분비될 때가 많다. 

- 제한된 시간에 여자아이의 두뇌에서는 남자아이의 두뇌에서보다 15~20퍼센트 더 많은 신경 활동이 일어난다. 이러한 두뇌 활동상의 차이 때문에 여성의 두뇌는 남성의 두뇌와 달리 여러 부분이 동시에 일할 수 있다.

- 남자아이의 두뇌는 여자아이의 두뇌보다 하루 동안 바깥과 ‘차단하는(휴식 상태에 들어가는)’ 횟수가 더 높은 경향이 있다. 

- 남성의 뇌, 특히 우반구에는 사물들이 물리적 공간에서 움직이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신경중추가 여성의 두뇌보다 더 많다. 

- 일반적으로 남자아이의 해마(hippocampus)는 여자아이의 해마보다 덜 활동적이다. 특히 감정과 관련된 경험을 할 때 더욱 그렇다. 

 

그렇습니다. 니모의 집을 세팅하면서 동시에 아들 녀석에게 큐레이팅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개인적인 능력치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저 역시 멀티태스킹이 어려운 남자이기에 그런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한없이 관대해지기로 합니다. 또 저만 보면 몸으로 놀아 달라며 하루 종일 아빠에게 치근덕대던 아들의 행동이 한편으로는 짠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는 넘치는 자신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게 해 달라며 호소했던 것입니다. 

과거와 달리 학습 시기가 길어지고 성인기에 진입하는 시기가 늦춰지면서 현대의 아이들은 더 많은 학습 능력을 키울 것을 요구받습니다. 그만큼 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받고도 학원이나 과외 등의 사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업을 하는 시간 이외에 많은 남자아이들이 컴퓨터 앞이나 온라인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게임만큼 남자아이들의 공격성과 충동성을 해소하는 데 만족감을 주는 것도 없어 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신적·신체적 에너지를 건강하게 해소하고, 내적 탐색과 자아 성찰, 바깥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점차 줄어드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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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건강하고 멋있는 남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방향과 가치관, 목적의식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탐색하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다정하고 든든한 아버지로서의 역할 모델뿐만 아니라, 일상과 주변에서 다양한 남성 모델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아이에게 좋은 멘토들을 연결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와 지역사회와 공동체, 이웃들도 우리 사회의 소년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멘토로서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2003년에 개봉된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서 니모의 아빠 ‘말린’은 인간에게 납치된 아들 ‘니모’를 찾아 위험천만한 바다로 모험을 떠납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결코 목숨도 아깝지 않은 진정한 남자이자 아빠의 모습을 우리는 말린에게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이후인 2016년에는 <도리를 찾아서>라는 후속편이 개봉되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한껏 성장한 니모가 아빠 말린 그리고 도리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인간에게 납치되었던 어린 니모가 어느덧 성장해 모험 길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니모가 성공적으로 모험을 마치고 말린처럼 멋진 어른 물고기가 되기를 열렬히 응원해 마지않습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