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지연 ② - 수다쟁이 엄마가 아이의 언어 발달을 자극한다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랑하는 자녀가 우리에게 처음 온 그 순간, 기억하시나요? 천하를 다 얻은 것만 같은 감격에 젖어 작은 천사를 보내 준 신께 감사드리던 그때. 그렇게 선물처럼 찾아온 우리 아이에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기도하듯 속삭였던 기억. 잘 자고 잘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떼던 순간, 그 모습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가슴 벅차오르던 날들….
이제 말문만 트이면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건만,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말이 늦는 듯한 모습에 부모님의 속은 타들어 갑니다. ‘때가 되면 다 알아서 한다.’는 사람들의 말도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조바심을 내며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의 언어 발달을 자극하면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시중에는 해당 발달연령에 맞춰 어느 시기에는 어떤 정도로 언어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료나 가이드라인 등이 존재합니다. 그중 ‘영유아검진 문진표’는 가장 보편적이고 신뢰할 만해 출발점을 파악하는 데 유용합니다. 또 관련 서적이나 인터넷상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검색해서 참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정보들을 종합해서 지금 우리 아이의 발달연령 시기에 맞는 언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파악하고,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 자극을 주고 보완해 나갈지 정리해 보는 것이죠.
만약 우리 아이가 현재 36개월, 만 3세인데 현재 언어 발달 수준이 30개월 정도에 멈춰 있다면, 지연된 부분을 집중 공략해 그 간극을 메꾸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보통 25개월에서 만 3세가 되는 시기는 두 단어를 결합해 능숙하게 말하는 시기로, 점차 3, 4개 단어를 결합해 말하게 됩니다.
30개월 정도에는 “엄마 어디 가?”와 같이 세 단어로 결합된 의문문을 사용하며, ‘늦게’, ‘작은’, ‘안’과 같이 부사나 형용사, 부정어 등을 세 단어 문장에 포함시켜 사용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아직 세 단어가 포함된 문장의 발화가 잘 안 되거나 부사나 형용사, 부정어 등이 결합된 표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부모님께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해당하는 문장을 일상생활에서 최대한 많이 들려주고, 아이에게도 발화 반응을 유도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와 일상생활에서 상호작용할 때 “오늘 아빠 늦게 오신대.”, “○○는 아빠 안 보고 싶어?”, “큰 빵 먹을래? 작은 빵 먹을래?”와 같이 목표로 하는 어휘나 문장 형태를 발화해 아이가 많은 언어적 자극에 노출되도록 합니다.
즉, 아이의 언어 발달 수준에 맞는 언어 자극을 최대한 많이 제공하되, 어떻게 하면 아이가 부모의 언어 자극에 흥미를 갖고 집중할 수 있을지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놀이나 흥미를 보이는 활동, 집중력을 발휘하는 영역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므로, 평소 우리 아이가 재미있어 하거나 관심이 많은 활동을 중심으로 점차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우리 아이의 언어 발달을 자극하는 활동이나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① 놀이와 함께 언어 자극 제공하기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에 부모님이 함께 참여해 상호작용하면서 장난감이나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 자극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와 함께 주방 놀이를 하는 상황이라면, 먼저 그날의 목표 어휘로 다양한 음식의 이름인 명사, 요리하는 과정에서 발화하게 되는 동사(예: 씻다, 굽다, 익히다, 담다 등)나 형용사(예: 맛있다, 뜨겁다, 쓰다, 달다 등) 등을 정하고, 해당 어휘들로 문장을 만들어 놀이에서 사용하면 됩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병원놀이나 소방관 놀이, 다양한 역할 놀이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② 책을 통해 어휘력 길러 주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은 아이의 어휘력과 상상력을 키워 주는 데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에게 많은 언어 자극을 주겠다며 아이의 흥미가 떨어졌는데도 너무 많은 책을 읽어 주려 하기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단 한 권이라도 매일매일 꾸준히 읽어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책을 선택할 때는 아이의 생활연령에 준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언어 수준에 맞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해 보도록 하고, 그중 일상생활 주제를 다루는 것도 좋습니다. 낮에 책 읽어 줄 시간이 부족하다면, 잠자리 독서가 습관이 되도록 노력해 보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책 읽어 주기는 당장 말이 트이는 데 드라마틱한 효과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뇌와 정서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원금에 복리이자까지 더해 줄 것입니다.
③ 동요로 언어와 정서, 두 마리 토끼 잡기
동요에는 의성어, 의태어 등의 다양한 표현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후렴구가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동요를 듣거나 함께 따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언어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와 동요 영상을 보며 노래와 함께 율동을 따라 해 본다면 조음 능력은 물론 아이의 감수성과 정서 발달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④ 새로운 자극과 체험을 통해 언어 확장하기
언어는 결국 우리의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자를 익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죠. 새로운 자극과 체험을 통해 아이의 언어 세계도 점점 확장되고 훨씬 더 생생한 언어 개념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따라서 아이에게 계절이나 날씨와 관련된 말을 가르쳐 주고 싶다면, 가을날 쌀쌀한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을 함께 걸어 보세요. 낙엽의 낱장을 하나, 둘 세어 보며 숫자 개념을 익히는 것은 어떨까요. 또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귀여운 눈사람을 만들며 눈과 겨울을 마음껏 즐기도록 해 주세요.
아이의 언어가 발달하는 시기와 속도는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말이 조금 늦는다고 해서 너무 조바심을 내거나 크게 문제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또래에 비해 언어가 상당히 지연되거나 그동안 언어 자극이 부족했던 경우라면, 일상에서 다양한 놀이와 체험을 통해 아이에게 좀 더 많은 언어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물에서부터 추상적인 개념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아이가 세상을 느끼고 체험하는 기회를 늘려 간다면, 우리 자녀의 언어도 점차 더 큰 세계로 확장될 것입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