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고, 현실감이 없어요

2023-01-09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30대 여자입니다. 작년에 보디프로필을 찍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52kg에서 42kg으로 감량했습니다. 성공적으로 보디프로필을 찍었지만 그 후 다시 요요가 왔고 18kg가 쪘습니다. 

살을 뺐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다 저에게 대단하다며 멋있다고 해 주었는데 급격하게 다시 체중이 늘자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졌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외출도 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무기력증이 찾아왔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면 나아지리라는 것을 알지만 생각만큼 체중 조절이 쉽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다이어트의 후유증인지 생리도 없어져서 피임약을 복용하며 주기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음식도 한 번 들어가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폭식합니다. 사람들이 살쪘다고 말하는 것도 듣기 싫고, 주변 사람들이 관리하는 모습도 너무 보기 싫습니다. 열등감이 큰 것 같고, 아마 이런 부분이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혹시 내가 게임 캐릭터가 아닐까? 메이플스토리처럼 누군가가 나를 육성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이 현실 세계가 아닌 게임 속 세상이고,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의 캐릭터라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분명히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어제 재밌게 놀았던 것이 맞는지, 다 꿈은 아닌지, 친구들도 현실 인물인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현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키보드를 치는 제 손을 보면서 제가 아닌 것 같은, 제 영혼이 밖으로 나와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9시부터 6시까지 의미 없이 하루를 보내면서 중간중간 밥을 먹고 운동 다녀오면 하루가 끝이구나.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너무 재미없다.’라는 생각에 계속 무기력해지고 생각을 고쳐야지 싶다가도 조금 지나면 왜 이 생각을 고쳐야 하나 싶으면서 제가 저를 더 힘들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을 빼면 나아질 수 있을까요? 살을 뺄 수는 있을까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되어 사연 남깁니다.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다이어트 후 찾아온 요요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용기 내서 사연 남겨주신 사연자님께 응원과 격려를 보내 드립니다.

‘건강한 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이 운동과 식이요법 조절을 통해 몸을 관리하고 보디프로필을 찍고 있습니다. 적절한 운동과 식단을 통해 몸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고, 가장 최상의 상태인 내 몸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은 성취감과 만족감 같은 심리적 보상을 가져다줍니다. 거기에 탄탄한 근육과 건강한 몸 상태가 지속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디프로필을 위한 무리한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경험하신 것과 같은 요요와 생리 불순, 폭식증이나 강박적 행동, 집착 등이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몸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신체 이미지(body image)는 자아존중감(self esteem)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몸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이것이 자존감을 낮추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낮은 자존감이 신체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연자님의 경우 보디프로필을 촬영하면서 바뀐 몸에 대한 자신감과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이 강한 심리적 보상으로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요요 현상이 찾아왔을 때는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위축되고 심리적 스트레스와 함께 다이어트의 후유증으로 인한 신체적 증상들도 경험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무기력을 느끼기도 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편이자 억눌렸던 욕구에 대한 보상심리로 폭식을 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사진_ freepik

 

현재 사연자님이 경험하시는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내가 나로부터 분리되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내가 게임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은 이인증(depersonalization)과 비현실감(derealization) 증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인증과 비현실감 장애는 해리장애(dissociation disorder)의 한 종류로서 이인증은 비현실감, 분리감 또는 자신의 사고, 느낌, 감각, 신체나 행동에 대한 외부 관찰자가 된 것 같은 경험을, 비현실감은 비현실적이거나 자신의 주변 환경과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연에 남겨 주신 내용만을 통해서 이인증/비현실감 장애에 대한 진단을 내리거나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자존감 저하만이 이런 증상의 원인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은 느낌이나 비현실감이 다른 망상적 사고와 연결되거나 다른 정신과적 증상들과 중첩된다면 이인증이나 비현실감 외에 다른 진단 또는 치료적 접근을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정확하게 증상을 진단하고 적합한 도움을 받으시기 위해서는 정신과 전문의 또는 임상심리사와 같은 전문가를 찾아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사연을 통해 살펴보았을 때는 다이어트와 신체 이미지, 외모에 대한 부분이 주된 스트레스 요인이 되어 현재 경험하시는 증상들을 촉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사연자님의 자존감이나 스트레스 대처 방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오래되고 중요한 사건 또는 기억, 특정한 요인 등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인증이나 비현실감을 비롯한 해리 증상의 경우 과거의 외상적 경험, 현재의 불안이나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이런 위협적 상황이나 스트레스를 직접 다루기가 어려울 때, 직면하는 것이 자아의 붕괴와 같이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될 때 문제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대처 방식의 일환으로 해리를 경험합니다. 내적 억압과 방어를 통해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하면서 문제의 원인이 의식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보디프로필 촬영 이후 요요를 겪으며 이런 증상들을 경험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 혹시 이런 대처 양식에 영향을 줄 만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깊이 탐색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사연자님이 주로 사용해 오신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나 스트레스 대처 양식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주로 문제를 피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은 아니었는지, 그렇다면 그 기저에는 어떤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지, 혹은 보다 더 깊이 연결된 과거의 기억이나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단순히 체중 조절의 문제로 지금 상황에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과 대처 방식에 대한 탐색을 통해 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도움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를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기보다 상담이나 약물치료와 같은 전문적인 심리적, 의학적 접근을 병행하시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아끼며 몸과 마음, 삶을 모두 아름답게 가꿔 나가고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현재 겪고 계시는 어려움으로 힘드실 수 있겠지만, 이 시간을 인생의 궤도를 점검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삼으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