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다 찾아오는 마법이 불청객이 될 때, 월경 전 증후군

2022-12-26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임기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경험하는 월경을 흔히 일컫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마법’입니다. 남성분들이라면 이런 표현이 조금 낯설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전혀 못 들어 보시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월경을 표현할 수 있는 많은 단어 중 왜 마법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일까요? 

1990년대 생리대 제조업체들에서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린다.”, “그날이 와도 안심하세요.”와 같은 문구를 사용하면서 이런 표현이 일반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마법이라는 말이나 그날이라는 말이 월경이나 생리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기 꺼렸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함께 월경 시기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기분 변화나 다양한 증상들을 함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최근에는 방송을 비롯한 언론매체에서도 생리, 월경, 질, 고환과 같은 생물학적 현상과 신체 부위를 지칭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비뇨의학과 의사이자 인기 유튜버인 ‘꽈추형’이 방송에 나와 성과 관련된 의학적 지식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게 전달하기도 하고, 인기 연예인 이효리가 ‘질 세정제’라는 단어를 방송에서 사용하며 질이 사용하지 못할 단어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함께 여성들이 경험하는 월경통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남성들이 기계를 착용하며 여성들이 월경 시기에 경험하는 정도의 고통을 단계별로 겪어 보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여성 출연자들이 자신들이 매달 경험하는 고통이 이 정도라며 남성 출연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렇듯 중요한 생리적 현상에 대해 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생리현상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_ freepik

 

그런데 월경통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증가한 데 반해 아직까지 ‘월경 전 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 PMS)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월경 전 증후군이란 월경 시작 2~10일 전부터 우울, 불안, 초조함, 과민함, 안절부절, 심한 경우 자살사고를 동반하는 기분 변화와 복부나 유방 팽만, 메스꺼움, 피로, 두통, 손발 부종, 근육통,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과 같은 신체적 증상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임기, 배란을 경험하는 여성에게 나타나며 이 같은 증상이 월경 때마다 3주기 이상 나타날 때 진단을 고려하게 됩니다.

월경 전 증후군의 증상이 심각하여 직업, 학업과 같은 사회적 활동 및 대인관계에 현저한 지장을 줄 때는 월경 전 불쾌장애로 진단됩니다.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V)에서는 우울장애의 하위로 월경 전 불쾌 장애(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r: PMDD)를 분류하고 있으며, 월경 시작 일주일 전 현저하게 불안정한 기분, 과민성, 분노 또는 대인관계 갈등 증가, 현저한 우울감, 절망감 또는 자기비난적 사고, 현저한 불안, 긴장, 일상생활에서의 흥미 저하, 주의 집중 곤란, 피곤함이나 무기력, 식욕 및 수면의 변화, 유방 통증, 부종, 두통 등을 주요 증상으로 정의합니다. 

월경 전 증후군 및 월경 전 불쾌장애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월경 주기에 변화하는 모노아민과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의 변화, 스트레스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월경 전 증후군은 한국 여성의 10% 정도가 경험할 정도로 흔하지만 많은 여성이 월경이 시작되면 증상이 자연스럽게 호전된다는 점과 생물학적 요인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증상이라는 인식으로 치료를 받지 않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월경 전 증후군으로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이 있고, 증상이 심각하여 월경 전 불쾌장애까지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변화를 위한 노력과 전문가를 통한 도움이 요구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이 도움이 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진_ freepik

 

1. 운동과 건강한 식단 

꾸준한 운동과 카페인, 달고 짠 음식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월경 전 증후군의 원인 중 하나인 비타민과 마그네슘 부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2. 생물학적, 심리적 치료

의사, 심리상담사와 같은 전문가를 찾아 신체적, 심리적 상태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구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증상에 따라 호르몬 치료제, 경구 피임약 등을 처방받을 수 있으며, 우울감과 같은 심리적 증상의 치료를 위해 항불안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와 같은 항우울증 약을 복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복용량 및 투여 횟수, 중단 시기와 방법 등에 관해서는 반드시 의사를 통한 처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3.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

월경 전 증후군이나 월경 전 불쾌장애 증상은 주변 사람들이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또, 그로 인한 고통이나 불편감을 공감받기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월경 주기와 주요 증상을 공유하고, 주변 분들은 해당 증상을 경험하는 분을 배려해 줌으로써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73조에는 월 1일의 생리휴가가 보장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눈치 보지 않고 이 휴가를 사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월경 전 증후군과 월경 전 불쾌장애에 대한 인식 보편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월경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변화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슬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