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재입사 퇴사 후회로 너무 불안해요

2022-12-17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후반으로, 첫 직장으로 열 명 안팎 규모인 대학부설연구소에서 일 년 정도 근무하다가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서 퇴사했습니다. 업무적인 실수를 몇 번 하면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상사로부터 혼나니 위축되기도 하고 제가 회사에서 필요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사가 저를 보는 눈빛도 너무 차가웠고, 실수하거나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핀잔을 주며 업무적으로 저를 배제한 적도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이 늘 긴장감의 연속이라서 결국 퇴사했는데 제가 도망친 것 같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2주 후 상사로부터 전화가 와서 다시 근무할 것을 권유받았고, 저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려서 재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상사에게 다시 혼나기도 했지만, 칭찬도 받으며 나아졌는데 몇 개월 후 제 실수로 업무가 지체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일로 위축되어서 또 다른 실수를 했고, 상사가 그 업무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고 저는 배제되었습니다. 그 후로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우울해져서 의욕도 생기지 않고 회사 일에도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위주로 했습니다. 

상사는 그런 저를 보고 면담을 하자고 불렀습니다. 업무에서 배제되는 것을 느끼지 못했냐면서 왜 가만히 있냐,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상사의 이야기가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제가 억울한 부분을 설명하면서 상황이 꼬였습니다. 오해가 있는 부분을 풀고자 한 것인데 상사는 저와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했고, 저는 제가 소통이 안 되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상사와의 면담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다음 날 사실 관계를 정확히 확인하려고 다른 직원에게 이 내용에 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상사 귀에 들어갔고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상사는 저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짐을 싸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자꾸 안 좋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저도 ‘차라리 짤리면 좋겠다, 짤리면 그냥 나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상사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상사는 항상 제가 잘못된 선택을 한다며 실망했다는 듯 말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쫓겨나듯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퇴사 후 새로운 삶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소통 능력도 없고 업무 능력도 부족해 해고당한 실패자라는 생각에 괴롭고 죽고 싶습니다.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재입사 후 잘해 보라고 응원해 줬던 주변 사람들에게도 창피합니다,

돌아보니 좋은 점도 많은 회사였는데 능력도 없으면서 불만만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자신도 너무 싫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충동적으로 퇴사했는데 저만 손해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실수해서 해고당할까 봐 불안했는데 이렇게 퇴사하게 되니 너무 우울합니다. 성장하고 있는 회사이고 상사와의 관계만 좋으면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에 직원들도 좋고 출장 기회도 있는, 사무실 환경도 쾌적한 곳이었는데 제가 조금 힘들다고 잘못된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감사해하지 않고 나약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남겨 주신 사연 잘 읽었습니다. 퇴사 후 불안감과 후회로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으시군요. 매일 출근하던 곳이 없어진 허전감, 생계에 대한 걱정, 사연자님의 업무적 능력과 소통 기술에 대한 의심 등으로 마음이 복잡하실 것 같습니다.

특히 첫 직장에서 재입사와 퇴사를 반복하셨기에 본인에 대한 자책이나 후회가 더 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는 업무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 문제해결 능력, 상황 조정 능력 등이 중요해지고 이런 능력에 대해 처음으로 평가받는 경험을 하며 긴장감도 커지게 마련입니다.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고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때로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서 실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음 들어간 조직에서 실수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꼼꼼하게 업무를 하면 막을 수 있는 실수도 있고, 너무 큰 실수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신입사원이라면 실수를 통해 배우면서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성장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비단 신입사원이 아니라도 새로운 조직에 경력직으로 입사하는 경우에도 기존과 다른 환경이나 업무 스타일로 적응 기간에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최소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수 후 어떻게 대처하느냐입니다. 실수 후 당연히 위축되고 자책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실수를 인정하고 원인을 찾아 비슷한 실수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길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돌아봄과 함께 상사나 동료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언을 구하거나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연자님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도 있으시고, 잘하고 싶은 의욕도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다만 실수 이후 상사분 또는 조직의 다른 분들과의 소통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수했다는 사실로 너무 주눅 들고 눈치 보게 되면서 어떤 부분에서 부족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보완해 나가면 좋을지는 충분히 생각하거나 다른 분들과 이야기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남겨 주신 사연 내용만으로는 사내 분위기나 조직문화를 모두 파악하기 어려워 이런 소통 부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단정 짓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회사가 수직적이고 상사분이 권위적인 스타일이라면 아마 이야기 나누기가 더 쉽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상사와의 면담은 부담스럽고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이 사내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힘든 일을 나눌 동료나 상사가 없음에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꾸준히 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본인의 입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조직에서 오래 버티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진_ freepik

 

사연에서 남겨 주신 내용으로 비춰 볼 때 상사분 역시 부하 직원의 고충을 경청하거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리더로서는 부족함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이 느끼는 부담이나 고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어 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첫 번째 퇴사와 두 번째 퇴사를 앞두고 사연자님을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핀잔을 주고, 두 번째 퇴사 직전 사연자님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동료분과 이야기 나눈 부분에 대해 충분히 자초지종을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한 것 역시 정당한 처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행동 패턴으로 미루어볼 때 상사분이 권위적이고 충동적이며, 지배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의 리더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렇기에 사연자님이 업무에서 배제되었을 때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겠지요.

이런 권위적인 스타일의 리더십이 사연자님과 잘 맞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지지적이고 격려하는 스타일의 리더십을 가진 상사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도 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 혹은 잘 맞는 스타일의 리더십을 가진 상사만을 골라 만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나와 다른 스타일을 가진 리더, 동료, 후배들과도 잘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평소 소통 방식과는 다르더라도,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중요한 메시지가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소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조직 내에서 고민을 이야기하고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를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사연에서 말씀하신 상사분 외에도 조직에서 사연자님이 겪는 어려움을 공감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으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런 부분을 상사가 싫어하거나 오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상사에게 이에 대해서도 미리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양해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오해를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퇴사한 회사이기에 말씀드린 내용들을 그곳에서 다시 해 볼 수는 없겠지만, 이런 의사소통 기술을 지나간 상황에 대입해 보고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지, 또 앞으로 일하시게 될 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적용해 보면 좋을지 생각해 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나간 상황에 대입해 볼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과거의 사연자님을 자책하기보다는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식으로 새로운 대처 방식을 학습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시면 좋겠습니다. 

또, 본인의 업무 능력에 대한 의심, 자기 확신의 부족과 관련해서는 사연자님이 그동안 이뤄 왔던 성취, 이전 직장에서 잘한 부분을 돌아보시기를 권유합니다. 업무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연자님이 가진 능력 중 해당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며, 사연자님의 능력 전체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요인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업무에서 부족한 영역은 앞으로 충분히 계발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업무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으로 인해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하하거나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지금까지 해 왔던 많은 성취를 떠올려 보시고, 구체적인 결과물들이 있다면 눈으로 확인하며 자기 확신을 가지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막연한 현실로 인해 퇴사에 대한 후회, 스스로가 나약했다는 자책이 많이 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일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면서 과거는 과거로서 흘려보내고 현재를 온전히 살며 미래로 나아가실 수 있는 사연자님이 되시길 응원합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