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요

2022-12-03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현재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아기가 분리불안이 심해 병원에 못 가고 있는데요, 다른 건 괜찮은데 유독 아이의 징징거리는 우는 소리가 견디기 너무 힘들어요.

아기한테 화내게 되고, 무서운 표정도 짓고, 잘해 주다가 화를 내고 거칠게 대하기도 하니 아기 입장에선 불안정 애착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요. 제가 불안정 애착입니다. 애착은 대물림이 되기에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잘할 줄 알았습니다. 화 안 낼 자신도 있었고, 다정하게 대할 자신도 있었어요. 저는 남들에게 다정하고 배려심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 성격으로, 항상 저보다 남을 우선시했기에 아기에게도 그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울거나 징징거릴 때 저도 모르게 화가 나고 참아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무섭고, 싫고, 아기를 보면 미안하고…. 예전엔 눈물이라도 낫지, 지금은 눈물도 안 나고 그저 소름만 끼치고 힘들어요. 죄스러워 도망치고 싶어요. 좋은 엄마가 될 자신도 없고… 포기하고 싶어요.

선생님, 이제라도 노력하면 아기에게 안정애착을 줄 수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 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아기를 육아 중에 있으신 상황이고, 아기가 울거나 징징거릴 때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내거나 무섭게 대하는 점이 자녀의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많으시네요. 무엇보다 자녀가 사연자님과 같은 불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않을지 염려되시는 듯합니다. 또 미안한 마음에 죄책감이 들고,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크신 것 같습니다.

많은 여성 분들이 출산 후 몇 달씩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심한 불안감을 보이거나, 불안장애의 여러 가지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산후우울증 때문인데요, 출산에는 신체의 고됨에 따른 스트레스와 정서적인 변화가 따라옵니다. 

출산을 한 약 85%에 달하는 여성들이 출산 후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경험합니다. 2주 이내에 증상이 호전되며 짧게는 몇 시간 정도만 지속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증상으로는 공연히 눈물이 솟구치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며, 울적하고 짜증이 나고 불안을 느끼는 등 기분 변화의 폭이 커지거나, 수면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긴 하지만, 일상적 기능 수행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정도가 아니라면 ‘산후 우울감’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산후 우울감은 심각한 정도가 아니더라도 당사자와 가족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산후 우울증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산후우울증에 관해 간략한 설명을 드리자면, 우울감이 심하고 증상이 2주 이상의 지속 양상을 보일 경우, 산후 우울증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산후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은 산후 우울감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조금 더 늦게 발병하고, 심한 양상을 보입니다. 산모의 약 10~20%가 산후 우울증을 겪습니다. 산후우울증은 반드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요, 치료받지 않고 방치할 경우, 산모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의 발달과 가족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경증인 경우 약물치료 없이 상담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중증 이상인 경우에는 약물의 도움을 받아 치료와 회복이 필요합니다. 


출산과 육아는 여성도 난생처음 겪는 경이롭지만 두렵고 당황스러운 사건입니다. 이제부터 온전히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가슴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또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대부분 아이에게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므로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는 것이 현실적인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비록 이러한 현실적인 애로 사항이 많더라도, 육아는 기나긴 호흡으로 보셔야 합니다. 당장 아이의 분리불안이 심하기 때문에 산후우울증을 치료받는 것이 쉽지 않으시겠지만, 남편분이나 다른 가족 분들에게도 산후우울증 치료의 필요성을 꼭 알리셔서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으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신다면, 지금의 우울감이나 부적절한 분노 표출, 극심한 기분 변화와 같은 문제도 분명 호전되리라 믿습니다.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은, 특히 어머니들의 경우에 어린 시절의 나를 수시로 소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의 끝에서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어떻게 상호작용해 왔고, 부모님은 나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봐 주셨는지, 나는 가족들에게 얼마나 존중받는 아이였는지, 가정 안에서 나의 위치와 가치는 어떻게 평가받았는지, 가족들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이러한 것들이 나의 가치관이나 자아존중감, 사고의 형성이나 감정 조절, 세상과 타인을 지각하고, 신뢰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이것이 내가 부모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아이와 상호작용하고 감정을 나누는 등 관계를 맺고 양육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고, 어떤 부분을 바꿔 나가야 하는지 자각하고 변화를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럴 때 사연자님께서 우려하시는 불안정 애착의 대물림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머님께서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회피하거나 포기할 생각을 할 때가 아닙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했습니다. 자녀분은 물론이고 사연자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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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적으로 전문적인 산후우울증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으십시오. 이 치료 과정에서 사연자님께서 걱정하시는 부모님과의 불안정 애착이나 어린 시절 사연자님과 상호작용 패턴, 그로 인한 영향, 또 그것이 육아와 양육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객관적인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곰곰이 생각하고 정리해 나간다면 자녀와의 안정적인 애착 형성 및 안정적인 육아를 해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분노감을 다스려 분노 폭발을 멈추셔야 합니다. 분노를 일으키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지만 누적되거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나 피로감 등도 감정 조절 능력을 감소시켜 분노가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입니다. 또는 자주 욱하고 성질을 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욱하는 성질을 습득했을 수도 있습니다. 간혹 화를 분출함으로서 쾌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아드레날린이 급격하게 배출되기 때문에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쾌감의 순간은 아주 잠깐일 뿐 분노 폭발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 사연자님께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순간, 어린 자녀분의 공포감과 불안감이 높아지고 안정감을 가지기 힘들어집니다. 이러한 일들이 빈번해진다면 아이는 부모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가 될 것입니다. 또 이것이 반복될 때 부모 자아상이나 유능감이 부정적으로 형성되면서 자기혐오, 자책의 굴레에 빠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분노 감정이 올라올 때 이를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하는데요, 먼저 분노감이 올라오는 느낌을 사연자님께서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자리를 피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일단 마음속으로 ‘그만(STOP)’을 외치면서 분노 폭발을 멈출 것을 선언하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1부터 10까지 숫자를 세면서 복식호흡으로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봅니다. 이렇게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고 관리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사연자님 스스로를 꾸준히 돌보는 것입니다. 육아 스트레스 및 에너지 소진으로 인해 부정적이거나 짜증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일 때, 스스로를 돌보며 긴장을 풀거나 짧게라도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며 충전하도록 합니다. 이럴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중요하므로, 남편분이나 주변에 자녀분을 잠깐이라도 맡아 줄 수 있는 가족분들의 배려와 협조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습니다.

네 번째는 부부가 협력적 육아를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아빠들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출산과 육아는 엄마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부담감으로 혼자서만 너무 끙끙 앓지 마시고, 남편분께 힘든 속마음을 털어놓고 위로와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해 보세요. 이렇게 함으로써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또 협력적 육아란, 자녀의 교육과 발달을 둘러싼 일들을 부모가 함께 책임지고 담당하기로 마음을 모으는 것입니다. 협력적 육아를 해 나가는 데 있어 유용한 팁은 솔직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의논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부 각자의 교육관, 가사 분담, 가족 간 원활한 상호작용을 위해 해야 할 일 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서로의 격차를 좁히며 합의점을 찾아 나갈 수 있습니다. 

자녀를 잘 키우고 돌보려면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잘 돌보고, 건강해져야 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이 점을 꼭 기억하시고, 잠깐의 휴식, 끼니를 잘 챙기는 것 등과 같이 사연자님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좋은 엄마란, 완벽한 엄마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책하는 엄마도, 포기하는 엄마도 아닙니다. 사연자님께서 자신의 내면적 어려움이나 불안적 애착이 아이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성찰하고 에너지를 축적해 나가면서 노력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토양과 자질이 준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자녀분께서 진심으로 느낄 때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사연자님께 힘이 되어 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육아를 통해 자녀와 함께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