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예방,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방법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생에서 찾아오는 다양한 고비와 위협 앞에 우리는 때때로 지치고 힘들다고 느낍니다. 노력해도 상황이 달라지지도, 나아지지도 않을 것 같은 무기력감과 끝이 없는 터널 속을 헤매는 듯한 막막함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계속되고 심각해질 때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데 이르기도 합니다.
통계청의 ‘2021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자살은 2021년 우리나라 10~30대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으며, 같은 해 하루 평균 37명이 자살하여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사회가 자살에 그만큼 취약한 상태이며, 자살 예방 및 자살률 감소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2011년 국회에서 자살예방법이 제정된 이후 2012년 중앙자살예방센터,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설립되었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살예방 정책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자살예방협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등의 기관을 통해 다양한 자살예방 교육 및 상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자살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자살 예방, 자살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을 위한 도움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그 과정에서 특히 전문적인 기관과 의료진들을 통한 도움만 아니라 일반 개인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자살은 죽음을 암시하는 징후나 위험 요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경우 중요한 신호를 놓치기 쉽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위험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주변 사람 중 자살을 생각하거나 계획, 시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여 자살을 예방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해 SNS에 그런 글을 쓰겠거니 혹은 지금 잠시 힘들어서 과장 섞인 표현으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겠거니 여길 때가 많습니다. 또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이 죽기만을 원한다고 생각하거나,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의지가 없는 나약한 사람들이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살을 계획하거나 시도하기 이전에 죽음을 암시하는 글이나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신변을 정리하고 자신의 물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자기비하적인 말이나 우울감이나 의욕 상실과 같은 기분 변화, 수면이나 식욕의 변화,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언사, 자해 행동 등도 자살에 대한 위험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가족, 친구, 연인 등에서의 대인관계 갈등, 실직, 해고, 파산 등 경제적 어려움, 학업, 취업 등에서의 어려움 등 상황적인 요인도 자살의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부분으로 작용합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단계를 지나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런 행동적, 정서적, 상황적 단서들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시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죽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합니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계획 또는 시도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 죽음이 가장 근본적이고 좋은 해결책이라는 생각과 좁아진 시야가 다른 선택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과 마음으로 인해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가 부족해서라거나 죽을 힘으로 살 생각을 하라는 식의 판단하는 말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1. 자살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직접적으로 물어보기
주변 사람이 자살에 대한 언급, 자살한 사람에 대한 동경 표현 등 자살과 관련된 위험 신호를 보이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이런 신호가 감지되었을 때는 직접적으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지, 혹시 시기나 방법 등에 대해서도 계획한 바가 있는지, 이전에 시도한 적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2. 안전한 환경에 있을 수 있도록 돕기
자살 위험에 노출된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 것, 자살 도구를 비롯한 위험 요인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안전한 환경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상대방이 자살에 대한 생각이 들거나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상황을 공유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3. 공감적 경청
비판하거나 판단적인 태도가 아닌 수용하고 공감하는 자세로 상대방이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경청해야 합니다. 힘이 되고 지지해 주는 말들, 따뜻한 눈빛과 눈 맞춤 등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상대방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4. 전문가 또는 치료기관으로의 연계
자살은 생명이 직결되는 문제이며 신체적, 정신적 질병과 관련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울증은 자살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아주 심한 우울 상태에서 우울감이 비교적 완화되어 에너지가 회복된 상태에서 시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정신과, 심리상담센터 등을 통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병원이나 상담센터 내원에 동행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죽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좋아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처럼 말입니다. 그저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처럼 이 말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자살의 위험에 실제로 노출된 사람들의 간절한 외침을 놓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들에 조금 더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언어적 표현을 통해서든,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서든 “죽고 싶다”라는 말속에 숨겨진 “살고 싶다”의 마음을 읽어내고, 우리가 그 희망을 찾는 데 함께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