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는 맞는 약을 찾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2022-11-08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정신과는 맞는 약을 찾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우울증, 공황장애, ADHD, 어떤 진단을 받더라도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질병을 빨리 극복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유독 치료가 느리며, 환자도 의사도 빠른 치료에 대해서는 기대를 내려놓고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른 질병에 비해 치료 속도가 느린 이유가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핵심적인 이유는 약물치료 반응 때문입니다.  

우울장애 약물치료 지침서에 따르면, 첫 번째 항우울제는 2~4주 정도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1/3은 치료 반응이 없어 두 번째 항우울제를 시도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2~4주는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항우울제에 치료 반응이 좋은, 운이 좋은 경우는 2주가 지나면 삶이 개선되기 시작하지만, 운이 좋지 않은 1/3은 2~4주를 기다려도 치료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항우울제를 교체해 다시 2주 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나에게 맞는 약을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적어도 4주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환자의 33%는 맞는 약을 찾기 위해 4주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약의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것과는 별개로 부작용도 맞는 약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효과가 있는 약을 찾아도, 어지러움, 졸림 같은 약의 부작용이 생긴다면 약을 줄이거나 중단하여 부작용을 조절해야 하는데, 부작용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약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약을 먹는 것 자체가 더 큰 스트레스가 되어 치료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사진_ freepik

지금까지는 어떤 약이 환자에게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바로 과거에 처방받은 약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는 거죠. 이전에 처방받은 약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 부작용은 없었는지 등을 확인해 긍정적인 반응이라면 기존의 약을 그대로 처방하고, 부정적인 반응이라면 그 약을 피하고 처방하곤 했습니다. 만약, 기존에 정신과 약을 처방받은 적이 없다면, 현재 증상에 가장 적합한 약을 처방하고, 그 약이 효과가 있고 부작용이 없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의사는 보통 약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약에 대한 반응과 부작용은 사람마다 달라, 복용 후에 반응을 보고 어떻게 약물치료를 할지 의논합시다.”

하지만 만약 사람마다 다른 약에 대한 반응과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다면, 시간이 걸리는 정신과 치료과정을 줄일 수 있고, 부작용을 경험할 가능성도 낮출 수 있겠죠. 실제로 최근 진료 현장에서는 개인 유전체 검사로 약에 대한 반응을 예측하여, 유전자 기반 맞춤형 치료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에스시탈로프람’이라는 항우울제는 CYP2D6라는 간 효소가 대사시켜 체외로 배출됩니다. 동일한 용량의 약을 먹어도 이 효소의 활성도가 높으면 활성도가 낮은 사람에 비해 낮은 약물 혈중농도가 유지되고, 치료 효과가 떨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활성도가 극히 낮은 경우는 소량의 약을 먹어도, 약물 혈중농도가 높아지게 되고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따라서 CYP2D6의 유전 형질을 확인하면, 대사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 가능하고, 그 대사 속도에 맞춰서 대체 약을 처방해야 하는지, 약의 용량을 조절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약을 복용한 뒤 반응을 보며 이것을 추측했다면, 이제는 검사를 미리 한다면 약을 먹지 않고도 이것을 예측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 거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중 상담 영역에서는 개별화된 치료가 굉장히 익숙합니다. 모두의 삶과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 상담이 동일할 수 없는 거죠. 개별화된 치료는 이제 막 약물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독 약물치료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높은 정신과 영역에서, 맞춤형 약물치료가 환자의 부담을 낮춰 주는 전략이 됐으면 합니다.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재옥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