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매번 도망치는 제 모습이 싫어요

2024-11-02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현재 저는 우울 및 불안 진단을 받고 3개월 휴직 중에 있습니다. 현재 휴직하게 된 이유는 격무부서를 버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각종 민원, 업무 분장, 스트레스로 집에 오면 항상 울었습니다. 극심할 때는 퇴사할 용기도, 죽을 용기도 없어 그냥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럼 책임질 일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부서에서 6개월을 버티다… 결국에는 휴직을 하게 됐습니다. 저로 인해 더 힘들어질 팀원들 그리고 복직 후에 그 팀원들을 다시 봐야 하지만 그 당시에는 ‘당장 그만두게 생겼는데, 나만 생각하자.’라는 심정으로 했습니다. 

그렇게 휴직하면서 ‘지친 마음 좀 챙겨 보자.’라는 생각으로 정신 관련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나에게도 문제점이 많았구나.’라는 겁니다. 제가 생각한 건 저는 능력이 없고, 엄마에게 항상 의지하는 겁니다. 제가 자랐던 환경에 대해 말하자면, 집 위치상 교통편이 안 좋아 초·중·고 모두 엄마가 자동차로 학교에 데려다주셨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셔야 통학 및 통근이 가능했습니다. 그런 환경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엄마랑 많은 시간은 함께 보냈습니다.

변명일 수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고 시내로 나가야 하는데 항상 데려다 달라 할 수도 없다 보니 그냥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됐습니다. 흔히 말하는 ‘집순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도 저를 더 챙겨 주 시고…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해야 할 일도 옆에서 다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거죠. 이게 제 안에 스키마가 된 걸까요? 저는 항상 저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저한테 확신이 없으니 계획하지 않은 상황이 오면 당황하고 불안해합니다.

학생 때는 확신이 없어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니 이제 하나하나 느껴지더라고요. 확신이 없으니 불안하고, 불안하니 또 확신이 없고… 격무부서에 있으니 이게 극단적으로 치닫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렇게까지 걱정하고 불안해하지 않을 텐데, 저는 일어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결국에는 그 상황을 회피하고 저를 정당화하려고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면서 저를 극단으로 몰았던 것 같습니다. ‘남들은 이런 상황이어도 스스로 견뎌 낼 텐데….’ 이런 생각만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힘든 걸 엄마한테 다 이야기하거든요. 병원에 가기 전에는 엄마 앞에서 울면서 죽겠다고… 살기 싫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제가 잘못됐고 나쁘다는 걸 아는데도… 사실 마음 한 켠에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원망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엄마가 저한테 하신 희생… 다 알거든요. 그리고 전 진짜 엄마를 사랑하고 친한 친구라 생각하는데…. 저한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한테 상처를 드립니다. 일부러 티를 내서라도 상처를 주고… 저한테 위로의 말을 해 주길 바랍니다. 저도 제가 너무 이상해요. 그래서 이건 누구한테도 말도 못하겠고… 사실 계속 외면하다 처음으로 이렇게 글로 적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휴직의 반 정도 지난 시점인데, 복직하는 것도 걱정됩니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자.’, ‘사람이 힘들면 도망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는 거다.’라고 되뇌는데… 사실을 팀원들이 저를 나약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이기적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이러다 또 회피하려고 할까 봐 두렵고요. 

위에서 쓴 거와 같이 저에게 문제점은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제가 이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복직하기 전에 저를 바꾸고 싶습니다. 다시는 도망치는 나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최근 우울과 불안 문제로 진단을 받고 휴직 중에 있으시네요. 직장에서 업무와 관련해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서 휴직 결정을 하게 되셨고요. 각종 민원을 처리하고 업무를 분장하는 일 등은 아마도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쉽게 해내기 힘든 업무 강도가 꽤 높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혹시라도 이번 일로 인해 사연자님 스스로가 너무 나약해서 버티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고 계신다면, 그런 자책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책하는 습관은 힘든 일을 겪고 작아진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그보다는 사연자님께서 이번 업무를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휴직 결정을 내리신 점을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업무에 대한 과도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셨을 겁니다. 경쟁과 평가에 민감한 직장에서 휴직계를 내고 실행으로 옮기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휴직에 대한 결정은 ‘힘든 상황에서 도망친 것’이 아닌, 자신에게 잠시 쉼이 필요한 순간을 알고 내린 ‘적절한 결정’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보완하면 좋을 점 등에 대해서 자각하고,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생산적으로 보내시는 노력 역시 응원해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문제들은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점을 깨닫고 조금씩 보완해 나갈 수 있다면, 스스로가 더욱 성장하는 것은 물론, 어떠한 문제나 갈등을 맞닥뜨렸을 때 좀 더 유연하게 사고하고 융통성 있게 대처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연자님께서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객관화해 보는 것만으로도 통찰력과 자기 성찰 능력이 높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연자님께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느끼시는 지점은 일상생활에서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상당 부분 어머니께 의지해 온 경향성과 자기 확신감 부족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능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여기서 오는 불안감이 높으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자기효능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공과 실패 경험을 통해 강화되거나 약화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효능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쉬운 과제부터 성공 경험을 쌓아 나가면서 점차 과제 난이도를 높여 성공 경험을 증진해 가는 방법이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그동안 성공 경험을 쌓아 가는 기회와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지, 결코 능력이 없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효능감은 동기나 성취, 귀인 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자기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어려운 과제에 대해 쉽게 포기하거나 도전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높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는 그 원인을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 등 내부로 귀인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 실패의 원인이 외부에 있는 경우에도 자신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기효능감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실패의 원인을 분석할 때 그것이 내부에서 비롯된 것인지, 외부의 요인에 의한 것인지 잘 따져 보고, 모든 것을 내부로 귀인하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연자님께서는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성년에서 초기 성인이 되고, 또 중년이 되는 과정에서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여러 경험과 시도와 실패를 겪으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자신의 일은 자신이 책임지고 처리하고, 겪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교통편이 안 좋아서 어머니께서 매번 출퇴근을 해 주셨다면 이제는 운전면허를 따 보고, 스스로 운전을 해 보는 도전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능력을 길러 나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시도들과 성공 경험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자기 확신감을 쌓아 나가는 것이죠.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갈등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서로 간에 신뢰와 동료애도 쌓일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잘 다져 나가고, 갈등이 생겼을 때는 대화로서 자기주장을 관철하거나 한 발 물러서기도 하면서 협력과 조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해 나가면 됩니다. 문제와 갈등이 잘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회피하지 않고, 하나씩 풀어 나가는 법을 배우시면 됩니다. 

처음부터 유능하고 사회생활을 잘 해 나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들 그렇게 조금씩 부딪치고, 겪으면서 때론 좌절하고 그 와중에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사연자님께서 휴직한 부분에 대해서는 동료 분들께 충분히 이해를 구하셨다면, 대부분의 분들은 어느 정도 이해해 주실 수 있는 사안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또 어쩌면 그 점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분이 한두 분 있더라도 그건 사연자님께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냥 그분의 마음인 것이지요.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일일이 마음 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지금껏 사연자님을 위해 많이 희생하시고 사랑해 주신 만큼, 이제는 성인 대 성인으로서 어머니를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사연자님께 어머니란 존재는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지지적이고 편안한 대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나의 힘든 마음과 불편한 감정을 어머니께 여과 없이 표출하고 뭐든 받아 주기를 바라셨을 겁니다. 아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줘야지.’ 하는 마음이셨겠지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사연자님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아이 대 성인’의 관계가 아닙니다. ‘성인 대 성인’의 관계로 재설정되어야 합니다. ‘성인 대 성인’의 관계란, 나의 짜증 나고 힘든 마음을 마치 친구에게 고민 상담을 할 때처럼 터놓고 위로를 바랄 수는 있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감정의 배출구로 삼는 방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상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연자님의 마음도 어머님의 마음도 상처받지 않고, ‘성인 대 성인’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적어 주신 사연글을 보면, 지금처럼 스스로를 잘 객관화하고 성찰함으로써 충분히 현재의 문제들을 잘 헤쳐 나가고, 내면이 잘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와 통찰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휴직 기간 동안 이렇듯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또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보내셔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직장으로 복귀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