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심(心)리 시리즈] 3편 - 불안이란 무엇일까요?

2022-06-08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불안이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불안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내는 비상 사이렌입니다. 위험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긴장시키는 일종의 알람입니다. 때문에 불안은 우리의 생존과 적응에 필수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안하지 않다면 우리는 긴장하지 않게 되고, 긴장하지 않으면 정글에서는 생존할 수 없고, 사회에서는 경쟁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불안은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스트레스가 되어 줍니다.

그렇다면 불안과 공포는 무엇이 다른 걸까요? 공포 역시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거나 맞서 싸우기 위한 비상 사이렌이자 알람 태세입니다. 실제로 공포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과 불안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은 매우 유사합니다. 하지만 '공포'라는 용어는 그 위험의 정체가 매우 분명하게 닥쳐 있을 때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불안'은 조금 더 멀리 있거나 아직 닥치지 않은 위험일 때, 혹은 그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 모호한 위험일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예를 들자면, 늦은 시간 위험한 동네의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걸어갈 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골목길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오진 않을까 귀신이 나오진 않을까 걱정하며 긴장하고 움츠러들게 될 때 느끼는 감정은 불안입니다. 그러다가 정말로 눈앞에 전기톱을 든 살인마가 나타난다면, 그때에 느끼는 감정은 공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상황에서 불안과 공포는 섞여 있습니다.

 

 

불안과 공포는 말씀드렸다시피, 근본적으로 '위험에 대한 대비 태세' 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은 불안하고 두려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위험한 대상과 맞서 싸우거나(Fight) 대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Flight)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Fight or Flight 반응이 나타납니다.

 

 

앞선 예처럼 살인마가 눈 앞에 나타났다면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요? 최대한 빨리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근육이 평소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때문의 온몸의 근육들은 힘을 쓸 준비를 하며 수축되고 긴장하게 됩니다. 또 근육에 더 많은 혈액을 공급해줘야 하기 때문에 심장은 미리미리 쿵쾅쿵쾅 뛰며 더 빨리 더 많이 피를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최대한 많은 빛을 받아들이고 관찰하기 위해 동공이 확장됩니다. 체온을 보존하고 몸을 부풀려 보이기 위해 피부의 털들은 곤두서기 시작합니다. 털이 없는 부분은 모공만 수축하며 닭살처럼 소름이 돋습니다. 어떠신가요? 상상이 되시나요?

우리 몸에는 이러한 일련의 반응을 자동적으로 지휘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바로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입니다. 자율신경계란, '자율'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이 자율적으로 조절되는 신경 시스템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심장 박동 속도를 조절하거나 동공 크기를 조절할 수는 없는 것처럼 이러한 것들은 자율신경계가 그 조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율신경계에는 앞에 말씀드린 예처럼 우리를 긴장시키는 시스템-'교감신경계'가 있고, 반대로 우리를 편안하게 이완시키는 '부교감신경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불안하다는 것은 교감신경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정신장애가 그러하듯, 불안장애 역시 불안이 과도하게 나타날 때에, 과도한 불안 때문에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때 나타납니다. 즉,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 될 때, 부적절하게 교감신경이 활성 될 때 우리는 불안장애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거나 긴장해야 하는 상황일 때만 적절히 긴장해야 하는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간에조차 교감신경이 마구 날뛰고 있다면 불안장애를 앓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왜 교감신경이 불필요하게 작동하게 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정신과적 질환들이 그렇듯, 불안장애가 발생하는 원인도 무척 다양합니다.

 

 

유전적 요인과 성장 환경, 외부 요인, 생물학적 조건 등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자율신경계의 활성을 교란시킬 수 있습니다. 자율신경계는 부신(우리의 콩팥 위에 자그마하게 붙어 있는)이라는 기관에서 뇌하수체, 시상하부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스템을 통해서 조절되기 때문에 이 시스템이 망가질 때 교란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망가진다는 것은 곧 이 시스템을 조절하는 많은 호르몬들이 과다하게 분비되거나 분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선, 불안의 이러한 생물학적 원인이 밝혀지기 전 프로이드는 이러한 불안이 생기는 이유가 우리 무의식 속의 갈등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생물적이고 원초적인 본능과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의식적인 욕구들, 성적 욕구와 파괴적 욕구, 사랑의 욕구 등은 매우 동물적이기 때문에, 짐승들이 그러하듯 시와 때가 없고 방향이 없습니다. 우리가 의식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면서, 그리고 양육을 통해 성장하면서 원초적인 욕구 그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이러한 욕구와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정체,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는 정체를 프로이드는 초자아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초자아 때문에, 또는 마음 속의 초자아가 아니더라도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우리의 욕구는 대부분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적인 갈등이 '불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불안'이 괴롭기 때문에 우리는 욕구와 불안, 분노 같은 감정을 '억압'하게 된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뇌영상 연구를 통해 불안할 때 가장 활발하게 활성되는 부위가 뇌 중심부의 편도체(amygdala)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편도체는 외부 자극이나 의식적인 기억의 영향 없이도 무의식적 자극에 의해 활성화될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는 행동의학적으로 불안장애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경험하는 공포 반응이 우리 몸에 학습되어서 일종의 반사처럼 조건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종소리를 들려주며 먹이를 주었더니, 나중에는 먹이 없이 종소리만 들려줘도 개가 침을 흘리게 되었다는 조건반사 실험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특정 상황에서 경험한 공포 반응이 그 상황의 다른 무엇인가와 무의식적으로 조건화되고, 나중에는 위험한 대상 없이 그 상황과 유사한 다른 자극을 받기만 해도 반사적으로 공포와 불안반응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무의식적인 불안 기억을 저장하는 편도체는 우리가 출생할 때 부터 발달이 완료된 채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적인 기억,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기억 체계인 전두엽과 해마는 출생 당시 아직 발달이 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생아 때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뇌가 덜 발달해서 사건을 애초에 저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편도체는 완전히 발달되어 있으므로 불안 반응이 조건화된 기억은 저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어린 시절에 조건화된 대상과 만났을 때 우리는 갑자기 무의식적으로 불안해지지만, 그 기억을 떠올릴 수는 없으므로 무엇 때문에 불안해지는지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하고 과도한 불안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안이 발생하는 요인은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불안장애는 무척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불안장애의 형태와 경과는 모두 다르겠지만 DSM에서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불안장애들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하더라도 위에서 이야기하였듯 그 시초와 기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불안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접근과 방향도 그에 맞춰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총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