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성장하면서 겪은 마음의 상처가 나아질까요?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그 과정에서 맏이인 저에게 부담을 많이 주셨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돈도 못 벌고 학교에서 이런저런 돈이 나가는 게 죄스러웠고 성인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도 벌고 생활비도 냈습니다. 중간중간 한두 달 일을 안 하면 제 자신이 쓰레기 같더라고요. 집에서도 사회 낙오자처럼 투명인간 취급을 해서 더더욱 그리 느꼈습니다. 그래서 길게 쉰 적 없이 아르바이트든 계약직이든 뭐든 빨리 취업하고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20대를 지내 오고 나니 이제 와서 속상함과 분노가 올라옵니다. 왜 어릴 때 나를 그렇게 키웠을까. 왜 감정적으로 안아 주지 못했을까. 동시에 어쨋든 저를 키워주셨고, 먹이려고 여러 일을 해 오시다 보니 삶이 팍팍해서 그랬던 거겠지… 아무리 다독여도 상처는 상처더라고요.
그리고 여전히 반복되는 가정사에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지고 이제는 지치고 무너집니다. 저는 뿌리가 없는 것 같아요. 외부 스트레스에서도 취약한 게 집에서도 마찬가지거든요. 기댈 수도 없이 어릴 때부터 빨리 자라야만 했던 저는 다 큰 성인이 되어서 부모님들이 왜 그랬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이처럼 몰래 웁니다.
얘기도 해 봤지만 힘들게 살아온 본인들에게 왜 또 나쁜 부모를 덧씌우는지, 오히려 저는 이기적이고 배부르고 머리 큰 불효 자식이 됩니다. 저는 제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닌데요… 그러다 보니 삶의 의지도 사라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독하게 외로웠고 투정 부릴 데도 없이 돈 못 버는 내 자신이 쓰레기 같게 느끼고 친구들을 편하게 집에 데려온 적도, 마음 터놓고 얘기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 집 사정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안 이후로부터요. 해소가 안 되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갑자기 30대에 부모 탓하는 제 자신이 한심합니다.
이게 극복이 될까요? 이런 사례가 있나요? 왜 제가 본 사례들의 결말은 다 슬픈지…그냥 잘못 태어난 것 같아요.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우경수입니다. 성장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에 대해 사연을 주셨네요. 부모님의 이혼과 이후의 사연자 님께서는 맏이로서 부담을 느끼셨고, 성인기 초반부터 경제활동과 학업을 병행하게 되며 많은 고생을 하게 되셨군요. 주변 친구들은 학업과 자신의 취미를 탐색하고 열중할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살아오셨을 그 장면들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듯합니다. 그 과정에서도 일을 하지 않으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자신이 ‘쓰레기’같다며 죄책감을 느끼셨고요. 30대가 되어서야 그에 대한 분노와 서운함을 느끼시며, 동시에 한편으로는 부모 탓을 하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라는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셨어요.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처럼 표현하셔서, 그 가운데서 꼼짝달싹 못하는 사연자 님이 느낄 고통이 상상이 되는 듯합니다.
사연에서 ‘왜 다양한 감정 중 죄책감을 느끼셨을까?’, ‘왜 30대라는 시기에 그러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을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그 시기까지 굳게 버텼을 사연자 님을 응원하고 또한 칭찬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 우선적으로, 본 글에서는 유년기 상처가 주는 영향과 극복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자신이 어떤 상태와 영향을 받았는지 아는 것이 상황을 해결하는 첫 시작일 거예요.
어린 나이에 받았던 포괄적인 상처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은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역경 또는 고난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이 지속적으로 활성화되면, 뇌와 신체의 발달을 방해하고, 스트레스 관련 질병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며, 어린 시절 단기적으로 받은 상처로 인한 스트레스가 성인기까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를 독성 스트레스 반응(toxic stress response)이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독성 스트레스 반응은 적절하고 편안한 지지체계가 없는 아이들에게서 강력하고 빈번한 상처가 지속되었을 때 발생합니다.1
통상 상처(고난 또는 역경)로 분류할 수 있는 예들로는 정서적 또는 신체적 학대 경험, 장기간의 방임, 부모의 정신과적 병력 또는 알코올 중독, 폭행당한 경험, 지속된 경제적 열악함, 부모의 이혼 등 비교적 흔한 경험부터 지독한 경험까지 다양합니다. 요약하자면, 독성 스트레스 반응은 아이들의 뇌 발달(학업 능력을 포함)을 방해하며, 일생에 걸쳐 정신적 질환과 스트레스 관련 신체 질환(심혈관, 면역, 대사)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킵니다.2, 3
다만 모든 상처가 동일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는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깊숙하게 속하게 되며 장기적인 변화를 줄 수도, 또는 다른 시점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그 관련 요인들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신체적 또는 정서적 학대는 부모의 이혼보다는 개인의 발달에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등 역경의 심각도와 그 지속 기간이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4, 5
노출되는 개인의 나이도 중요한 요소인데, 현재까지 언어 발달,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의 발달, 애착관계의 형성, 뇌의 발달 등에 영향이 큰 생후 3세 전까지의 시기가 노출된 상처가 더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6 복합적인 다양한 문제의 상처일수록, 또한 그 상처들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개별적으로도 각 개인이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수줍음이 많거나 행동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 개인이 상처에 더 민감하고, 정신적 발달의 방해를 받기도 합니다.7 반대로, 안정적이고 지지적인 가족 환경은 이러한 독성 스트레스 반응을 막아 주는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8
이러한 상처들을 받은 개인이 성인이 된 경우 정신과적으로는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 과도한 음주, 자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인지 저하의 위험과 관련되어 있으며, 신체적으로는 독성 스트레스 반응으로 인한 심혈관 질환, 뇌졸증, 천식, 당뇨, 비만 등의 위험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9
어린 시절의 상처들에 대해 회복을 시작하고, 변화하기 위해 한 가지 추천드릴 방법은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과거 상처에 대해서 그 일과 관련한 자신의 가장 깊숙한 감정과 생각을 적어 보세요. 글을 쓰면서,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그 사건과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을 지켜보세요. 그러한 경험은 과거 어린 시절, 갈등을 보인 부모님, 혹은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사람들과 연관된 경험일 수 있습니다. 그 생각을 억지로 잊으려 하기보단 떠오르는 생각을 흘려보낸다는 느낌으로 바라봅니다. 꾸준히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10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최종적으로는 치료적 상황으로 가져와 얽혀 있는 과거의 실타래를 푸는 작업을 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치료 작업 속에서, 부정적인 기억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해 주며, 자신과 치료자 간 안전한 관계를 형성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뇌의 회로를 수정하고, 더 건강한 뇌 구조적 성장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 전부 해결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지, 느끼는 감정들-우울, 불안, 죄책감, 분노 등-에 대하여 비슷한 감정이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그것이 곧 회복의 시작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긴 시간 동안 어떤 영향을 받았다면 그 영향을 소화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회복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는 다시 소중한 무언가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사연자 님께 회복력을 가져다 줄 것이고, 상처 속에서 더 넓은 세상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정신건강의학전문의 | 우경수 원장
참고문헌:
1. Shonkoff JP, Garner AS, Siegel BS, et al. The lifelong effects of early childhood adversity and toxic stress. Pediatrics. 2012;129(1):e232-e246.
2. Nurius PS, Green S, Logan-Greene P, Borja S. Life course pathways of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toward adult psychological well-being: A stress process analysis. Child abuse & neglect. 2015;45:143-153.
3. Bellis MA, Hughes K, Ford K, Rodriguez GR, Sethi D, Passmore J. Life course health consequences and associated annual costs of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across Europe and North Americ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The Lancet Public Health. 2019;4(10):e517-e528.
4. Afifi TO, Boman J, Fleisher W, Sareen J. The relationship between child abuse, parental divorce, and lifetime mental disorders and suicidality in a nationally representative adult sample. Child abuse & neglect. 2009;33(3):139-147.
5. Lewis SJ, Arseneault L, Caspi A, et al. The epidemiology of trauma an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in a representative cohort of young people in England and Wales. The Lancet Psychiatry. 2019;6(3):247-256.
6. Nelson III CA, Gabard-Durnam LJ. Early adversity and critical periods: neurodevelopmental consequences of violating the expectable environment. Trends in Neurosciences. 2020;43(3):133-143.
7. Shaligram D. The Orchid and the Dandelion: Why Some Children Struggle and How All Can Thrive, W. Thomas Boyce, Alfred A. Knopf, New York (2019). Elsevier; 2020.
8. McEwen BS. Protective and damaging effects of stress mediators.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1998;338(3):171-179.
9. Nelson CA, Bhutta ZA, Harris NB, Danese A, Samara M. Adversity in childhood is linked to mental and physical health throughout life. bmj. 2020;371
10. Pennebaker JW, Smyth JM. Opening up by writing it down: How expressive writing improves health and eases emotional pain. Guilford Publication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