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사람들을 대하는데 너무 예민한 저, 뭐가 문제일까요?
[정신의학신문: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요샌 너무 쉽게 화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감정 조절 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저는 예전부터 친구가 조금만 성의 없게 답장 할 때, 친구가 며칠 동안 연락이 없을 때, 겨우 연락이 닿았지만 첫 마디가 근황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성적에 관련된 질문일 때 등등...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자주 받았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들로 인해 생기는 감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곤 했었는데, 모종의 사건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데이고 나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렇지 않은 척, 대인관계에 원활한 척 하며 그런 감정들을 무시하곤 했습니다. 별 거 아니겠지, 내가 예민한 거겠지. 여전히 저는 제가 예민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몇 년을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봐요. 뭐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쌓여왔던 게 터져서 조금만 속상해도 바로 상대방에게 얘기하고 화를 냈습니다. 한 편으로는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어요. 혼자 묵혀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말을 해서 사이가 나빠지든 좋아지든 해보자... 근데 오히려 저를 깎아내리고 있더라구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저는 친구들로 인해서 속상함을 느끼고 화가 나는 게 제가 예민해서라고 생각해요. 다 제 잘못인 것만 같습니다. 근데 이걸 상대방에게 얘기해버리니 시원함과 동시에 제가 찌질하고 사소한 것에 화를 내는 바보가 된 것 같아요. 왜 이런 아주 작은 감정들을 주체를 못하고 남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걸까. 내가 예민한 건데 왜 남의 탓으로 돌리는 걸까. 이건 다 내 잘못이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서 끝이 안 납니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실패하고나 좌절하는 일이 있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무시를 해버리고 마는 점이 꼭 대인관계에서는 적용이 안 돼요. 생각 정리를 못해서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감이 안 오네요.
답변)
안녕하세요. 대인관계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경험하셨군요. 친구와의 관계에서 서운하고 속상한 상황이 생겼을 때 오랜 시간 참기도 하다, 쌓아온 감정이 폭발해 직접 표현도 해보셨네요. 수년에 걸쳐 타인에게 표현하는 양이나 방식에 대해 많이 고심해온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 답변을 통해 사연에 적어주신 ‘예민함’, ‘감정조절’, ‘자기비하’라는 사연자님의 경험을 잘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먼저 감정 조절이 어렵고 자기비하가 심해지는 상황은 사연자님의 예민한 기질과 관련이 깊다고 봅니다. 예민성, 섬세함, 민감성이라고 번역되는 Sensitivity는 심리학계에서 일레인 아론 박사가 최초로 제시한 개념입니다. 이분은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HSP(Highly Sentitive Person)’의 개념을 정리하여 1996년에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최근에도 예민함을 다룬 신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을 인구의 1/5정도로 추산하는 것을 보면, 예민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고, 예민한 기질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예민한 기질을 대범하고 느긋하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성격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예민함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최근에서야 예민함을 새롭게 조망해야 한다는 관점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지요.
저는 사연자님이 자신의 예민한 기질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지하는 것을 알아차리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예민한 기질에 대해 균형적인 관점을 갖출 때, 자기를 수용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지리라 믿습니다. 이제부터 예민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앞으로 대인관계 장면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이 적절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예민함’보다는 ‘섬세함’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보다 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섬세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핵심적인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어진 자극을 쪼개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처리할 자극의 양이 몇 배로 늘어납니다. 자극을 세세하게 처리하는 특성으로 인하여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진폭도 큽니다. 생각의 양도 많습니다. A라는 자극을 단순하게 A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A에 대하여 B,C,D,E 등 계속 자극을 쪼개어 확장합니다. 이러한 특성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며, 단지 처리하는 방식의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섬세한 기질의 사람들은 깊고 넓게 사유할 수 있으며, 타인은 캐치하지 못하는 의미나 단서를 발견해내기 때문에 창조적입니다. 창조적인 특성은 긍정적으로 발휘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도록 이끕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창조하게 되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생각을 매우 많이 하면서 고통받습니다. 또한 내부적으로 자극을 해석하고 정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는 과정에서 피로도가 높아지고, 느낀 양에 비례해서 표현하기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타인이 ‘오늘 컨디션 좋아?’라고 물었을 때, 그 질문에만 단순하게 집중했다면 ‘응 좋아’ ‘아니 별로’ 이렇게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에 비해 섬세한 기질의 사람들은 짧은 순간에 ‘컨디션은 왜 물어보는 거지? 내가 표정이 안 좋나? 웃으면서 뭐라고 대답해줄까. 솔직하게 별로라고 얘기할까. 이유도 말해야할까’ 이렇게 하나의 질문도 세세하게 쪼개어 생각하는 회로가 작동합니다. 그러느라 신속하게 반응하는 데에 일정 시간이 소요됩니다. 즉, ‘신중하게’ 반응합니다. 대인관계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다양하게 반응할 선택지가 있기에 관계를 고려하여 최적의 반응을 고르느라 심리적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섬세한 기질을 잘 이해 못하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너무 많아.’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생각이 많은 것은 맞지만, 좀 더 기질적인 특성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연자님은 사고와 감정이 아주 풍부하고 활발한 것입니다. 타인들은 무심코 지나치거나 금방 잊을 경험을 붙잡고 있는 것은 때로는 무척 괴로운 일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경험을 다각도로 폭넓게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합니다. 그게 그 사람의 개성이 되는 것이죠.
사연자님의 섬세한 기질에 대해 가지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아직 남아있을 겁니다. ‘찌질하고 사소한 일에 화내는 바보’라는 낙인이 그렇습니다. 대범하고 쿨하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을 ‘이상적인 성격’으로 정해두신 것은 아닐까 합니다. 대인관계에서 내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지 다들 이상적인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달성하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나의 기질에 반하는 모습은 아닌지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맞지않는 옷을 억지로 입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필수입니다. 그래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고, 그런 나에게 어울리는 표현방식과 수위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은 오랜 시간 표현하지 못하고 쌓아만 두었던 것이 대인관계나 자기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표현방식을 새롭게 바꾸신 겁니다. 대인관계에서 쌓아두지 않고 표현하자는 결심은 기존과는 새로운 시도이고, 사연자님이 꼭 해볼 필요가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사이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일단 표현한 선택은 정말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표현하면서 시원함을 느끼셨는데요. 표현하고 난 이후에 대인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관계가 더 원활하게 풀렸는지 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관계를 마냥 끊어내는 회피적인 선택이 아니라, 대인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 불편함을 표현하고 소통한다는 것은 용기있고 성숙한 대응입니다. 그점은 충분히 스스로 칭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일 표현한 것에 비해 관계가 별로 변화가 없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대인관계 개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표현하는 그 자체도 아주 중요합니다. 사연자님이 어떠한 사람인지 스스로도 알 수 있고, 상대방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로 인해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부차적인 결과입니다. 자신이 상대에게 꺼내놓은 표현 자체를 귀하게 여기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연자님이 꼬리를 물면서 하는 생각들은 대부분 부정적이며 사실로 검증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들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난 왜 감정 주체를 못하고 피해를 줄까?’라는 생각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믿으면 ‘나는 감정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 부정적인 감정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는 성격적 낙인을 찍게 됩니다. 이를 의심하고 필터링해야 합니다.
사연자님의 동일한 행동도 다르게 해석하는 대안적인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감정을 진실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방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진 사람’ ‘이로 인해 상대방이 불편해질 수도 있지만, 이를 감수하는 선택을 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렇게도 자신의 모습을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누구나 서툴게 표현할 자유가 있습니다. 자책하고 후회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찌질하다고 바보같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회적인 사건에 대해 보였던 나의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사연자님에게 찌질하고 바보같은 면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모습도 있을 겁니다. 이상적으로 도달할 자기 모습과 피해야 할 모습은 많이 만들수록 괴로워집니다.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어떤 면을 규정하는 것은 마치 밟지 않아야 하는 지뢰의 양을 늘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뢰를 피하느라 불안해하고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지뢰는 모두 없애고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걸으셨으면 합니다.
즉, 대인관계는 자신과 타인에게 가지는 ‘기대’가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반응하기를’ ‘타인이 이렇게 반응해주기를’ 미리 기대합니다. 그렇지만 기대와는 다른 상황이 언제나 발생합니다. 그것이 삶이 작동되는 방식입니다.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타인에게 서운했다는 것은 ‘기대’하고,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했다는 것입니다. 상상하고 기대할 자유는 있지만, 이것이 예상과 다른 현실을 마주해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마음이 앞으로 사연자님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인관계는 시행착오를 통해 더 적정한 표현방식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금 그 과정을 고군분투하며 겪어내는 자신을 좀 더 지지해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사연자님의 예민한 기질을 다룬 책들을 읽어보시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경험을 하길 응원합니다.
신림평온 정신과 전형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