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먼저냐 처가가 먼저냐, 이것이 문제로다 -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더 많이 아프기 마련이다
이호선의 [가족의 심리학] (10)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시댁이 먼저냐 처가가 먼저냐, 이것이 문제로다
-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더 많이 아프기 마련이다
후배의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중매로 만난 남녀가 교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했다. 양가 부모끼리 잘 아는 사이라 믿음이 컸기에 별 어려움 없이 혼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주변 사람 대부분이 부모 교육을 잘 받은 이들 부부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리라 생각했다.
결혼 후 첫 번째로 맞은 명절이었다. 남편은 당연히 자기 부모님께 갔다가 나중에 처가를 들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내 생각은 달랐다. 처가를 먼저 갔다가 나중에 시댁을 가자는 것이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남편은 첫 명절이니 아내 말대로 처가에 먼저 들러 장인 장모께 인사를 드리고 처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왔다. 그런 다음 다시 짐을 꾸려 부모님께 갈 채비를 했다. 이때 아내가 너무 피곤해서 가기 어렵다면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처가에 갔다 왔으니 이제 본가에 가야지. 얼마나 기다리시겠어. 갔다 와서 쉬자고.”
“아, 몰라. 피곤해 죽겠어. 꼭 처가 가면 시댁도 가야 해? 건너뛰면 안 돼? 다음에 가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결혼 후 첫 명절인데 지금 시댁엘 안 가겠단 얘기야?”
“안 가는 게 아니라 피곤해서 못 가겠다잖아? 가려면 당신 혼자 갔다 와!”
남편은 어이가 없었다. 가정교육은 차치하고 기본적인 예절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심각한 싸움을 벌였으나 아내는 끝내 시댁에 가지 않았다.
이 일로 남편의 본가가 발칵 뒤집혔다.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였는데, 신혼부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부를 보러 온 집안 어른들이 별일 다 보겠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남편 부모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며느리는 전화를 꺼놓았고,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편은 혼자 부모님께 갈 수도 없고,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도 없어 죽을 맛이었다.
그 뒤 이 부부는 냉랭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마침내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나중에 이 일을 알게 된 남편의 부모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며느리 부모를 찾아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따진 것이다. 딸아이를 감싸며 변명하던 부모와 며느리를 잘못 가르친 사돈을 다그치던 부모는 멱살잡이까지 하며 대판 싸움을 벌였다. 사돈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넘지 못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결국 이 부부는 별거하다가 이혼에 합의하고 말았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부부 사이에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일 수 있고, 도저히 양보가 되지 않는 문제일 수도 있다. 어지간히 금실 좋은 부부라도 자기 부모와 배우자 부모 문제로 얼굴 붉히지 않은 부부가 없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혈연으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다. 결혼 전에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일이 있었다 해도 결혼 후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며 부모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자식들은 연로한 부모를 보며 한없이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부모 또한 자신의 품을 벗어나 가정을 이룬 장성한 자식을 보며 품 안에 있을 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데 대해 한없이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런 마음을 배우자가 잘 헤아려 상대방 부모에게 잘해주면 더없이 좋겠지만, 부당하고 불공평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게 대한다면 섭섭하기 이를 데 없고 심할 경우 배신감과 모멸감까지 느끼게 된다.
이런 문제는 결혼 전 혹은 신혼 초에 정확하게 명문화해서 규칙을 정해두는 게 현명하다.
첫째, 양가 부모님께는 설날, 추석, 생신, 제사 등 연 6회는 필수적으로 함께 방문한다.
둘째, 이때 방문 순서는 아내, 남편 순으로 매번 번갈아 가며 한다.
셋째, 이 외에 찾아뵐 일이 있을 때 상대방 동의를 얻어 연 5회까지 함께 방문한다.
넷째, 양가 부모님이 사고나 병환으로 입원하게 되었을 경우는 위 경우에서 예외로 한다.
다섯째, 양가 부모님께 매달 정기적으로 용돈 20만 원씩을 각각 10만 원씩 송금해드린다.
여섯째, 위 송금 시 남편 부모님께는 아내 이름, 아내 부모님께는 남편 이름으로 한다.
일곱째, 긴급한 일로 양가 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할 때는 상대방 동의를 얻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이런 합의는 매우 구체적일수록 좋다. 알아서 하겠지, 내가 이 정도 하면 자기도 이만큼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상대방은 내 생각과 다르다. 당연히 내 마음 같지 않다. 기대가 크면 실망 또한 큰 법이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프린스턴 대학의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가 연구한 주제 중 하나가 ‘손실 회피 심리’다. 이득을 봄으로써 얻게 되는 기쁨보다 손해를 봄으로써 갖게 되는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A : 어느 상점에서 5만 원짜리 물건을 1만 원 할인된 가격으로 싸게 샀다.
B : 어느 상점에서 5만 원짜리 물건을 샀는데, 다른 곳에서는 4만 원에 팔고 있었다.
이럴 경우, 어느 쪽에 더 마음이 동요되고 신경이 쓰일까?
A처럼 물건을 1만 원 할인받아 싸게 산 경우, 누구나 ‘이득이다!’라고 생각하고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얼마 후면 생각나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B의 경우, 5만 원짜리 물건을 사서 기분 좋게 걸어가는데, 다른 상점에서 똑같은 물건을 버젓이 4만 원에 팔고 있는 걸 목격했다면 큰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 자신에게 물건을 5만 원에 판 상점 주인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왜 싸게 파는 집을 두고 비싸게 파는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샀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억울하고 분하다는 불쾌한 감정이 솟구친다. 이런 기분은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두고두고 떠오르며 상한 감정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손해는 이득보다 2.25배의 심리적 충격이 있다고 한다. 내 월급이 1만 원 깎이는 것의 심리적 영향은 내 월급이 2만 2,500원 오르는 것의 심리적 영향과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손해를 보고 싶지 않은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손해 보고 싶지 않은 심리는 부부 사이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받을 존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과 헌신에 소홀할 때 사랑을 싸늘하게 식어간다.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할 때뿐이다. 내가 싫고 힘들고 매사 손해를 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배우자에게 맞춰주면서 헌신을 다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기 부모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남편이 처가에 잘하고 장인 장모에게 아들처럼 살갑게 굴 때 아내는 기분이 좋다.
이럴 때 남편은 이렇게 기대한다.
‘저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면 감동이 되어 앞으로 시부모님에게 더 잘해드리겠지?’
그렇지 않다. 아내는 이렇게 생각한다.
‘고맙지만, 나는 시부모님에게 저렇게 못 해. 기대하지 마. 네가 좋아서 그러는 거잖아?’
아내가 시부모님에게 예정에도 없는 용돈을 두둑이 드렸다고 하면 남편은 흡족하다.
이럴 때 아내는 이렇게 기대한다.
‘다음 달 보너스 나오지? 알아서 해라. 오늘 내가 시범 보인 대로만 해.’
천만의 말씀이다. 남편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다고 해서 장인 장모께 용돈 더 드릴 거라 바라지 마. 나 요즘 돈 때문에 힘들다.’
남편은 자기가 처가나 장인 장모에게 한 만큼 혹은 그 이상 아내가 시댁과 시부모에게 잘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언제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실망만 남는다. 참다 참다 한마디 하면 아내 역시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쌓아두었던 시댁과 시부모에 대한 불만을 토해낸다. 아내 또한 자기가 시댁이나 시부모에게 한 만큼 혹은 그 이상 남편이 처가와 장인 장모에게 잘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항상 바람은 쓸쓸히 사라지고 상심만 남는다. 벼르고 벼르다 한마디 하면 남편 역시 지지 않고 그동안 묵혀두었던 처가와 장인 장모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는다. 내가 한 만큼 너도 하라는 이야기다. 나만 손해 보고 산다는 말이다. 적어도 부모 문제만큼은 손해 보며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럴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내가 이 힘든 와중에 이만큼이나 하는데, 당신은 왜 그 정도도 못 하는 거야?”
부부가 양가 부모님께 어떻게 하느냐, 구체적으로 몇 번을 방문하고, 용돈을 얼마나 드리며, 전화는 언제 하는 게 좋은가 하는 문제를 정하거나 해결할 때 몇 가지 노선이 있다.
첫째는 이기주의다. 각자 좋은 대로 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 없이 나만 좋으면 된다. 배우자가 내 부모에게 이렇게 했으니 나도 배우자 부모에게 이렇게 해야지 하는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각자 내 부모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배우자 부모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거나 참아주지 않으면 매번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
둘째는 상호주의다. 서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각자 내 부모에게 한 만큼 배우자 부모에게 하면 된다. 더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는다. 친정에 가서 하룻밤 잤으면 시댁에 가서 하룻밤 잔다. 본가에 가서 제사를 지냈으면 처가에 가서도 제사를 지낸다. 모든 걸 주고받기식으로 하면 불만이 없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자로 잰 것처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셋째는 보복 전략이다. 나는 양심과 상식에 따라 내 부모와 배우자 부모 모두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배우자는 그렇지 않을 때 배우자와 배우자 부모에게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대응하는 셈이다. 유치하고 졸렬해 보이지만, 사람은 감정을 가진 존재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둘 다 이렇게 했을 때 가정은 전쟁터가 될 수 있다.
넷째는 이타주의다. 배우자가 내 부모에게 어떻게 하든 상관치 않고 나는 변함없이 내 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배우자 부모를 성심성의껏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다. 오로지 사랑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딸 같은 며느리와 아들 같은 사위가 현실화한 경우다. 이런 배우자를 만난다는 건 분명 하늘이 준 복이다. 그만큼 흔치 않은 일이다.
“누구나 기분을 드러낸다. 내 기분은 내 선에서 끝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겉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기분과 태도는 별개다. 내 안에서 저절로 생기는 기분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태도는 다르다. 좋은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중국의 대표적 심리 상담 플랫폼인 레몬 심리가 지은 책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에는 ‘기분 따라 행동하다 손해 보는 당신을 위한 심리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기분대로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살다 보면 손해 보는 건 나 자신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처가와 시댁에 조금 섭섭하게 하더라도, 자기 부모에게는 잘하면서 내 부모에게는 한없이 인색하더라도 이를 따지며 싸우거나 서운한 기분을 다 드러내면 부부관계는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려면 요령과 지혜가 필요하다. 배우자에게 좋은 태도를 기대하는 만큼 내가 먼저 좋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노력한 대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사랑도 공평하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결과는 늘 부족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하면, 변함없이 지극히 사랑하면 언젠가는 보상이나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참고 기다리는 게 고통스럽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보상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다. 내게 부모가 소중하면 내 배우자에게도 부모가 소중하다. 내 배우자가 내 부모에게 소홀하면 섭섭하듯, 내가 배우자 부모에게 소홀하면 내 배우자도 섭섭하다. 내 배우자가 내 부모를 잘 공경하면 흐뭇하듯, 내가 배우자 부모를 잘 공경하면 내 배우자도 흐뭇하다. 내가 좋은 건 배우자도 좋고, 내가 싫은 건 배우자도 싫다.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태도를 바꿀 수 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소중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태도를 갖추게 된다. 배우자 중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양보하게 마련이다.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견딜 수밖에 없다.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인내고 헌신이다. 그것이 인생의 원리고 사랑의 법칙이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