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의 앱테크 - 사소하지만 확실한 성취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20대 후반의 A는 어플을 켜면서 외출을 시작한다. 걸음 수만큼 포인트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인트는 어느 정도 적립하면 쿠폰으로 사용하거나, 현금으로 출금할 수 있다. 회사에서는 짬이 날 때마다 광고 영상을 틀어놓는다. 20~30초 되는 광고 영상을 시청할 때마다 역시 포인트가 쌓인다. 커피를 사 먹을 때는 쿠폰에 도장 찍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영수증 또한 버리지 않는다. 영수증 사진을 찍어 매장 방문을 증명하고 카페 리뷰를 올리면 적립금이 쌓인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앱테크는 A의 취미이며 아르바이트와 같다. 월급을 아무리 모아도 집을 사거나, 결혼 자금을 모으기 힘들어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앱테크를 하며 작은 성취감이 쌓여 부지런히 살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겼다.
A와 같이, MZ세대에게 엡테크가 열풍이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삶의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앱테크는 ‘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의 합성어다. 스마트폰 어플을 활용해 돈을 버는 재테크 방식인 것이다. ‘사이버 폐지를 주워가라(온라인상에서 이벤트를 통해 포인트를 모아 혜택을 얻는 것)’ 이전부터, 도장 10개를 모으면 커피나 빵를 주던 도장 포인트 개념과 비슷하다. OK cashback을 시작으로 실질적인 현금과 연동되며, 포인트 쌓기는 여러 방면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앱테크의 기본 프로세스는 이러하다.
‘어플 실행 -> 인증 -> 포인트 적립 -> 출금’
디지털 사이트에 꾸준히 방문하여 리워드 포인트를 발거나, 소비를 하여 쿠폰과 적립금을 모으는 것, 각종 설문조사나 이벤트, 리뷰에 참여하는 방법은 기본이다. 짧은 광고를 시청하면 주는 적립금, 걸으면 쌓이는 적립금 등 앱테크 방식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광고를 보거나 리뷰를 올리는 등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귀찮은 것이 사실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라지만, 포인트를 모아 사용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2030 세대는 왜 앱테크를 하는 걸까?
우선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현 2030 세대에게 앱테크의 접근성은 너무나 용이하다. 애쓰지 않아도, 손쉽게 주어진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일까? 2030 세대는 시간, 노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돈과 같은 물질로 등가 교환하는 데 익숙하다. 앱테크가 가져다주는 가치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나,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득을 취하는 데 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 적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저 걷기만 하는 것만으로 돈이 되다니, 노동을 하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면에서 얼핏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재화와 가치가 달라졌을 뿐 그 원리는 같다.
원래 인간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 동일한 가치의 물질을 교환하며 발전해왔다. 하지만 University of California 교수 Jonathan H. Turner는 인간의 행위는 심리적 필요에 의해 동기를 가지기 때문에, 행위의 목적이 효용 대신 보상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사과 2개와 땅콩 5개가 동일한 가치라고 치자. A는 사과 2개를 지녔고. B는 땅콩 1개를 지녔다. B가 자신의 땅콩 1개와 A의 사과 2개를 교환하자고 했을 때,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르면 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B가 땅콩 1개를 들고 오며 A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면? A는 자신의 사과 2개를 사랑스러운 친구 B의 땅콩 1개와 바꾸어줄 것이다. 즉, 행위와 마찬가지로 가치 또한 심리적 필요에 의해 동기를 지닌다.
미래학의 최고 석학으로 불리는 Rolf Jensen은 일찍이 21세기는 탈물질주의, 감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표준화된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상품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탈물질주의는 경제적인 성취와 물질적인 이득을 벗어나 향상된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경쟁과 물질주의는 한국 경제 성장을 끌어올린 중요한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졌는지는 많은 사람의 의문을 지닌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 내거나, 해내거나, 성공을 거두어야 행복하지는 않은 것처럼.
우리사회는 점차 물질과 효용성이 아닌 다양성, 행복 등 비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2030 세대는 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세대다. 앱테크는 사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을 준다. 작은 재테크로 자신의 일상을 가치 있게 꾸리는 것, 현재에 만족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좋은 방향으로 보인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이전 세대가 당연하게 달성했던 취업과 결혼, 자가 마련, 출산등 생의 주기가 어려워진 탓이 크다는 것을 배제해선 안 되겠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2030 세대가 거창하고 뚜렷한 삶의 목표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야망 없는 세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도록 노력해본 적 없는 세대, 인내력이 부족한 세대 등등.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현 2030 세대는 미래를 위해 젊음을 희생하지 않으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세대다. 생산적인 결과물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기존 세대를 넘어, 생산성이 없더라도 현재를 즐기는 가치도 높이 살 줄 아는 그들을 응원한다.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들여다본다면, 우리의 미래를 슬몃 엿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