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 여성에게 찾아오는 적색신호 - 산후우울증
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17)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서호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많은 여성이 출산 후 몇 달씩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심한 불안감을 보이거나, 불안장애의 여러 가지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산후우울증 때문이다. 출산에는 신체의 고됨에 따른 스트레스, 출산 후 정서적인 변화가 따라온다. 또한 출산이란 응당 기쁘고 축복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관점으로 인해, 우울증을 경험하더라도 표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출산 후 찾아오는 정신건강 악화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번 회차에서는 산후우울증의 원인을 짚어보고, 예방할 방법을 알아보자.
산후 여성에게 찾아오는 정신건강 적색 신호
출산을 예정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산후우울증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경험한다는 뜻이다. 산후우울증은 우울감뿐만 아니라 불안감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산후의 불안발작(agitation)이 심해질 때는 ‘현실검증력(현실감각과는 다른 의미로, 망상 등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이 저하될 정도의 불안 발작(psychotic agitation)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매우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산후 건강 위협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며 적절한 조치를 할 경우 쉬이 가라앉지만, 방치할 경우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출산과 관련된 우울증은 증상의 정도에 따라 세 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산후 우울감, 산후 우울증, 산후 정신병이 그것이다.
‘산후 우울감(Postpartum Blues)’은 가장 약한 형태의 우울증을 말한다. 약 85%에 달하는 많은 여성이 출산 후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경험한다. 대게 분만 후 2~3일 내로 시작되며, 3~5일째에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2주 이내에 증상이 호전되며 짧게는 몇 시간 정도만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증상으로는 공연히 눈물이 솟구치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는 것, 울적하고 짜증이 나고 불안을 느끼는 등 기분 변화의 진폭이 커지는 것,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것 등이 있다.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긴 하지만, 일상적 기능 수행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정도가 아니라면 산후 우울감을 의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자연소실된다. 산후 우울감은 심각한 정도가 아니더라도 증상의 호전 여부에 당사자와 가족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심각한 형태인 산후 우울증으로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감이 당사자에게 심하게 여겨질 경우, 또한 증상이 2주 이상의 지속 양상을 보일 경우엔 산후 우울증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산후 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은 산후 우울감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조금 더 늦게 발병하고, 심한 형태로 나타난다. 산모의 약 10~20%가 산후 우울증을 겪는다. 대게 산후 4주 전후로 발병하며 드물게는 출산 후 수일 이내, 혹은 수개월 후에도 발생할 수 있다. 발병 3~6개월 후면 증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치료받지 않을 경우 더욱더 심각한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산후 우울증 여성의 25% 정도는 1년 넘게 그 증상이 지속되기도 한다. 산후우울증을 방치한다면 산모 자신은 물론이고, 유아의 발달과 가족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증인 경우 약물치료 없이 상담 치료 조정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중증 이상인 경우에는 약물의 도움을 받아 치료와 회복이 필요하다.
산후 우울증이 중증 이상인 경우 극심한 형태의 산후 우울증으로서 ‘산후 정신병(Postpartum Psychosis)’이 있다. 산모의 0.1~0.2%에서 나타나며 매우 심각한 상태이므로 입원과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출산 후 급격하게는 수일부터 2~3주, 대게 3개월 이내에 발병한다. 극도의 정서불안정, 심한 좌불안석증, 분노 반응, 수면장애, 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 환청 등의 지각장애, 지남력장애(시공간, 사람에 대한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증상), 혼돈, 주의산만, 집중력 결여, 경도의 섬망(과다행동과 환각, 초조함과 떨림 등이 자주 나타나는 증상) 상태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산후 정신병은 일상생활 기능을 저해하며, 자살이나 영아 살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정신과적 응급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산후우울증은 증상이 만성적일 때, 이전에도 산후 우울증을 겪었던 경우, 우울증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수유를 하는 경우, 이에 대해 의사와 상의하여야 한다. 만성적인 정신건강 문제가 있거나 약물치료에 대한 반응이 불충분할 때, 혹은 성격상의 문제가 동반된 경우에는 정신치료를 병행하여 치료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부부치료, 가족치료, 집단정신치료 등이 시행될 수도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치료에 있어서 산모에 대한 가족의 실제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배우자는 당사자의 치료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산후우울증 원인
산후 우울증은 단일한 원인보다는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소가 서로 얽혀서 발생한다. 심리․사회적인 요소는 신체 변화와 출산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많은 여성이 사회생활, 출산 후 양육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 기간과 출산 후 관리에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또한 출산과 동시에 육아가 시작된다. 임신 전 해왔던 직장생활 및 사회생활에도 변화가 생긴다. 여성에게 이상적인 출산과 양육 형태가 형성되어 있는 사회라면 심리․사회적 요소가 덜하겠으나,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의 출산 준비는 산후 우울증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불어 자아정체성의 상실도 큰 요소가 된다.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갑상선 기능 장애,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 axis)과 세로토닌계의 상호작용, 분만 후 갑상선 호르몬이 급격한 감소를 들 수 있다.
임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필요하다. 평상시, 임신이 아닌 시기에는 난소에서 생성 및 분비되지만, 임신 중에는 태반에서 평소보다 막대한 양의 호르몬이 생성 및 분비된다. 이러한 태반이 출산과 함께 자연스럽게 적출되면,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호르몬의 변화는 뇌에 있는 신경전달 체계, 특히 기분과 감정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신경 전달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산후 우울증 예방하기
산후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여성의 불안 또한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우울증, 다른 정신질환이 그러하듯 초반에 증상을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가 들어간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있다. 산후 우울증의 증상을 공부하고 미리 예방한다면 임신 및 출산에 대해 불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그 예방법을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이행할 것>
1.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기가 잘 때는 되도록 함께 자도록 한다.
2. 영양을 고려한 균형 있는 식사를 해야 한다. 또한 카페인, 알코올, 설탕 섭취를 피한다.
3. 귀찮게 느껴지더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 적어도 2~3분 정도 집 밖으로 나가 걷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
1. 자신의 감정이나 증상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을 찾는다.
2. 자신이 무엇이든 다 하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배우자나 가족 구성원 혹은 친구들에게 의지한다. 특히 집안일, 아이 보기 등을 분담해야 한다.
3.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양육에 있어서 여성은 죄책감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본인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는 휴식을 취하며 자신을 돌보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
4. 임신 및 출산에 관하여, 당사자만큼이나 배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같은 경험을 함께해야 한다. 당사자를 지지하며,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