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어린아이 다독이기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우리는 종종 자기 안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를 마주친다. 두려운 상황을 마주했을 때, 당황스러움을 느꼈을 때 등등. 잊고 싶거나 숨기고 싶었던 어린아이가 튀어나오고 마는 것이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상황을 대처하거나 감정을 숨기지 못한 경우에 우리는 자신의 어린아이가 나와 버렸다고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내면 아이’는 이와 비슷하면서 다른 면이 있다. 조금 더 내밀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지점이 그러하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는 육아 전문가들이 모여 육아법을 코칭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2006년 방송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오은영 박사가 메인으로 등장해 문제적으로 느껴지는 ‘금쪽이(아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살핀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지만 사실은 아이의 보호자를 교정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어른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육아 코칭 프로그램이 어떻게 어른의 마음을 보듬어준다는 것일까? 한 사연에서 그러한 일면이 잘 드러난다.
10일 방송분에 3남매 중 둘째인 8살 여자아이가 등장했다. 아이는 밝은 성격에 넘치는 에너지를 가졌지만, 화가 날 때면 엄마의 이름을 소리 질러 부르고 때리기도 하는 등 돌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느끼는 불만을 과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아빠가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냐며 달래주어도 아이의 심통은 엄마만을 향했다. ‘엄마를 새로운 엄마로 바꿔줘.’, ‘착한 엄마 아냐’ 등에서 나아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아줌마’, ‘쓰레기’, ‘똥’ 같은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오은영 박사는 침착하게 아이와 엄마를 분석했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의사와 요구를 전달하기보다, 불쾌한 감정을 표출하는 부정적 소통 방식을 자주 쓴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아이는 왜 부정적 소통방식을 선택했던 것일까? 오은영 박사는 엄마의 어린 시절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엄마는 첫째 아이에게는 공감적으로 반응하지만 둘째 아이(금쪽이)에게는 공감 반응이 힘들어 보였다. 첫째 아이와는 기질이 비슷해 공감을 잘할 수 있지만, 둘째 아이에게는 애를 써야 했던 것이다. 오은영 박사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부모와 좋은 정서적 상호작용 속에서 자라야 하는데, 엄마가 그런 경험을 많이 못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막막하고 무력할 수 있어요.”
엄마는 이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금쪽이의 엄마는 사랑받은 기억이 없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면 전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아빠, 저는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힘들었어요. 동생들 혼낼 때마다 너무 무서워서 집을 나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엄마가 집을 나갈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아빠가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그렇게 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아빠가 싫고 무서웠어요. 제가 아빠를 싫고 무서워해서 아빠가 돌아가신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죄송해요.’
자녀가 3명이나 있는 엄마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아빠를 무서워했던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상처 받은 내면 아이’라고 부른다.
‘내면 아이’란 한 개인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정신의학자 John Bradshow는 우리는 상처 받은 내면 아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 아이를 외면하거나 숨기며 살아간다고 하였다. 상처 받은 내면 아이는 ‘적응된 자기(adapted self)’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적응하여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화내는 아빠가 무서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책임감 강하고 방어적인 성격의 어른이 된 것처럼.
우리는 자기 안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내면 아이는 어린 시절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가진 ‘상처 받은 내면 아이’와 놀라운 가능성과 잠재력을 품고 있는 ‘경이로운 내면 아이’로 구분되기도 한다. 자신의 상처 받은 내면 아이를 발견하고 관심을 가지며 마음 안에서 정성껏 양육한다면, 힘을 가진 내면 아이로 바뀔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자기 안에 있는 아이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의 자신도 중요한 만큼 자신의 내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3남매의 엄마는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첫째 아이’와 ‘인정을 갈구하는 둘째 아이’랑 각각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째 아이에게는 엄마에게 하고 싶을 말을 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둘째 아이에게는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는 연습을 하며, 상대에게 인정을 얻을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면 아이를 돌보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무서운 아버지를 미워했던 자신의 내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위의 두 아이에게 한 것과 같이,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독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빠가 무섭고 미웠던 것은 당연한 거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너의 책임이 아니야. 괜찮아.’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를 형성한 것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천천히 시도해보자고 한다면, 내면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