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기쁨을 광고하는 이유

2021-11-21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당산 숲 정신과, 이슬기 전문의]     
 


 
SNS를 보다 보면 자신에게 기쁜 일이 생겼다며 축하해주길 원하는 게시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원하던 물건을 구매했다는 사소한 일화부터 임신, 취업, 자격증 취득, 생일 등등. 그럴 때면 축하받을 일이 있다는 것에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약간 삐뚠 마음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SNS에 자신의 기쁨을 광고하는 이유는 뭘까?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축하받고 싶은 건가?
이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건지, 내 기분이 안 좋기 때문에 성정이 꼬인 것인지 의문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 또한 기쁜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는 걸 금세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만 즐거워하는 건 기쁨의 맛이 잘 나지 않는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기쁜 일을 전달하고, 친구의 놀라는 반응과 축하를 즐기고,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하면 기쁨이 더욱 커진다. 누구나 기쁜 일이 있으면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이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인정받고 싶어서일까?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슬픈 일이 생기면 말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결국,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적이 많다. 비참하고 부끄러운 쪽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기쁠 때는 얼른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어 마음이 간지러워진다. 우리는 왜 기쁨을 혼자 간직하기보다 타인에게 알리는 쪽을 택하는 걸까?

사진_freepik

 

이와 관련하여 기쁜 일이 생긴 상황에서 혼자 있으면 더욱 고독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포르투갈의 Minho 대학교 심리학부에서는 포르투갈 대학생 44명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혼자 있는 것이 코티졸 수치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코티졸(cortisol)은 부신피질에서 생성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일종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다. 즉 코티졸이 분비된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사는 ‘경험 샘플링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6일 동안 하루에 8번씩 무작위 시간대에 알람을 보내 설문을 하게 했다. 피실험자들은 알람을 받고, 당시의 공간 및 상황(정서적, 인지적, 동기적 구성요소 등)에 대해 설문지를 작성했다.

그 결과, 대체로 혼자 있을 때 더 높은 코티졸 수치를 보였으며, 기분이 좋을 때는 혼자 있어도 코티졸 수치가 낮았다. 특이한 점은 슬픔, 지루함, 고독,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을 자주 느끼는 성향의 참가자는 기분이 좋은 경우에도 혼자 있으면 높은 코티졸 수치를 보였다는 점이다. 작은 자극에도 고독이나 불안 등을 더 잘 느끼는 사람은 기쁜 일을 나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쁨’보다 ‘나눌 수 없음’의 공허함에 집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위 연구를 통해 생각해볼 지점은 ‘기쁨을 나누는 행위’이다. 결국 어떤 성향의 사람이라도 기쁨을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을 때 코티졸이 덜 분비된다. 이는 그저 스트레스의 여부를 넘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고독할 때 일어나는 신경내분비 반응은 우울증에 대한 취약성을 반영한다. 이를 기억한다면 상대의 기쁨에 조금 더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인터넷 게시판에 축하받기를 소망하는 사연이 올라온 적 있다.
사연자는 조실부모하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는데, 할머니 또한 고등학생 때 돌아가신 후에는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살았다. 작은 회사에 들어가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휴학을 밥 먹듯이 하며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했다.

사연자는 작은 아파트지만 전세를 얻어 이사한 날, 혼자 술을 마시면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정말 기쁘고, 자신을 키워주셨던 할머니도 하늘에서 좋아하실 테지만 외롭다고 했다. 지난한 삶을 감당하며 자기 자신을 책임지느라 축하해줄 친구도 사귀지 못한 사연자를 향해, 축하를 표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사연자는 댓글 하나하나 축하해주어 감사하다는 답글을 달았다.
 

위 일화가 잊히지 않는 이유는 사연자와 댓글을 쓴 사람들의 진심이 컴퓨터 모니터를 넘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꾸리기도 힘든 요즘은, 타인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기 힘든 시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결국 나와 타인 즉, ‘우리’가 함께하는 곳이다.

어디선가 타인의 일을 내 일처럼 기뻐하는 것을 성숙한 태도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것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