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나를 죽이는 게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 같아요.

2024-06-10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신림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사연)

사소한 일들로부터도 저는 저를 못 지키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네가 요구하는 건 정당해.'라고 하는데. 정작 상대방은 제가 싫다는 말, 불편하다는 말을 해도 돌덩이 같아요. 저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것 같고요. 그럴 때면 상대에게 화가 나야 하는데 결론은 항상 그럼에도 나를 지키지 못한 내가 더 싫은 것 같아요. 매번 나도 내 환경도 지키지 못한 내게 무기력감을 느껴요..

나를 지키려면 감정은 배제하고 짧게 용건만 말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불안해서 모든 걸 말하는 내 모습이 상대방에게 비웃음을 살 걸 알면서도, 날 더 함부로 대할 걸 알면서도, 다 말해요. 그 순간은 그냥 그 마음이, 그 상황이 그렇게라도 제발 떠나가버렸으면 해서요.

불안할 때면 확인 같은 걸 해요. 야식을 시켜서 '내가 있는 공간은 늦은 밤에 내가 돌아다녀도 안전한 곳이 맞나?'확인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김없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죠.

나를 지킬 수 없는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마음껏 비웃고 마음껏 말을 만들고 모든 죄를 내게 지워도 나는 들을 수 없는 곳으로, 그래서 그 모든 소리도, 아픈 관심들도, 나 스스로 느끼는 무력감도 내게서 잊히는 곳으로 내가 도망쳤으면 좋겠어요..

 

'뭐 그런 걸 가지고. 네가 아파서 그렇게 느끼는 거야.'

매번 의견이 다르면, 예측한 반응과 다르면 저에게 화살을 돌리던 선생님들과 상담사님들도 저에겐 흔들리는 땅 같았어요. 예전엔 위험하다고 느껴 도망쳤던 곳인데도 '저 사람이 나를 해쳐도 이제 나는 상관없어.' 자해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간 적도 있어요.. 다 제 잘못이겠죠. 나를 지키지 못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선한 사람이 나에게는 악한면을 내 보이는 것도..

너무나 연약해 보여서 차마 고치고 싶은 내 상처들 대신 선생님이 듣고 싶어 하던 버거운 내 하루들을 포장했었는데.. 그것도 제 잘못이겠죠. 설령 제 찡그린 표정 하나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선생님이셨지만, 제 감정에 매번 "당황스러웠겠어요."라는 하나의 이름만 붙여주신 선생님이셨지만, 제 상처에는 아무 말없이 침묵만을 유지한 선생님이셨지만, 아무리 아무리 그래도 결국 지레짐작 말하지 않은 것은 저이고 제가 도망친 것이니까요...

음.. 세상을 떠나는 게 자유로운 사람도 있을까요? 나 스스로 나를 죽이는 게 당장은 두려워도 결국. 이 세상에서 나를 유일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 같아요.. 몇 개월 이런 생각을 했으면 나는 나를 이렇게라도 지켜줘도 되지 않을까요..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사연 잘 읽어보았습니다. 적어주신 제목이 참 모순적이고 가슴 아픈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죽이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한 의견을 말하면, 사연자님 스스로를 죽이는 것은 절대 지키는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게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진다는 말씀은, 그만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는 한계감을 크게 경험하신 거겠지요. 상처투성이가 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너무 압도되어, 삶을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사연에는 ‘나를 지킨다’는 표현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사연자님에게 ‘지킨다’는 의미는 상당히 무겁고 아주 중요한 삶의 주제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글의 내용이 상당히 시적이고 함축적이라서 구체적인 정황은 잘 나오지는 않지만, 사연자님이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꾹 참고 삼킨 이야기들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상담과 치료도 받는 중이신 듯한데요. 솔직하게 모든 상처를 나눌 만큼의 신뢰스러운 관계는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선생님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사연자님 심정이 어떠셨을지, 어떤 마음에 그렇게 숨기셔야 했을지 궁금하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숨기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처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표현하는 일은 연약한 내가 고스란히 노출되기에, 무척 두려울 수 있는 일입니다. 사연자님이 타인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연자님이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감정을 배제한다거나, 용건만 말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으셨던 거겠지요? 기대와는 다르게 불안한 마음에 모든 걸 타인에게 다 이야기했고, 그렇게 표현한 자신을 오히려 싫어하고 탓하시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내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또는 이런 모습은 타인에게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기대합니다. 나에게 어떻게 대하거나, 어떻게 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기대함으로써 나와 타인의 반응을 대비하여 통제하고 노력합니다. 내 모습과 타인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규정함으로써, 그 범위 안에서 ‘안전하게’ 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너무 불안하고 무섭기 때문에 미리 통제합니다. 그렇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는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에 대해 미리 해둔 생각들이 깨지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받게 되고, 때로는 실망스럽고 좌절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무력감도 느끼게 됩니다.

사진_freepik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덜 느끼는 방법은 있습니다. 기대하고 예상하고 상상하는 생각 습관들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말 어렵습니다. 인간은 사실과 별도로 끊임없이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세계에서는 내 생각들이 가장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내면의 생각에 더 집중하고 힘을 실어줄수록, 내 마음을 벗어나 외부 환경에 노출되는 일은 더욱 두려워집니다. 마음 바깥의 세계가 진짜 ‘현실’ 임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무서운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러 번 남겨주신 글을 읽다 보니, 사연자님을 둘러싼 세계 역시 참 불안하고 무서운 곳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울타리를 세워도 수시로 침범하고, 마음을 엉망으로 헤집어놓을 수 있는 것처럼요. 사연자님께서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매우 깊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연자님이 죽음을 계속 떠올리는 것은, 현재의 삶이 많은 불안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마치 죽음이 대안처럼, 자유로운 영역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것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연자님이 ‘실제로’ 어떻게 느끼셨는지는 모릅니다. 사연자님과 대화 한 번도 나누지 못했으니까요. 감히 글을 통해 사연자님에 대해 추측하고 예상하며 하는 말입니다. 혹시라도 어떠한 상처라도 입는다면 뒤늦게라도 꼭 글을 남겨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냥 혼자 삼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연자님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오해할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잘 판단하여 사연자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받아들이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사연자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요.


사연자님은 정말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파괴하고 싶은 마음이 큰가요? 아니면 둘 다 있으신 걸까요. 감히 확실히 말할 수 없겠지만, 사연자님에게 현재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외부 환경과 타인이기 전에 ‘적대적인 자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연자님이 무력하고 불안하여 바들바들 떨고 있음에도, 동시에 사연자님 자신을 두고 ‘누군가가 해쳐도 상관없을, 하잘것없는 존재’로 팽개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기 보호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정작 실제로는 자기를 파괴하는 방식 이외의 선택지를 아직 모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버리는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만큼은 버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은 일시적으로 생애 초기에는 부모가 맡습니다. 이후에는 친구나 연인이 맡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연자님은 아직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군’이 되어도 버거운 일이 많은 세상인데, 사연자님은 적군이 되어 스스로를 공격하시는 과정에서 더욱 지치고 힘드실 것 같습니다.

 

만일 타인의 비난과 공격을 여러 차례 접한 경험이 있으셨다면, 이러한 공격적인 태도를 내면화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방어하는 방법을 익힐 수 없는 환경에서는 철저한 무력감, 분노, 우울 등이 내면화됩니다. 그렇더라도 언제든 우리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마냥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준으로 보호하면서 타인에게 표현해내는 것이 ‘아직’ 잘 안 될 뿐입니다. 그리고 정말 간절하게 배우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이 정말 반갑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전문가와 상담을 받고 있으시죠? 사연자님의 감정 표현에 매번 같은 이름을 붙여준 선생님에게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그리고 어떤 반응을 해주기를 원했나요? 분명히 사연자님에겐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표현해내는 일이 가로막혀있습니다. 많이 낯설거나, 두렵거나 혹은 무서워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 자체는 오롯이 사연자님이 품을 수 있는 욕구입니다. 그 욕구는 상대방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은 이를 책임질 의무는 없습니다. 상대방은 자신의 관점과 경험을 토대로 반응할 것입니다. 그 반응이 사연자님의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고, 그것은 그 사람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실망했는지 소통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보다 섬세한 다른 전문가를 만나보시는 것도 권하고 싶습니다.

 

사연자님이 원하는 모습은 아직 아닐지라도, 사연자님이 하는 노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것부터 진정한 자기 보호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자 일자 샌드의 책 <컴 클로저>는 ‘자기 보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연자님께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책 속 문장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사연자님의 삶을 포기하지 말고, 단단하게 지켜내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내가 나 자신이 되기를 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나의 내적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그럼으로써 내가 설령 나 자신과 타인의 이상에 부합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순간에도 내가 내 편을 들어주겠다고 결심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