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출근길 지하철에는 언제나 사람이 빼곡하다. 출근 시간대를 피하고자 조금 이르게 나와도 상황은 같다. 회사원이라면 피곤한 표정의 타인과 함께 몸을 부대끼며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만원 지하철을 타본 적이 있을 것이다.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면 앉는 건 바라지도 않게 된다. 그나마 사람이 덜 많은 칸에 손잡이를 잡고 설 수만 있어도 다행이다.
언젠가 지하철에 탔을 때,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일어나기만 기다리며 힘겹게 서 있었다. 이번 정차역은 어디인지 보려고 살짝 고개를 돌렸을 때, 앞에 앉은 사람이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한 아주머니가 그 자리에 앉기 위해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아주머니를 제치고 내 자리를 차지했다. 당황스럽고 화가 나기보다, 어떤 생각의 과정 없이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나이도 많으신데 양보해도 좋았을 걸 굳이 앉았어야 했나 죄책감이 일었다. 동시에 아마 양보했다면 자기 몫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며 또 자책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앉지 못한 아주머니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건방지다고 흉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핸드폰에 고개를 박은 채 몰려드는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한 번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의 연상은 실제 일어난 일에서 점점 벗어나며 비약이 일어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추측하며 의미를 부여해 버리고 만다. 물어봐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겠지’, 하고 본인이 맞다는 착각에 빠진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긴장되고 불안할 때, 걱정거리가 있을 때,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란 쉽게 말해 현실을 잘못 인식하게 하는 사고이다. 주변의 사건, 상황에 대해 그릇된 가정 및 추리를 하는 등의 체계적인 인지적 오류인 것이다. 미국의 임상 및 상담심리학자 알버트 엘리스(Albert Ellis)는 받아온 양육, 자라온 사회와 무관하게 많은 인간이 왜곡된 사고를 갖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지 왜곡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지 왜곡이 힘든 상황을 겪는 과정에서 발생할 경우, 왜곡된 사고는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강화한다. 따라서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부정적인 생각을 끌어들이며,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치 지하철이 덜컹거릴 때마다 그 방향으로 휘청이는 거처럼 자연스럽게 우울하고 불안한 상태로 이어진다.
인지 왜곡 가운데 ‘과일반화(Overgeneralization)’는 한두 번의 사건에 근거하여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내린 결론을 비논리적으로 확장해 사건과 무관한 상황에 적용하는 오류를 뜻한다. 한두 가지의 경험과 증거로 모든 사태를 해석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변화를 막고 가능성을 재단한다. 발표를 제대로 끝맺지 못한 사람이, ‘나는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걸 못해. 저번에도 발표를 잘 못 했으니까’ 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잦은 인지 왜곡을 보였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여행을 다녀온 상사가 그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팀원들에게 여행 기념 간식을 나누어주었다. 그 사람은 왜 자신에게만 간식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생각은 점점 번져나갔다.
‘일부러 나한테만 주지 않은 걸까?’
‘내가 저번에 업무 실수를 해서 앙금이 남은 걸까?’
‘그러고 보니 가끔 내 말을 무시하던데 나를 우습게 여기고 있구나.’
‘나를 직장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 티를 내는 거구나.’
‘사실 직장 사람들 모두 짜고서 나를 골탕 먹이는 게 아닐까?’
‘나는 직장생활을 하기에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그 사람은 굉장히 괴로워했다. 하지만 실상은 간식을 나누어줄 때 화장실에 갔기 때문에 챙겨주지 못한 것뿐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재단해버리는 일은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발생하는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합리적 인지가 작용하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생각이 너무 앞서 나가지 않도록 호흡에 집중하며 스스로 생각을 막는 것도 좋다.
퇴근할 때는 지친 채로 지하철을 타게 된다. 배가 고프고, 오늘도 이렇게 지나간다는 허무한 마음이 들고, 불쾌한 인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퇴근 시간 지하철이 한강을 지날 때 많은 사람이 창밖을 본다. 한강과 노을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생각을 전환하기 위함이 아닐까?
김효은 작가의 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은 지하철을 매개로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해녀, 학생, 회사원 등등. 제각각의 삶이 있지만 우리는 인생이라는 지하철을 타고 함께 시공간을 공유하며 산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부정적인 시선을 접어 보자. 나 자신에게 슬쩍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달립니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길을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나는 지하철입니다> 북 트레일러 中)
미리 앞서 고민하고 걱정하기에 세상은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고, 지하철은 너무 빠르게 달린다. 주위를 살피고 자신의 내부를 환기할 줄 알게 된다면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도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