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의혹,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그들만의 리그
심리학 렌즈 (7)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근 정치권에서는 대장동 의혹이 최대 이슈이다. 정말 지겹다. 권력자들의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일반 서민들은 허탈하고 자괴감만 든다. 오징어 게임 연재 때, ‘피와 땀으로 노력해서 이기면 성공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그 허상 속에서, 진정한 승자는 그 진흙탕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결론을 맺었었다. 우리는 진흙탕 안에서 열심히 경쟁하고 있지만, 오징어 게임 밖의 VIP들처럼 진흙탕 밖에서는 흙 한 톨 묻히지 않고 50억을 쉽게 가져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의 내 노력은?’이라는 허탈감이 든다. 나는 목숨을 걸고 오징어 게임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걸지 않고, 오십억 게임을 하고 있으니,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와 다를 게 뭐가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노력해봐. 그래 봤자 6두품이니까.’라는 소리가 환청일까? 실제일까?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일반 서민들이 참전하고 있는 게임의 규칙과 다른 그들만의 리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 아니라 점점 실제가 되어간다.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단어는 ‘공정’이다. 그런데 게임의 rule 자체가 다른 두 판이 존재를 한다면 절대로 공정할 수 없는 문제다. 게다가 한쪽 판은 적게 걸고 많이 먹는다면 더더욱 공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공정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리그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반복되고 유지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정치는 여야로 나눠서 열심히 싸운다. 그렇게 견제를 하고 있다. 서로 열심히 견제하고 물어뜯는다. 일반 서민들도 거기에 편승이 되어 여야로 나뉘어 열심히 싸운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리들은 끊이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비판이 계속되면 개선이 되어야 정상이 아닐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필자는 그렇게 서로 욕만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욕을 할 수 있다는 것의 전제는 무엇일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남을 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나 야나 똑같아 보이는데 서로 욕을 하고 있는 건 단지 양심이 없어서일까? 대장동 의혹도 여야 가리지 않고 비리가 터져 나오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서로 욕을 하고 있다. 나도 ‘똑같은 잘못’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욕이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난 아니라는 듯이 신나게들 서로 싸우고 있다.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내로남불’이다.
그런데 잘 따져보면 ‘내로남불’은 자신도 남도 둘 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다. 해석만 로맨스와 불륜으로 갈릴뿐, 본질은 둘 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이 잘못을 했을 때는 개 물어뜯듯이 물어놓고서는, 내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면 신기하게도 합당한 이유들이 나오면서 자신은 떳떳하다는 태도로 나온다. 서로 그러고 있으니, 양 쪽 다 자신은 깨끗하고 상대편은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마음껏 욕할 수 있다. 난 깨끗하니까 말이다. 이런 현상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심리학에서 근본적 귀인 오류라는 용어가 있다. 이름 그대로 인간이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저지르는 오류이다. 어떤 잘못된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이유를 찾는다. 그런데 나의 잘못과 남의 잘못에서 이유를 찾을 때, 그 기원이 서로 다르다는 게 근본적 귀인 오류이다. 사람들이 내가 잘못을 했을 때는 상황 귀인, 즉 상황에서 이유를 찾는데 반해, 남이 잘못했을 때에는 성향 귀인, 즉 그 사람에게서 이유를 찾는다는 것이다. 내가 불륜을 저질렀을 때는 배우자와의 관계, 불륜 상대방과의 관계 등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유로 찾는다. 그래서 결론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잘못으로 마음이 떠났고, 불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의 애틋함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결론 내린다. 즉, 로맨스인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불륜을 보게 되면 역시 그런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하며 혀를 찬다. 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다른 사람은 그냥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근본적 귀인 오류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이러한 현상은 우리 스스로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똑같이 잘못을 저질러도 남 욕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하나도 바뀌지 않게 된다. 난 항상 정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며, 남을 욕했던 그 행동을 자신이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의 잘못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사람은 왜 이렇게 너무나도 쉽게 근본적 귀인 오류를 일으키게 되는 것일까? 일단 내가 잘못했을 때에는 내가 그 상황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유를 찾을만한 상황들이 너무나 많이 보이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잘 관찰하지 못한다. 내 행동은 보이지 않고 상황만 보이게 되니 상황 귀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잘못을 내 성향으로 귀인을 하면 죄책감을 건들면서 불편한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원인을 찾으면 죄책감을 건드리지 않고 상황을 해석할 수 있기에 심리적으로도 훨씬 편하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에는 내가 그 상황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는 이유가 될 만한 상황을 알기는 어렵다. 그냥 쉽게 ‘원래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로 결론을 내려버리는 게 쉽고 빠르다. 사람은 그렇게 근본적 귀인 오류를 저지르며 나는 착한 사람, 남은 나쁜 사람의 이분법적인 세상 속에서 편하게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욕과 비판이 난무하지만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상황이라는 면죄부가 항상 주어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람들이 이 부분을 깨달아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독자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독자 분들은 자신이 권력을 갖게 되고 큰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지금의 정치인들과 다른 선택들을 할 수 있겠는가? 확신하는가? 필자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라고 그들과 다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왜 특별한가? 이런 질문들에 확신을 갖고 답하기는 어려운 거 같다. 내가 그 상황을 겪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확신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저지른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이들의 행동은 잘못되었고 처벌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개인의 잘잘못 보다는 시스템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필자는 나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사회가 바뀔 수 있는 변곡점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을 인정하면 더 이상 일탈을 저지르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 이상 사람을 보지 않고 시스템을 볼 수 있게 된다. 지금껏 봐오지 않았나? 한 사람, 한 사람 처벌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절대 바뀌지 않음을. 한 사람의 일탈로 문제를 해석해버리면 그 사람을 처벌하고 우리 사회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면 또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면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만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회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나도 그럴 수 있고, 누구나 그 자리에 가면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문제의 초점은 시스템으로 바뀌게 된다. 누구 하나를 희생양 삼아 분풀이하고 욕하고 거기서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행위는 지금껏 보아왔듯이 사회 변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장동 사건이 정말 일부 개인의 일탈일까? 아니다. 분명 비슷한 일들은 지천에 널려있을 확률이 높다.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수면에 드러난 대장동 관련 인물들을 욕하는 일에만 관심 가질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내에서 얼마나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시스템을 마련해야 그러한 일들이 재발되지 않을지에 대한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또 대장동과 관련해서 불거진 몇 명만 처벌되고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 우려된다. 그리고 처벌받은 몇 명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시간이 지나 여론이 잠잠해지면 또 법꾸라지처럼 빠져나올 것이다. 지금껏 대한민국 사회가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이다. 정말 사회가 바뀌기를 바란다면 한 명 한 명 따위에 대한 관심보다는 전체 시스템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 가면 나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인식과 인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을 손가락질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남을 쉽게 욕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갖춘 사회라는 말이 될 테니까. 그제야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보이게 될 것이다.
본 글은 쿠키건강TV 마인드온 - 정신과의사 이일준의 심리학 렌즈 37회 ‘남 탓하는 심리’ 방송분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