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본 '오징어 게임'
심리학 렌즈 (5)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글에는 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 추석 명절의 단연 화제작이었던 거 같다. 단톡방에서 너도 나도 재미있었다는 후기들이 올라왔으니 말이다. 이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많은 인기와 화제를 끌고 있는 작품이 되었다. 필자도 순식간에 9편을 몰아봤을 정도로 재미있게 봤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 속 선혈 낭자한 게임이 현실 같다는 씁쓸함도 함께 느꼈다.
게임에 참석한 인물들은 현실에서 loser들이다. 주인공인 기훈은 회사에서 구조조정 당하고 사업도 망해 모친의 등골을 빨아먹고 살고 있다. 마지막 희망으로 도박에 빠져 한 탕을 노리지만 결국 빚만 늘어나 사채업자에 쫓기는 신세이다. 어머니가 당뇨에 걸려 발을 절단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돈이 없어서 수술도 못 받고 있다.
기훈의 동네 친구인 상우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수재이지만 금융가에서 투자를 잘못하여 어마어마한 빚을 져 채권자의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탈북자인 새벽은 탈북과정에서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다시 북으로 송환되었다. 어머니를 다시 찾기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건넸지만 브로커는 돈만 받고 내빼버렸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다시 돈을 구해서 브로커에게 기대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현실에서 희망이 없다. 아무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져가고 있다. 이렇게 이들은 목숨을 걸고 상금을 쟁취해야만 하는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오징어 게임의 진행자인 프론트맨은 오징어 게임 안에서 유독 평등을 강조한다. 게임 안에서 공정이라는 규칙을 깬 참가자를 공개 처형할 정도로 공정과 평등에 집착한다. 미리 게임 정보를 빼돌려 공정함이라는 규칙을 깬 참가자를 처형할 때 프론트맨이 했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이 무너진 것 같은 현실을 봤을 때, 오징어 게임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인 것 같다. 그렇게 그들은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속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게임에 임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해볼 수 없는 절망인 이들에게 오징어 게임은 공정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도 오징어 게임과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적어도 교과서 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는 공정하게 기회를 주고, 노력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다. 필자도 그렇게 교육을 받고, 그런 줄만 알고 그냥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다. 과거의 내가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로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던 게임이 끝나고 앞을 보니, 내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고 있는 게임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조부모, 부모가 이루어놓은 부를 따라갈 수가 없다. 결국 부자의 아들, 딸은 부자가 되고, 남은 파이 조각으로 피 터지게 싸우는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보지 못한 채 운동장 안에서의 달리기에만 온 힘을 썼던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서도 참가자들은 ‘공정한 기회’라는 말만 믿고, 서로 참가자들을 이기는 데에만 몰두되어 있다. 심지어 드라마를 시청하는 필자도 주인공이 이기는 데에만 온 관심이 기울어지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게임 관리자는 평등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들은 철저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상급자가 말하기 전에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평등한 위계질서 하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위에 존재하는, 돈과 권력을 가진 VIP들이 불편함 없이 죽고 죽이는 게임을 즐길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평등을 그렇게도 강조한 프론트맨이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교과서 상으로는 평등과 공정을 강조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한 현실과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것은 필자의 망상일 뿐일까?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사람들을 극한의 경쟁에 내몰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로 호의호식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최순실 사태 때 정유라가 했던 유명한 말이 생각이 난다. “부모를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고.” 과연 어느 누가 노력으로 부모를 선택해서 만났을까? 그리고 그 부모들의 빈부 격차도 오로지 노력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노력과 상관없는 부의 분배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음에도 가난은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강변일까? 우리가 이렇게 이전투구하면서 서로 경쟁하며 살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진흙탕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모두가 눈앞의 경쟁상대를 이기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어느 누군가는 그것을 지켜보며 유희를 즐기고 있는 그림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입 안 가득 씁쓸함을 남긴다. 우리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채 눈앞의 경쟁상대에만 온 정신이 팔려있다는 사실은 오징어 게임 안의 한 장치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여러분은 참가자들 숙소 벽면에 그들이 할 게임들이 그림으로 다 묘사가 되어 있었다는 점을 눈치를 채셨는가? 필자도 드라마를 보는 와중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리고 참가자들 중에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셨을 거다. 우리는 그만큼 전체 시스템보다는 눈앞의 경쟁상대에만 몰두가 된 채 살아가고 있다.
피와 땀으로 노력해서 이기면 성공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그 허상 속에서, 진정한 승자는 그 진흙탕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본 글은 쿠키건강TV 마인드온 - 정신과의사 이일준의 심리학 렌즈 38회 ‘정신과 의사가 본 오징어 게임’ 방송분의 일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