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울어도 울어도 답답한 고등학생입니다
[정신의학신문 : 김빛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요즘 개학을 하면서 학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사람들 많은 곳 집 아닌 안정적이지 못한 장소에 오랫동안 있으니 남들보다 빠르게 지치고 과제 스트레스와 남들보다 뒤처지는 성적 고등학교 시스템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입학 이후 1학기가 지났지만 즐거웠던 적은 없고 하루하루 버티며 지냈습니다
제가 주로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사람 말에 상처 받을 때, 위의 학업 스트레스 다수, 공부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엄마 흰머리를 봤을 때, 등 사소 한 일에도 대성통곡하듯이 울어서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고요(영화 볼 때 눈물 흘리지는 않습니다) 참아보려 해도 쉽게 참아지지 않고 하루 종일 울기도 하고요
스트레스인지 피곤해서인지 가위도 종종 심하게 눌리고 오늘은 학교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게 그대로 심한 가위에 눌렸습니다 괴로웠어요
많이 엉엉 울며 안에 있는 감정을 내보내 보지만 울어도 울어도 답답한 느낌이 가슴에 남아 있어요 밖에서는 혼자 구석에서 진정시키거나 조용히 또르르 흘리고는 하는데 이유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별로 울 일도 아닌데 과하게 나오는 울음 고민입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빛나래입니다.
사연자님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신 것 같네요.
중학교 졸업 후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만 해도 버거울 텐데, 새로운 대인관계나 다가올 입시 문제와 성적관리까지 얼마나 힘이 드실까요.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불투명한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도 될 테고요.
영화를 볼 때는 오히려 남의 일 같고 감정이입이 안 되다 보니까 눈물이 나지는 않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 마음이 많이 답답한 상태에서는 남의 상황에 공감하기 어려울 때도 있으니까요.
과하게 나오는 울음이 고민이라 하셨는데, 일단은 본인 마음이 많이 힘들면서도 울음 자체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연자님의 질문으로 오랜만에 책도 뒤적여보고 위키피디아도 찾아본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네요.
울음의 빈도를 살펴보니, 여성은 연평균 30-64번, 남성은 연평균 6-17번 운다고 해요. 울 때 남성은 2-4분, 여성은 6분 정도 운대요. 흐느껴 우는 건 여성은 65%, 남성은 6%라 하고, 청소년은 성별 간 차이가 없었다네요. (출처: Crying - Wikipedia)
울음은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역할을 해요.
아마 지금은 정리가 잘 안 되겠지만, 학생으로서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 청소년기에 당연할 수밖에 없는 대인관계에서의 고민에다 뭔가 잘 안될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까지 느끼는지도 모르겠고,, 상당히 복잡한 마음인 것 같아요. 스스로 감당이 되지 않으면서 수면장애도 겹치고 충분히 쉬어지지 않으니까 다음날도 힘든 거 같아요.
하루하루 버티면서 지낸다고 하셨는데 한국에서 고등학교 때만큼 내 마음도 정리가 안 되는 상태에서, 내가 이걸 왜 하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공부하고 성적관리와 시험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 시기가 또 있을까요.
사연자님의 울음은, 아마도 다른 방법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낮추려는 생리적 반응이자 본능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연을 읽으면서, 같은 고민을 가진 친구와 대화할 여유가 되시는지, 혼자서 무력감에 우는 것뿐 아니라 위로를 해주는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울기도 하시는지 궁금했어요. 울음이라는 것도 서로 이야기를 듣고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공감하고, 그런 유대감 속에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못 되시다 보니 계속 답답한 느낌이 남아있으신 게 아닌가 싶었어요.
대성통곡했다고 엄마한테 혼나실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사연자님은 우선 마음을 표현하고 나눌 만한 기회, 그럴 사람과 시간이 필요하신 거고, 감정이 환기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본능적인 자기 위로 방법으로 울음이 나오는 거 같거든요. 혹시 어머님도 이런 부분을 이해하실 수 있다면 사연자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고민을 인정해주시는 방향으로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울음이 나올 때 누가 나를 안아주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성인인 저도 똑같거든요. 울음이 나올 일 투성이인데 옆에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혼자서만 울다가 지치고 답답할 수밖에 없는 거죠.
사연자님의 상황에서 그런 주제의 스트레스는 아주 일반적인 거예요. 우선 울음 자체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 감당이 안 되고 버거운 것들이 무엇인지를,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 둘러보시고 그 사람들과 나누어 보시고 도움을 청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아무런 방법도 안 통하는 것 같고 무력감이 심할 땐 진료를 받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힘든 걸 말로 표현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경험이 중요해요. 청소년이시라는 특성상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느낌에 위안이 될 가능성이 높고요. 생각해보면, 남은 고등학생 기간과 그 이후까지도 감정의 조절, 불안과 스트레스의 관리 또한 익혀야 할 중요한 기술 중에 하나거든요. 아직 해본 적이 별로 없으시다면 어느 정도 연습은 필요해요. 내 마음을 이해 못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잘 안되면 또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 할 수도 있어요.
우선 옆의 친구나 엄마와 나누어 보는 한걸음부터 용기를 내 보시면 좋겠어요. 정말로 옆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면, 상담일을 하는 사람, 학교의 상담선생님이나 저와 같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찾으셔도 좋아요.
멀리서 그 한걸음을 응원할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