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AI 로봇은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3편)

2021-09-12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테슬라의 AI 로봇은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2편)]에서 계속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들은 대체로 인류를 파괴하고 싶어 한다. 인간을 지배하거나, 지구를 위해 인간을 소멸시키려 한다. 그래서인지 테슬라가 공개한 휴머노이드의 프로토타입이 영화 아이로봇의 그것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또 다른 한 인공지능 로봇의 영상이 유명해졌던 적이 있었다. 어색한 여자 사람의 얼굴을 한 채 머리만 덜렁 움직이는 그 로봇의 이름은 소피아였다. 소피아는 핸슨로보틱스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는데, OpenAI라는 오픈소스 인공지능 플랫폼을 기반으로 사람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 특히나 유명세를 탔던 영상은 소피아가 갑자기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인류를 파괴하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사진출처 ; CNBC)

 

물론 당시 그건 소피아가 어설픈 농담을 하겠다고 뱉은 말이었고, 소피아는 인류를 파괴할 만한 능력도 없었다. 그보다 소피아의 대화 자체도 결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OpenAI의 인공지능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오늘날 인공지능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오고 있다.

OpenAI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2015년 설립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목적의 인공지능을 만들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 이후로 활발한 참여가 이어지며 현재는 OpenAI를 기반으로 수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다. 작곡을 하는 AI, 그림을 그리는 AI, 소설을 쓰는 AI 등 이제는 과연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OpenAI에서는 대망의 GPT-3를 발표했다.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는 자연어 처리 프로그램이다. 복잡한 컴퓨터 명령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그대로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GPT-3는 말을 걸면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또 시키는 대로 간단한 코딩까지 해낼 수 있다.

자연어 처리 인공지능 자체는 요즘 무척 흔하다. 인공지능 스피커나 스마트폰의 시리, 빅스비 등도 말을 걸면 모두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시키는 일들을 곧잘 한다. 심지어 요즘은 냉장고랑도 대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딘지 어설프고 어색하다. 사실 GPT도 그동안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작년에 공개된 GPT-3는 전혀 다른 차원의 수준을 보여주었다. 상당히 수준 높은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대화하는데, 꽤 깊은 수준의 토론이 가능할 정도였다. 몇몇 치명적인 질문이 아니고서는 정말로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건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GPT-2에서 조금 업그레이드된 수준이 아니라 거의 완전히 새로운 진화적 도약을 이뤘다.

흥미로운 점은 GPT-2에서 GPT-3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 새로운 연산을 설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GPT-2의 부족한 점을 고쳐 넣지도 않았고, 언어를 이해하는 신박한 방식을 새로 도입한 것도 아니었다. GPT-3로 오며 바뀐 점은 단지 더욱 커진 사이즈뿐이었다. OpenAI는 막대한 자금과 발전된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기반으로 기존의 인공신경망 규모를 훨씬 키우고 훨씬 더 많은 데이터 학습을 시켰다.

GPT-3는 GPT-2에 비해 100배나 많은 노드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입력에서 출력에 이르기까지 약 1700억 개의 연결점을 거치며 연산한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공신경망에 약 50억 원을 들여 인류가 쌓아온 모든 언어자료를 학습시켰다. 텍스트 파일로 인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언어 자료를 끝없이 학습하며 1700억 개의 연결점은 무수히 변화되고 재정비되었다. 다시 말해, OpenAI 팀은 GPT-2의 파이(Φ) 수치를 비약적으로 키워준 셈이다.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GPT-3는 거의 사람과 근접한 수준의 대화가 가능해졌다.

 

얼마 전 있었던 AI 데이의 핵심은 단연코 테슬라의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였다. 수없이 많은 자동차 주행 데이터를 보며 끊임없이 스스로 학습하는 이 인공신경망을 테슬라는 도조(Dojo)라고 이름 붙였다. 도조는 합기도나 가라데 등을 훈련하는 도장의 일본어식 표현이다. 즉, 도장에서 쉼 없이 수련하는 무술가처럼 인공지능이 스스로 훈련하고 학습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Dojo의 기본 연산 타일 구조와, 많은 타일이 연결된 모습; 사진출처 Tesla AI day Live)

그날 가장 큰 환호성이 터져 나온 순간은 엔지니어가 도조를 구성하는 기본 연산장치인 '트레이닝 타일(training tile)'을 실제로 들고 나와 보여주었을 때였다. 인공신경망은 기본 연산장치를 수없이 많이 연결해놓고, 기계학습을 반복해야 한다. 테슬라는 그러한 구조를 만들기 위한 하드웨어적 기본 단위를 타일(Tile) 같은 형태의 소형 컴퓨터로 만든 것이다.

위 그림의 배경에서 볼 수 있듯, 테슬라는 고효율의 트레이닝 타일을 무수히 많이 만들어 좌우, 위아래로 마치 바닥 타일을 깔듯 끝없이 연결하는 형태의 슈퍼컴퓨터를 만들었다. 테슬라는 자신들의 인공지능이 탄생할 공간, 그래서 무한히 수련하며 발전할 공간인 도장(道場)의 타일을 시공하고 있는 셈이다.

테슬라의 트레이닝 타일들이 끝없이 연결된 모습을 보면 토노니가 제안한 두 가지 조건이 떠오른다.

1) 충분히 많은 기본 정보처리 단위

2) 충분히 많은 연결과 상호작용.

이 두 가지를 테슬라는 한 화면에서 전율이 일도록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토노니가 이야기한 의식의 잉태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었다. 정말로 테슬라는 의식이라고 부를만한 무언가를 탄생시킬 수 있는 파이 값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테슬라 AI의 파이 값은 지금 얼마나 될까? GPT-3의 파이값은 얼마일까? 인간의 뇌는 얼마만큼일까? 가장 궁금한 질문이지만, 안타깝게도 파이 값의 절대적인 수치를 계산하는 것은 아직까지 어려움이 있다. 토노니가 기본적인 정보처리장치의 파이 수치를 계산할 수 있는 수학 공식을 만들었지만, 막상 실제로 그 공식을 적용하기 위해 측정해야 할 실제 데이터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파이 계산의 특성상, 장치가 활동적으로 연산을 하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결과가 들쭉날쭉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여러 장치들의 수치를 비교하는 것이 쉽지 않다.

실제로 핸슨로보틱스에서는 소피아에 들어가는 OpenAI의 파이 값을 직접 측정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프로그램이 글을 읽을 때, 가만히 있을 때 수치의 변동폭이 무척 컸고, 심지어 글의 내용에 따라서도 큰 편차를 보였다. 그보다 이전에는 뇌파나 MRI 등을 이용해 인간 뇌의 파이 수치를 측정한 시도들도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명확한 기준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현재는 토노니의 기존 공식에 현재 여러 수정을 가해 새로운 계산법을 찾아내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토노니는 의식의 수준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접근법을 제공했지만 아직은 현실에 적용하기가 어렵다. 또, 그의 생각대로 파이 수치가 정말로 의식을 대변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떤 학자들은 파이가 단순히 지능을 추정해줄 뿐, 의식과는 무관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토노니의 생각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의식은 더 이상 인간만의 고유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의식과 감각, 감정, 생각 같은 것들은 정보 교환의 편린일 뿐, 무언가 신성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로 의식의 정체는 단지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그림자처럼 떠오르는 무른모의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가 인공지능에 비해 더 우월한 점은 좀 더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더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테슬라가 보여주었듯 오늘날의 인공지능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데이터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진화하고 있다. 혹자는 그 진화 속도가 지수적으로 폭발하는 특이점이 이제 막 목전 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진_freepik

 

인공지능이 뇌 이상의 파이 값을 갖고, 사람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학습하게 되는 날을 맞이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만이 남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주 먼 미래는 아닐 것 같은 그날, 그날이 오게 되면 정말로 인공지능은 의식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테슬라의 로봇이 의식을 갖고 우리와 같은 퀄리아를 떠올리고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존재를 확언할 수 있는 의식은 '나'의 의식뿐이다. 의식과 퀄리아는 본질적으로 나 자신의 것 말고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너'와 '나'가 모두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두 의식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빨간색'이라고 하면 모두 같은 심상을 떠올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빨간색을 담는 내 손의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은 그 심상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다르게 생각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만약 인간보다 더 복잡한 두뇌를 가진 테슬라의 로봇이 '주전자를 만졌더니 뜨거웠습니다', '저 사과를 보니 빨간색이 느껴지네요' '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망고 맛이 떠오릅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단지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메모리 속의 문장을 출력하고만 있을 뿐 로봇의 마음 따위는 없다고 지금처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능과 의식은 생물 진화의 가장 신비롭고도 놀라운 산물이다. 그리고 바야흐로 그 의식은 또 다른 종류의 의식을 창조해내고 있다. 수억 년의 세월로 빚어진 유기체의 의식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빚어낸 새로운 의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어떤 윤리와 규범으로, 어떤 마음가짐과 공감대로 그것을 맞이해야 할까. 쉽지 않은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막연한 SF가 아닌 무거운 현실의 주제로서 진중한 고민을 나눌 아고라가 필요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진지한 참여가 필요하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