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대화를 원활하게 하는 방법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나라에서 가족의 대화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일과 공부에 시간을 많이 쓰느라 함께 있는 시간이 없기도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대화가 풍부해졌을까요? 시간만이 문제였다면 좋은 기회였겠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돈만 잘 벌어오면, 밥만 잘 차려주면,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에겐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가 학교나 사회에서도 대화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한다면 경제적으로 성공하더라도 부모가 되었을 때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담자가 어린 학생이든 중년의 교수님이든 가족과 감정을 교류하는 대화의 경험이 있는지, 지금 가까운 사람들과는 어떤지 꼭 확인하게 됩니다.
좋은 대화란 서로를 잘 알아가고 감정적 만족감을 주는 대화입니다. 가족이라도 그동안 서먹하게 지냈다면 갑자기 깊이 묵혀둔 감정을 나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서로가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오래된 연인이라면 비밀스러운 대화도 쉽게 할 수 있지만 이제 막 알아가는 상대에게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꺼내려는 주제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지 예상하면 도움이 됩니다.
여윳돈이 생겨 자녀에게 사교육을 좀 더 시켜줄지 문득 생각하게 된 아버지를 떠올려봅시다. 평소에 학교 공부의 어려움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눠온 사이라면 “이번 시험은 어땠어?”라는 아버지의 질문에 거리낌 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공부에 대한 압박감만 받았다거나 아니면 아예 대화가 없는 상태였다면 이 질문에 예민해질 것입니다. 심지어 다른 주제로는 가족끼리 즐겁게 대화하지만 공부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편하게 대화하지 못했던 사이라면 이 질문이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상대를 도와주려 꺼낸 질문이라도 말입니다.
가볍고 긍정적인 부분부터 시작해봅시다. 위와 같은 경우라면 가벼운 자랑으로 시작할 수 있겠네요. “내 일이 잘 되어 여윳돈이 생겼다. 가족을 위해 어떻게 쓸지 고민이다. 그중에 네 공부에 도움을 주는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최근에 시험을 봤다는 얘길 엄마한테 들었다. 평소에 네가 학교에서 어떤지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혹시 공부에 더 필요한 것은 없니?” 정도로 대화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렇게 내 생각과 느낌의 과정을 풀어놓으면 오해도 줄일 수 있고, 상대가 느끼는 압박감도 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소소한 이야기들로 먼저 친해진 후에 더 복잡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에 대한 감상, 좋아하는 음식, 학교나 직장에서 있었던 가벼운 이야기들로 시작합니다. 자녀의 학교 얘기에 ‘나 때는’이라며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한다면 가볍겠지만, 이것을 통해 “그러니 행복한 줄 알고 참고 공부해서 성적 좀 올려라”와 같이 결론을 미리 내고 이야기한다면 상대는 귀를 닫을 것입니다. 자녀도 독립된 사람이며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식으로 임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가벼운 도움을 요청한 후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도 좋은 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상대의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움을 주는 상황이든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든 당연한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 인터넷 강의가 네게 도움이 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니?”, “네가 엄마 생일에 갈 음식점을 검색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해줄 수 있니?”라고 물어보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됩니다.
가벼운 대화부터 서로 돕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감정표현도 조금씩 늘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잘 알고 정확히 표현하는 연습이 가능합니다. 자녀에게 맛집을 검색해달라고 요청했다면 어떤 종류의 맛, 가격, 분위기를 원하는지 생각하고 표현해봅시다. 왜 매콤한 것이 먹고 싶어 졌는지 과정도 설명해봅시다.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결정을 하고 실행해봅시다. 맛이 예상과 달랐다거나 분위기는 생각보다 별로였는데 저렴해서 좋았다든지 의견도 나눠볼 수 있습니다. 대신 상대를 기운 빠지게 만드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발주처나 직장상사에게 예의를 지키듯 가족에게도 삼가야 합니다. 가족은 소중하니까요.
자녀의 나이에 따라 대화의 수준이 달라지지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상대가 알아듣기 쉽게 나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상대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나와 다른 존재로서 대해야 수평적인 대화가 가능합니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인정해주고, 미안함과 고마움 등의 감정을 표현해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거나 거절할 때 단호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말하도록 노력합니다. 이런 경험은 원만한 사회생활과 리더십에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본 칼럼은 부산은행 사외보 2021년 7월호와 부산광역시 교육청 소식지 <부산교육> 가을호에 ‘자녀와 대화를 원활하게 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