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강박증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2021-08-24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강박증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작은 실험 하나를 해보자. 간단하다. 눈을 감고 핑크색 코끼리를 떠올려보는 거다. 본 적이 없다고? 그럼, 그냥 코끼리의 모습에 핑크색을 덧씌워보자. 10 초간 코끼리의 이미지를 충분히 떠올렸으면, 이번에는 핑크빛 코끼리의 모습을 전혀 떠올리지 않도록 해보자. 어떤가? 분명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핑크빛 코끼리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그리고 자주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마음에서 빚어내는 생각과 이미지는 이를 없애려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는 역설을 지닌다. 불편한 것을 억누르려고 들면, 불편함은 몸집이 더욱 커진다. 이런 현상은 강박증에서 나타나는 고통과 그 모습이 유사하다. 

 

사진_freepik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강박 : 강박증이란?

강박증(강박장애, Obsessive-Compulsive Disorder)을 가진 이들은 늘 고통스럽다. 그들은 머리 안에서 만들어진 생각들의 무게에 깔려 신음한다. 강박관념의 유형은 꽤나 다양하다. 더러운, 혹은 더럽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접촉한 후 ‘당장 씻어내야’ 사그라지는 오염에 대한 강박이 있는가 하면, 흐트러진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정리 정돈에 대한 강박도 있다. 외출한 후 가스레인지는 끄고 나왔는지, 현관문은 잘 잠그고 왔는지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외출 후에도 내내 마음이 찜찜한 확인에 대한 강박도 있다. 떠오르는 생각의 형태와 내용은 유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강박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불안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강박증은 심한 불안과 긴장이 초래되는 정신질환이다. 그런 연유로 2013년 정신의학 진단 분류체계가 개정되기 전까지 강박증은 불안장애의 범주에 속해있기도 했다. 

강박증의 증상은 크게 1) 강박사고(obsession)와 2) 강박행동(compulsion)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강박사고는 불현듯 떠오른 후 도저히 머리를 떠나지 않는 불편한 생각이다. 불편한 생각으로 인한 불안이 겹치면서 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어떤 행동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강박행동이다.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이를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특정 행동 패턴이 이루어지고, 결국에는 습관화(habituation)된다. 예를 들어, 외출 후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고 나온 건 아닌지, 혹은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온 것은 아닌지 같은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면, 즉각 집으로 뛰어가 몇 차례고 확인해야만 안심이 된다.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이 확인을 통해 가라앉게 되면, 이 상황이 반복되면서 점차 강박사고 이후의 특정 행동이 조건화(conditioning)되는 것이다. 혹은, 화장실 문 손잡이를 만지거나, 다른 이와 악수를 한 후 더러운 세균이 손에 있다는 생각은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비누로 수십 번 문지르게 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의아해진다. 사람들의 눈엔 딱히 지저분해 보이지도 않는 곳에 접촉했다고 비누로 수십 번 씻어내는 행동이 비웃음을 사기 마련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전직 농구선수 출신 예능인의 ‘각 잡힌’ 집 정리가 웃음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너무 유난스럽다고, 오버한다며 그들을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

강박행동이 눈에 띄는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속으로 기도문을 외거나, 속으로 7까지 숫자를 세는 행동을 7번 반복해야만 마음이 가라앉는, 다소 미묘한 수준의 강박행동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강박사고로 인한 불안과 이어지는 강박행동은 삶을 제약한다. 심한 경우는 하루 중 대부분을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내려는 몸부림으로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도 강박증을 앓는 이들의 불안으로 곪은 속내는 잘 알지 못한다. 

 

강박 관념(강박)과 강박증은 구분되어야

강박증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강박관념과 강박증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언급했던 대로, 강박증은 불안을 일으키는 강박사고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강박행동이 주된 증상이다. 두 증상으로 인해 일상생활, 대인관계, 사회생활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반면, 강박관념은 말 그대로 긴장이나 압박을 주어 어떠한 행동을 유발케 하는 생각이다. 강박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생각이나 사고에 사로잡혀 심하게 압박을 느낌’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물론 둘 사이의 완전한 구분은 힘들지도 모르겠다. 또, 강박 관념이 심한 불안을 동반하고, 특정 행동이 조건화되어 강박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강박관념과 강박증은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위치해 있으며, 강박관념은 건강한 정상의 범주 내에 있다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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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강박관념은 누구에게나 있다. 불현듯 불편한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1978년 브리튼을 비롯한 몇 명의 연구자들이 124명의 정신적으로 건강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정신 경험에 대해 연구를 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80%에 이르는 대학생들이 강박증 환자에게서나 볼 법한 수준의 생각이나 이미지를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그 강박사고의 내용은, 앞에서 언급한 불결함에 대한 불쾌감이나 다리미 스위치에 대한 불안과 같은 흔한 종류의 생각들만이 아닌, 이유 없이 타인을 눈앞의 과도로 찌르거나 높은 곳에서 밀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 자신이나 가까운 이에게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들처럼 현 상황에 적절치 않은 끔찍한 생각들이었다. 다만, 정상적 강박관념은 큰 의미를 두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 또한 정상적 인간을 정의하며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치료받아야 할 강박인지에 대해 스스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삶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강박관념이라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흘려보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 그만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 강박증의 치료 방법

뇌 과학의 발전으로, 강박증을 비롯한 여러 정신질환에서의 신경생물학적 원리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강박증은 다른 여타 질환들과 비교하여 뇌의 특정 회로를 통해 증상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이 비교적 잘 규명되어 있으며, 이를 치료하는 약물의 효과 또한 잘 입증되어 있다. 주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제재가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투약 이후 강박 증상을 일으키는 뇌 회로의 활성화가 줄어듦이 많은 연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강박 증상으로 인한 불안, 삶의 제약으로 인한 이차적 우울증 등에는 적절한 양과 기간의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다.  

약물적 치료 못지않게 비약물적 치료 또한 효과적이다. 그중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분류한 뒤, 강박사고에 반응하는 빈도와 시간을 체계적으로 줄여나가는 직면 및 반응 방지(Exposure & Response Prevention)가 큰 효과를 보인다. 예를 들면, 정리 정돈에 대한 강박사고(symmetry obsession)를 가진 이에게 흐트러진 물건들을 보여준 후(직면), 현 상태의 불안 양상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게 한다. 그 후 이에 관련된 강박행동(정리 정돈과 같은)을 하지 않고 견디도록 돕는 것(반응 방지)이다. 대개 강박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점차 증가하여, 끝내는 끔찍한 결과를 낳으리라 예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강박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불안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감소하며, 끝내는 처음의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불안장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불안을 ‘0’으로 만드는 약물이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차선책은 불안에 대한 내성, 즉 ‘견디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강박행동을 하지 않게 되면서 느끼는 불안과 초조함이 온몸을 휘감게 되지만, 이를 견디는 시간을 10분 - 20분 - 30분으로 점차 증가시켜나간다. 견디는 시간 중에는 이를 꽉 깨물고 억지로 한 자리에서 견디기보다 자신이 하던 일에 몰입해 계속해나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특정 행동으로 주의 전환을 하려 한다면, 또 다른 강박행동이 생겨날 수도 있으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불안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개념이 어색하겠지만, 반복만이 습관으로 정착될 수 있다. 

 

어떤 강박증에서는 강박행동보다 왜곡된 강박사고와 그에 따른 심한 불안, 초조감이 더욱 고통스럽다. 이럴 경우 직면 및 반응 방지 기법 외에도 강박 사고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와 그릇된 책임감, 왜곡된 인지를 교정하는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비약물적 치료 또한 몇몇 연구에서는 약물치료와 동등한 효과를 보였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치료 전략을 잘 알고, 적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