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노동의 의미 – 운명과 숙명을 제어할 수 있는 지혜 : 송기영의 ‘돈의 맛’
황인환의 [시(詩)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23)
[정신의학신문 : 여의도 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사는 게 너무 팍팍하고 힘들수록 경제 문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아집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가장 직접적으로 삶의 영역 전반에 영향을 끼칩니다. 돈이 없으면 선뜻 어딜 갈 수도 없고 사람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행동반경이 위축되고 시야도 좁아지며 생각의 폭도 매우 작아집니다.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고 출구가 보이지 않으며 해결책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큰돈 때문만은 아닙니다. 적은 돈 몇 푼에도 절망은 찾아옵니다.
최근에 읽은 시 중에 아주 재미있는 시가 있습니다. 너무 기발하고 위트 넘치는 시라 미소를 머금고 읽다 보면 점점 얼굴이 굳어지다가 시집을 덮고 사색에 잠길 즈음이면 눈물이 핑 돕니다. 시어 속에 슬픈 웃음을 담아내는 시인 송기영의 신작 시집 『써칭 포 캔디맨』에 수록된 ‘돈의 맛’이라는 시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캔디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되어가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설탕도 아닌 사탕은 점점 녹아내립니다. 하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캔디맨 역시 녹아 없어질지언정 탐욕스러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창고에 쌓여 먼지나 뒤집어쓰는 신세가 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럼 돈의 맛은 어떨까요?
삶의 구조를 지지하고 운명과 숙명을 제어하며 연대감을 형성한다.
또한 생존 공간과 자손의 수를 조절하고,
몸과 팔의 힘을 전달하는 지렛대 역할도 한다.
이것에는 조직을 유지하는 이자율이 함유되어 있고,
신경과 혈관이 분포하여 소유주를 보호하고 언제 어디서든 영양을 제공한다.
시인이 파악한 돈의 속성은 이렇습니다. 돈은 삶의 구조를 지지합니다. 돈이 없는 삶은 취약합니다. 의식주가 불안한 까닭이죠.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더 싼 집을 찾아 여기저기 전전해야 하며, 옷은 추위와 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수준에 만족해야 합니다. 돈이 있으면 삶의 구조는 든든해집니다. 운명이나 숙명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재능을 타고났어도 적절한 지원과 후원이 없으면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재능이 부족해도 지원과 후원이 탄탄하면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돈은 운명과 숙명을 바꿀 힘이 있습니다. 연대감도 형성하죠. 지연, 학연, 혈연 등도 돈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주거 공간의 규모와 질을 결정하는 것 역시 돈입니다. 젊은 세대가 자녀를 낳지 않으려는 것은 돈 때문입니다. 부잣집에 자손이 많은 건 이런 걱정이 없기 때문이겠죠. 건강 또한 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돈은 은행에 넣어두기만 해도 이자가 불어납니다. 투자를 잘한다면 규모는 더 커집니다. 늘어난 돈은 주인을 보호하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이것이 떨어지면 삶이 유지될 수도, 신생할 수도, 재생할 수도 없게 된다.
이것의 성분은 공포감 20%, 경외감 30%, 해방감 40%인데,
이것이 일정한 탄성을 지니는 이유는,
소량의 모멸감과 죄책감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돈의 성분은 어떨까요? 돈이 없으면 삶이 유지될 수 없을 만큼 필수적인 성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아이를 낳지 않으니 새로 태어날 수도 없고, 아파도 치료할 수 없으니 병약하면 회복될 가능성도 적습니다. 이렇게 따져 보니 돈은 참 좋은 겁니다. 도깨비방망이가 따로 없죠. 그렇지만 돈에 유익한 성분만 가득한 건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으니 자유를 만끽합니다. 해방감이 충만하죠. 돈의 성격을 잘 알기에 경외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공포감도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돈이 나에게서 떠나간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부자가 하루아침에 가난뱅이가 되면 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돈에는 공포감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약간의 다른 성분도 있습니다. 모멸감과 죄책감입니다. 이것에 의해 탄성이 생깁니다. 외부에서 힘을 가하면 부피와 모양이 바뀌었다가, 그 힘을 제거하면 본래 모양으로 되돌아가려는 성질입니다. 닥치는 대로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살아가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겁니다. 돈이 있는 곳곳에 과도한 욕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윤리와 상식의 모멸감과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느끼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신뢰감과 충만감이 증가하는 반면
죄책감, 배신감, 위화감, 허탈감 등의 성분은 매우 감소한다.
이때는 특히 독이 오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하고, 그만큼 정당하게 번 돈으로 소박하나 정직한 밥상을 마주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모멸감이나 죄책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많은 돈을 가지지 못해 자유롭게 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부족하다고 해서 인생 자체가 허무한 게 아니라는 것을 체득한 것이죠. 하지만 젊었을 때부터 돈에 순치된 사람은, 즉 돈이 가져다주는 해방감과 경외감에 취해 스스로 자신의 운명과 숙명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아온 사람은 늙어서도 여전히 돈을 신뢰하고 돈이 주는 충만감에 안도합니다. 당연히 죄책감, 배신감, 위화감, 허탈감 등은 줄어들죠. 돈의 맛에 중독된 겁니다. 돈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삶입니다. 시인은 경고합니다. 이때 조심하라고. 독이 오를 수 있다는 겁니다. 돈독이죠. 젊어서 한때 돈에 취할 수는 있지만,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돈이 인생의 최고라고 생각하며 돈독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돈의 배반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인이 경험한 돈의 맛은 참 달콤하고 영양도 풍부하지만, 과식하거나 중독되면 치명적인 화를 입을 수도 있는 위험한 맛이 섞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돈의 맛은 어떤가요?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지 않는 다음에야 돈은 인간의 생산활동을 통해 얻어집니다.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돈은 정상적인 돈이 아닙니다. 반드시 문제가 되고 맙니다. 나의 정당한 생산활동, 즉 노동을 통해서 번 돈이라야 건강한 돈이죠. 일확천금이나 불로소득은 절대로 건강한 돈이 아닙니다. 그런 돈으로는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돈에는 소량의 모멸감과 죄책감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돈은 자칫 인간의 눈을 멀게 만듭니다.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죠. 소량의 모멸감과 죄책감이 그걸 방지해주는 성분입니다.
돈은 너무 없어도 고통스럽고 너무 많아도 괴롭습니다. 돈으로 내 인생을 맛깔나게 요리할 수 있다면 최고의 재료가 될 수 있으나 돈의 맛에 중독되어 내 인생의 맛을 잃어버린다면 최악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많든 적든, 부족하든 넉넉하든, 지금 내가 가진 돈의 맛을 제대로 알고, 앞으로 내 인생에서 돈이 내 삶에 어떤 맛을 내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내 형편과 능력에 맞게 땀 흘려 일해서 번 돈으로 나와 내 가족이 일상의 행복을 느끼고 자족할 수 있다면 나는 돈의 유익한 성분을 흡수해 점점 건강해질 겁니다. 그러나 내 형편과 능력에 맞지 않는 과욕을 부리거나 땀 흘려 일하지 않고도 많은 돈을 벌게 된다면 나와 내 가족이 일상의 행복을 누리거나 자족하기는 힘들 겁니다. 당연히 건강하지도 않을 거고요. 운명과 숙명을 제어할 수 있는 건 결국 돈이 아니라 돈을 다룰 줄 아는 나, 돈의 맛을 제대로 아는 나, 돈으로 내 인생을 맛깔나게 요리할 줄 아는 나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