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 정상인가요?

2021-07-05     한명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 한명훈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어머니가 유독 자식을 아끼는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40이 넘은 자녀에게 식사 때 생선 뼈를 발라주려 하고 조금 늦게 들어가는 날은 어디 있는지 전화를 하고 제가 예민한 것인지 몰라도 20년 동안 이런 행동을 하는 모친에게 고마움도 느끼지만 반대로 지겹다고 느껴집니다. 성인이 된 자녀를 믿지 못하는 것을 넘어 그냥 모친 자기감정의 배출구로 소모하려는 것 같아서요.

며칠 전 길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면서 웃는 모습에 화가 올라왔습니다. 1년 넘는 투병 기간에 지치기도 하셨겠지만(폐 질환 그 이후에는 골다공증에 의한 압박골절로 보존치료 중이십니다.) 최근 기력이 없다고 해서 영양제를 사드려도 안 드시고 평상시에도 손자들이 오면 자기 손으로 음식을 해주셔야 한다고 자신은 먹지도 않고 고기 굽느라 제대로 먹지도 않는 등 평생을 그리 사셨습니다.

몇 번이나 그런 모습은 좋은 게 아니고 그래 봐야 손자들이 챙겨주지 않으니 본인 몫도 챙기셔야 한다고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도가 지나쳐 어쭙잖은 자기희생이라 보여주며 그로 자녀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납니다.

또 이런 제 모습에 환멸감도 들고요.

물론 넘치는 애정에 고마워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마워하면 지나치게 애정이란 듯 간섭하려 드니 지치고 자기 건강도 챙기지 않고 아픈 것을 빌미로 저를 더 구속하려는 것 같아 화가 납니다. 정상인 걸까요?

 

사진_freepik

 

답변)

어머니와의 관계와 상황에 있어서 여러 생각과 마음이 드시는군요.

성인이 된 자녀를 믿고,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품 안에서 키우고 놓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고 삶의 형태에 옳고 그름은 없기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 괴롭고 불편한 마음을 느낀다면 이에 대해 함께 나누고 이야기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답니다.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는 생애 초창기부터 강한 유대로 연결되어 있기에 이와 관련된 감정은 아주 강할 수밖에 없답니다. 사랑하는 만큼 증오가 크듯이 말이지요. 사랑과 증오가 마음에 함께 느껴진다면 무척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질문자님께서도 말씀하셨듯 화가 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환멸과 죄책감 또한 괴로울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하기에 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자신을 챙기지 않으시는 모습에 속상한 마음도 들지만 40이 넘는 나이가 되도록 놓아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화나는 마음이 드시는군요.

 

질문자님의 마음과 삶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통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답답함도 느끼시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보게 됩니다. 이 가운데서 자신의 감정의 배출구로 소모하는 상황까지 오랜 기간 겪으셨다면 더욱 괴로우셨을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 감정에 대해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는 어머니의 감정을 우선시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점차 자기주장이 생겨나고 이에 대한 독립성을 인정받고 자유롭게 펼쳐 나아가야 할 때도 녹록지 않으셨을 것 같네요. 오랜 세월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든 이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린아이가 늙지 않고 자리 잡고 있어서 어린 질문자님이 느꼈을 답답함과 분노의 감정을 지금도 느끼게 된답니다. 따라서 이상하거나 정상이 아닌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경험한 답답하고 화나는 마음이 되살아나고 있으므로 이런 마음을 잘 돌봐주고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현재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어느 정도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기에는 몸도 아프신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편치 않으실 것 같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계속 가까이 유지한다면 답답하고 화나는 마음에 많이 괴로울 것 같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일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사진_freepik

 

한국 문화에서 '효'라는 것은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가족주의적인 문화가 있기에 부모님에게 화가 나는 것을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스스로가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님의 감정과 생각 또한 존중받고 이해받아야 마땅함에도 그러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먼저 화가 나고 속상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가 수용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다루어진다면 앞으로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할지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깝고 믿을만한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할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좀 더 깊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치료자와 함께 나누며 상의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괴로움이 덜어지기를 소망합니다.

 

* 분노와 애정의 감정에 대해 혼란스럽고 고민이 되는 마음에 대해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시는 것 같아 이에 대한 심리적 설명이 도움이 되실까 싶어 짧게나마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부모님을 향한 사랑과 증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발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는 어머니와 공생관계를 유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이 시기에 어머니의 사랑과 애착, 유대관계는 매우 중요하며,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용한 정신적 양분의 모태가 됩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나면서 독립성과 개별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때 분노의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애착과 사랑의 당기는 힘이 아닌, 분노의 밀어내는 힘을 이용하여 어머니를 밀치고 자신의 경계를 주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아이를 부드럽게 놓아주고 다시 돌아올 때는 안아주는 양육자의 모습이 필요하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잘 놓아주지 않는 경우에 아이의 독립성과 개별성은 억압당하고 분노는 쌓이게 됩니다. 통제당하는 느낌은 스트레스로 작용하며 마음 깊이 남아있게 된답니다. 이후에 어른이 되더라도 어머니와의 사랑과 유대, 그리고 독립과 개별성 추구 간의 갈등은 지속됩니다. 인간에게 상반된 이 두 가지 감정은 무엇 하나만 추구할 수는 없게 합니다. 두 가지의 마음을 돌보아주고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